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eun Paeng

둘째를 안으며...

내 아이들과 다빈치의 미래를 잠시 그려보았다.

둘째를 안으며...

병실은 따뜻하다 못해 덥기까지 했다. 방이 건조한 데 더해, 병실 구석의 딱딱한 소파에서 밤새 자다 깨길 반복해 눈이 뻑뻑했다. 하지만 내 불편은 아내의 산후통과 그로 인한 새벽의 단속적인 신음에 비하면 먼지보다 가벼웠다. 그런 아내가, 둘째가 병실에 도착하자마자부터 신기하게도 기운을 차리는 듯했다.

아기는 겨우 차키만한 발바닥을 휘저으며 애절하게 울었다. 그 소리는 거슬리기엔 너무 작은 소리였는데도, 온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 아기를 보면서, 돌연 집에서 아빠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첫째에 대한 애틋함이 사무쳤다. 첫째에 대한 사랑을 둘째가 빼앗아가기는커녕, 둘째를 보니 첫째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둘째가 첫째에 가려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첫째와 닮은 곳은 닮은 대로, 닮지 않은 곳은 닮지 않은 대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미래상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선 한 가지 질문이 끊임없이 부유한 것 같다.

AI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내겐 이 질문이 "내 아이들의 미래는 어떤 세상일까"와 같은 의미였다. 막연한 상상과 인터넷 서핑, 그리고 AI와의 대화를 오갔다. 내 상상은 의료에서 노동으로, 노동에서 교육으로 옮겨갔다. 이런 관심의 배경에는 내 개인사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의사에 대한 오랜 불신, IT 회사 경영자로서의 입장 같은. 이 글에선 의료와 노동의 미래에 대한 내 의견을 남겨보고자 한다.

1) 의료의 미래

내 의견: 병원의 주 역할인 의료는 상당 부분 AI/로봇에게 넘겨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역할(환자 보호, 공중보건, 교육, 연구)만 병원의 몫이 될 것이다.

의료는 크게 진료/진단과 치료(약물, 수술)로 나눌 수 있다. 두 영역 모두 대체될 텐데, 이 글에서는 진료와 진단으로 주제를 좁혀보려고 한다.

AI가 진료를 더 잘하는 5가지 이유

두 달 전부터 허벅다리가 고장났다. 계단을 오르는 것도 어려워졌고, 한 발로 서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몸이 기울어 넘어질 뻔한 적도 있다.

실력 좋다는 정형외과, 신경과, 재활의학과를 여러 군데 찾아다녔다. 하지만 다들 이상이 없다고 했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고 했던가. 정형외과는 디스크를 의심하고, 재활의학과는 도수치료를 권했다. 신경과에서는 신전도, 근전도 검사에 이상이 없으니 휴식하라고 권했다. 코끼리 만지는 장님들 같으니라고...

2018년 레이 달리오의 책을 우연히 본 이후로, 나는 의사를 믿지 않는다. 최소한 의사 세 명 이상을 만나보고 증상을 확정한다. 황당하게도 의사들은 대개 의견이 달랐다. 흰색 가운을 벗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권위 뒤에 숨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White-Coat Effect"라고 불리는 실제 현상이다.)

답답한 마음에 GPT에게 물었다. 실제로는 긴 문진을 이어갔지만, 이 글에선 내가 GPT에게 준 정보를 하나의 프롬프트로 요약한다.

내가 먹는 약은 베믈리디, 토바스트(스타틴 계열)이고 8개월 정도 먹었어. 나는 일주일에 5회, 2시간씩 운동하고 있고 1시간은 서킷 트레이닝(크로스핏 같은), 1시간은 레슬링을 해.

2개월 전부터 갑자기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더니 발뒤꿈치를 들면 다리가 떨리고,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졌어. 자전거도 오르막길에서 잘 못 타겠고. 다른 부위에도 전반적으로 힘이 빠졌는지 여부는 체감상으로는 알 수 없는 상황이야. 원래는 한 발로 Full Squat를 할 정도로 퍼포먼스가 좋았어.

신전도, 근전도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고, 공복이 아닌 상태에서 잰 혈액 검사는 아래와 같아.

  • CK(근육효소수치): 149
  • 간 수치, 콩팥, 빈혈 수치: 정상
  • 칼슘: 10.2
  • 칼슘이온: 0.93
  • 인산: 5.0
  • 비타민D: 25.4

원인이 무엇일지 포괄적으로 고민해보고 가장 논리적으로 확률 높은 추론을 해주라.

