기자님께 글쓰기 배우기

by Dongeun Paeng
Apr 01, 2022 · 만 32세

오늘 조선비즈 기자 한 분께서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오셨습니다.

채용 면접을 떠나 그 분에게 글쓰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세상에 나쁜 기자도 많지만 배울 점이 많은 기자도 있구나, 라고 새삼 느꼈습니다.


이 분과의 대화를 통해서 느낀 점은, 직업 정신이 살아 있는 기자는 자신의 편향과 끊임없이 싸우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듣는 얘기 중 사실을 판단하기 위해, 자신의 글이 소음이 아니라 신호가 되도록 만들기 위해 철저한 자기 검열, 자기 의심, 메타인지를 반복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대화 중 처음 알게 된 재밌는 사실들입니다.


1. 좋은 기사를 판단하는 기준은 좋아요, 댓글, 조회수를 넘어, 관련 부처의 대응 여부이다.


좋은 기사인지 알려면 그 기사를 내보낸 후 새로운 제도가 생겼는지, 관련법이 제정/개정되었는지, 관련 부처의 사과문 등이 나오는지 봐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을 'NEWS value'라고 일컫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쓴 글의 가치에 대한 최종 판단은 기자 본인이 한다고 합니다.


2. 수습 기자들은 "뻗치기"를 한다.


입사 후 처음 주어지는 일들 중 "뻗치기"라는 게 있는데, 기사 주제를 잡기 위해 열흘 정도 필드에 나가서 생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글을 쓰려는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위해 아침부터 잠드는 시간까지 주변에서 대기하는 것입니다.


3. 기자는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직업 정신을 느낄 수 있어서 멋져보였습니다. 기자는 관찰자 포지션을 잃어선 안 되며, 억울함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므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대방에 대해 '기계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편 상대방이 감정에 호소하는 것인지, 팩트를 얘기하는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다른 방식으로 되묻다보면 거짓이 거짓으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한 번 하는 건 쉬운데, 다섯 번 하는 건 어렵다"라는 얘기를 하시면서, 이게 설문조사 기법 중 하나라고 하네요.


탐정 같다고 하니까, 형사들은 거짓말을 알아채는 능력이 훨씬 발달했다고 합니다.


4. 모르는 영역에 대해 어마어마하게 많이 읽고, 많이 공부한다.


동일 주제에 대해서 기사를 쓸 때 쉬운 게 있고, 어려운 게 있다고 합니다. 벌어진 사실을 전달하는 것(부동산 가격이 내렸다, 올랐다)은 쉬운 기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안이 미치는 영향을 인과관계 측면에서 알아내고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에게 질문하고, 관련 협회의 토론회 자료 등을 찾거나 받아서 읽고, 정부에서 발표하는 500쪽 짜리 문서를 정독하는 등 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야 할 때 대략 일주일 정도 시간이 주어지는데, 관련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는다고 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을 몇 가지 알려주셨는데, '학습 이론'처럼 느껴졌습니다.


1) 분류가 중요하다.


배우려는 것을 주제별로 묶어야 한다고 합니다. 가령 탈모 산업에 대해 공부할 때는 약, 주사, 수술로 나누고 각각에 대해서 접근하는 식입니다.


2) 좋은 개론서를 빨리 찾는 게 좋다.


공부는 개론서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이 때 한 번에 다섯 권 정도를 산 다음에 안 맞는 것은 버리고, 좋은 것으로 공부한다고 합니다. 좋은 개론서와 나쁜 개론서의 구분은 (1) 중립적인지. 즉 전망을 너무 밝게 하거나, 너무 나쁘게 하거나 하는 책은 편향적이라고 합니다. (2) 나에게 쉬운지. 나에게 어려우면 '나에게는' 나쁜 개론서라고 합니다.


3) 전문가/교수들은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미 전문가/교수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설명자로서의 역할'을 많이 해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름의 튜터링 기법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질문을 하면 알아듣게끔 설명해준다고 합니다.


5. 기자는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쓸 주제를 확보해두어야 한다.


과거에는 기자가 의사 다음으로 수명이 짧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창작의 고통,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이라고 합니다.

'내일 어떤 글을 써야 하지'라는 스트레스는 해소가 안 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8매 분량과 16매 분량으로 나뉘는데 8매는 1,600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 중 400자가 핵심이고, 나머지 1,200자는 근거로 채워서 분량을 맞추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게 16매 분량이 되면, 내용이 많아진다기보다는 8매 짜리를 '더 친절하게 쓰면 된다'라고 합니다.

더 친절하다는 것은 쉬운 개념에 대해서도 더 쉽게 써주고,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대중이 읽어도 이해가 되도록 글의 난이도를 낮추는 작업이라고 합니다.


6. 기자로서 성장하려면 관찰력이 중요하다.


좋은 기자는 남들이 짚고 넘어가지 않은 것을 자세히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쪽방촌을 조사할 때, 쪽방 임대 수익률을 조사해보니 일반 부동산보다 훨씬 수익률이 높았고, 이 쪽방을 누가 임대하나 조사해봤더니 강남 부동산 부자들이었다고 합니다. (본인 얘기는 아니고 선배 기자가 조사한 내용을 전해준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기자가 실력 좋은 기자라고 합니다.

관찰력을 높이기 위해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합니다.

소설가들은 관찰력이 매우 뛰어나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장면을 소설처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한편 호기심을 억제하면 점점 질문을 안 하게 되므로, 호기심이 드는 상황이 있을 땐 꼭 적어둔다고 합니다.


7. 퇴고보다 사전 얼개가 중요하다.


이 기자님은 퇴고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사전에 글을 어떻게 쓸지 고민을 길게, 깊이,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글을 쓰기 전에 노트에 글의 구조를 설계해놓는다고 합니다.


8. 기레기도 여러 종류가 있다.


1) 기자가 아닌 것 ('연예계 소식 전달자' 같이 소식을 전달하는 사람은 엄밀한 구분에서 기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2) 사실을 틀리게 쓰는 경우 (공부가 부족해서든, 어떤 이유에서든 사실을 사실대로 적지 않고 '틀리게' 적으면 기레기라고 합니다. 기준이 높네요...)


3) 중립을 못 지키는 경우 (특정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면 기레기라고 합니다. 출입 기자들 중 이런 경우가 꽤 있다고 합니다.)


9. 독자에 대해 먼저 이해하려고 한다.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가 고객(=독자)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를 많이 주시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10. 메시지에 대한 분노 != 메신저에 대한 분노


기자가 쓴 메시지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종종 기자를 욕한다고 합니다. 그것을 "메시지에 대한 분노가 메신저에게 표출되었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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