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eun Paeng

올해의 독서법

시행착오를 거치며 변해가는 나만의 독서법

1년에 책 몇 권 읽으시나요?

십수 년간 매해 마흔 권 내외의 책을 읽곤 했다. 회사를 만들고, 가정을 꾸리고, 늦은 나이에 학사 과정을 밟으면서도 스무 권은 너끈히 읽었다.

그런데 열 권 이상부터는 권수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사람은 연간 열 권 이상 읽는 애서가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애서가의 권수는 얼마나 어려운 책을 어느 속도로 읽느냐의 차이를 나타낼 뿐이라 의미가 없다. 아니 어쩌면 권수가 높을수록 깊이가 얕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모티머 애들러, How to Read a Book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독서법이랄 게 없었다. 그저 다양한 분야 책을 읽었을 뿐이다.
몇 가지 규칙이 있긴 했다. 밑줄을 치거나 여백에 몇 단어 적는 습관이 있었고, 한 번 시작한 책은 반드시 끝내는 원칙을 대부분 지켰다. 또다른 특징이라면 goodreads 평점이 4점 미만인 책은 웬만하면 피했다는 것, 소설 등 문학 작품도 거의 읽지 않았다는 것이 있다.

그런데 How to Read a Book을 읽고 나서 큰 변화가 있었다. 그 책은 “어려운 책과 씨름하는 것이야말로 성장하는 독서다”라고 이야기한다. 술술 읽히는 책은 읽어봤자 사고가 확장하는 건 아니란 얘기다. 여기에 평소 책을 읽고 나서 기억에 잘 남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더해져, 지금의 독서법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독서법

한 줄로 요약하자면 독서 노트를 철저하고 자세하게 적는다. 집어든 책의 모든 문장을 나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을 때가지 파고든다. 그러다 보니 한 권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단점이 두드러졌다. 이는 전체 흐름과 맥락을 잃는 부작용도 낳았다. 이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독서법을 개선했다.

더 나은 독서법

1단계: 사전 조사

먼저 목차와 색인을 보고, 저자의 인생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본다. 내 기존 지식에 합성할 가치가 있는 책인지 판단하려는 것이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 가설을 적는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2단계: 훑기

아주 빠르게, 대충 1회 훑는다. 읽기 어려운 대목은 대략적인 내용만 이해한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빨간 펜으로 표시하고, 핵심은 파란 펜으로 표시한다. 이 단계의 목적은 1단계 가설—내 기존 지식에 합성할 가치가 있는가—을 검증하는 것이다. 그만한 가치가 없더라도 끝까지 읽는다. 다만 가설이 기각되면 3단계로 넘어가지 않는다.

3단계: 다시 훑기

이번에도 빠르게 훑어보되, 조금 더 자세히 읽는다. 2-5문단마다 여백에 요약한다. 앞 단계에서 빨간 펜으로 표시한 부분은 조금 더 자세히 보되, 이해 안 되면 지나친다.

4단계: 뚫기

빨간 펜으로 표시한 부분들만 골라서 읽으며 "이해 노트"를 적는다. 반복, 자료 조사, 원전 참고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이해 노트"는 낙서장 같은 개념으로, 쓰고 버리는 노트다.

5단계: 엮기

책 전체 내용을 엮는 "정리 노트"를 만든다. "정리 노트"는 내 언어로 정리하며, 책의 순서를 따라가되 장절 구조는 엄격히 따르지 않는다. 나만의 주제를 다루는 제목과 부제목으로 정리한다. 그 제목은 가급적이면 질문 형태로 적는다. 정리는 가급적 자세히 한다. 가령 감마선을 설명한다면 에너지를 전달하는 파동의 일종이라고 설명하기보단 전자기파를 먼저 설명한 후 그 안에서 감마선이 갖는 특징을 설명한다.

기대

새로운 독서법을 바탕으로 나만의 지식을 엮고 편집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살면서 1천 권 이상의 책을 읽었지만 그것들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겠냐 묻는다면 자신이 없다고 대답하고 말 것이다. 질이 낮아도 좋으니 아무 책이나 한 권 내보자고 한다면 물론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운 행위다.

모쪼록 이 독서법을 바탕으로 또 한 번의 지적 도약을 경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