GPT는 생각지도 못한 토바스트 부작용을 제1원인으로 꼽았다. 이제 약을 끊고 2-4주 정도 기다려보면 될 일이다. 나는 신경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의사에게도 토바스트를 언급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약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에 내가 느낀 AI 문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첫째, AI 문진은 길게 할 수 있다.
  2. 둘째, AI의 최신 임상 논문 파악 수준이 인간 의사를 압도한다.
  3. 셋째, AI는 에고가 없다. 모델 간 논쟁 끝에 하나의 가설로 수렴한다.
  4. 넷째, 특정 분야(정형외과, 신경과 등)에 갇히지 않는다.
  5. 다섯째, 경제적 유인에 휘둘리지 않는다.

이러니 모든 면에서 AI의 문진 결과가 더 신뢰도 높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의사 대신 AI에게 진료를 받게 될 것이다. 발빠른 의사들은 이미 환자 진료 시 AI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진료는 AI가 한다 치고, 진단은?

AI가 내 피 검사 결과를 보더니, 토바스트 끊는 것과 별개로 대사 불균형이 의심되니 병원 가서 더 자세히 검사해보라고 권유했다. 최대한 자세히 확인하려면 내분비내과에 가서 혈청 검사, 혈가스 검사, 소변 검사 모두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응급환자가 아닌 이상 혈가스 검사를 일반 환자에게 제공하는 곳은 없었다. 혈청 검사로 확인할 수 있는 수치도 제한적이었다.

아... 이거 집에서 할 수 없나?

답답한 마음에 찾아보니, 자가 진단 시장이 빠르게 성장 중이라고 한다. 다만 홈 키트의 경우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해서, 혈청, 혈가스, 소변 검사 항목 중 극소수만 커버한다. '역시 시기상조인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런 홈 키트 시장 자체를 사멸시켜버릴 one-size-fits-all 기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경구용 나노봇"이다. AI의 등장으로 홈 키트라는 과도기적 기술을 건너뛰게 되는 셈이다. 경구용 나노봇이 상용화 되면, 몸 안의 나노봇들이 혈액과 소변의 각종 수치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게 얼마나 먼훗날의 이야기인지는 더 알아봐야겠지만, 맨 아래 공유할 Ray Kurzweil의 영상을 보자 그리 먼 미래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쳐도, 경구용 나노봇이 엑스레이, CT, MRI는 못 찍잖아?

물론 촬영은 여전히 물리적인 공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병원일 필요가 있을까? 의료 촬영은 위험성 때문에 일반인에게 인가되지 않는다. 의료 장비보다 더 다루기 어렵고 더 위험한 장비도 적절한 면허 제도와 기술 발달에 힘입어 일반 대중의 손에 쥐어진 경우가 역사에 많다. (오토바이, 전기톱, 고압 세척기, ...) 게다가 사실, 나노봇이 등장하면 체외에서 단층 촬영을 할 이유도 대부분 없어질 것이다.

그럼 병원이 사라지게 될까?

의료 기능이 모두 AI에게 넘어가면 병원은 사라질까?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병원의 역할은 의료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치료를 수행할 공간과 그 과정의 관리자는 여전히 필요하다. 의료 산업이 붕괴하기보다는, 병상의 회전율은 높아지고, 1천명 당 의사 수(현재 ~3명)가 크게 늘어 복지의 질이 높아지길 기대해본다. 다만 인간 의사에 대한 의존도는 크게 낮아지고, 직업으로서 의사의 매력도는 다소 조정될 것 같다.

수명, 노화

이 부분은 Ray Kurzweil의 아주 재밌는 의견(영상)으로 대체하겠다.

2) 노동의 미래

내 의견: 개인 차원에선 예측 불가, 우리 회사 차원에선 Red Queen's Race

전통적 의미의 기업들이 사라질까?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 개인의 역할은 무엇이 될까? 이 부분에 대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보았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고용 시장이 펼쳐질 것"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온 방식을 내 아이들에게 전수하면 안 될 것이다.

What they say...

  • Elon Musk: “My prediction is that work will be optional.” (2025)
  • Bill Gates: "AI capabilities will allow us to make far more goods and services with less labor." (2025)
  • Demis Hassabis: "Some jobs will disappear, but new ones will emerge. The most successful people will be those who embrace AI rather than fear it." (2025)
  • Sam Altman: "I can easily imagine a world where 30 to 40% of the tasks that happen in the economy today get done by AI in the not very distant future." (2025)
  • Ilya Sutskever: "The day will come that AI will do all the things we can do." (2025)
  • Yann LeCun: "What AI will replace are only the jobs of repetitive tasks, and the fields that require complex decisions, social sense, and creativity are not going to be replaced any time soon." (2024)
  • Benedict Evans: "We went from farm work to blue-collar work to white-collar work, and now we’ll automate the white-collar work as well and there’ll be nothing left." (2023)

아직 AI가 일상에 들어오기 전부터 큰 변화를 예견한 사람들도 있다.

  • Isaac Asimov: "Mankind will suffer badly from the disease of boredom... The lucky few who can be involved in creative work of any sort will be the true elite of mankind, for they alone will do more than serve a machine." (1964)
  • Claude Shannon: "I visualize a time when we will be to robots what dogs are to humans, and I am rooting for the machines." (1961)
  • Alan Turing: "It seems probable that once the machine thinking method had started, it would not take long to outstrip our feeble powers… They would be able to converse with each other to sharpen their wits. At some stage therefore, we should have to expect the machines to take control." (1951)

이들 중 누구도 구체적인 변화 양상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만큼 똑똑한 사람들이어서다.

아무쪼록 나는 내 아이들이 아시모프가 얘기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운 좋은 소수 엘리트"가 되었으면 한다. 섀넌이 얘기한 로봇의 "개"가 되기보단 말이다. 관련해 좋은 영상을 공유한다.

이제 내 아이들에게 닥칠 미래 말고, 나에게 닥쳐오는 미래를 생각해보자.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주식회사가 앞으로 계속 존재할까? 사회 속 기업의 역할은 무엇이 될까? 그리고... B2B IT 컨설팅은 어떻게 될까?

우리 회사가 속한 IT 분야의 주요 B2B 기업은 지난 1년 간 주가가 많이 하락했다. IT 컨설팅을 포함해서 말이다.

SAP(-36%), Oracle(-15%), Salesforce(-43%), ServiceNow(-46%), HubSpot(-69%), Atlassian(-67%), Accenture(-39%).

보다시피 B2B IT 산업이 초토가 되고 있다. 시장이 왜 이렇게 반응하는 걸까? “고객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해준다”가 B2B 기업의 가치 제언인데, 다음과 같은 사형 선고가 예상되어서다.

아 저기, 그거 AI 써서 우리가 직접 할게요.

그렇다면 고객이 AI를 써도 직접 할 수 없는 게 뭘까? 그 중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들에게도 AI가 있지만 우리만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찾아야 한다. AI로 중무장한 고객이 스스로 해보려고 해도 결국 우리를 찾게 되는 그것.

대표적인 예로 Physical Assets을 들 수 있다. 고객이 AI를 도입했다 한들, 그들에게 없는 Physical Assets은 외부에서 도입할 수밖에 없다. 선박, 에너지, 폐기물 처리, 경비(Security), 의전 차량, 음식 등이 좋은 예다. 문제는 우리 회사는 B2B IT 회사여서 이러한 Physical Assets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무형 자산이다. 예를 들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디지털화 할 수 없다. AI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컨설턴트는 현장도 방문해서 고객의 행동, 생각, 분위기, 상황, 눈치 같은 무형 자산을 통합적으로 쌓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딱 맞는 IT 로드맵은 여전히 고객사 내부에서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즉 What과 How는 AI에게 넘어가겠지만, When, Where, Who는 인간의 결정으로 남을 것이다.

복잡한 상황에서 IT 로드맵을 제공하는 일은 B2B IT 컨설팅 영역으로 남는다.

또 뭐가 있을까? 데이터 자산이다. 아주 복잡하고 민감한 데이터를 우리가 잘 이해하고 있고, 우리가 대신 관리해주고 있다면 고객은 AI가 있더라도 우리를 계속 쓸 것이다. 왜냐면 컨설턴트의 관리감독 없이 DDL을 AI에게 던져준다고 해도, OLAP/BI 작업을 AI가 단독으로 수행할 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DB가 8개로 흩어져 있고 정형/비정형 데이터가 섞여 있는 고객사에서, "AI야, 이거 우리 서버 secret key니까 네가 들어가서 충분히 살펴보고, 일별 매출 그래프 나오는 대시보드 만들어줘"라고 하면 AI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복잡하고 민감한 데이터의 관리는 B2B IT 컨설팅 영역으로 남는다.

이외에도 살 길이 몇 가지 더 있긴 할 것이다. 어쩌면 내 생각이 한없이 naive 했던 것으로 밝혀질지 모른다. AI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미리 긴장하지 않으면 죽음이 새벽처럼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