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eun Paeng

믿음의 강 건너에서

평생 풀지 못할 수수께끼

수수께끼

최근 일이다. 평생 풀지 못할 수수께끼를 만났다.

그는 사기꾼이었을까?

과외 선생

일본어 회화 과외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인스타그램에 검색해보니 몇몇 프로필이 떴다. 그 중 화려하지 않은 어느 강사에게 눈이 갔다. 나이는 20대 초중반으로 보이고, 프로필 사진도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 같지 않았다. 아마추어 과외 선생이니 저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클랙해서 들어가보니 "일본어 가르쳐드려요" 따위의 문구가 쓰인, 어색한 디자인의 게시글 2개만 덩하니 있었다. 홈페이지도 없었다. DM으로 문의를 남겼다.

강남, 주 1회 대면 과외 가능하신가요? 일본어 경험은 전무합니다.

몇 번의 대화 후 카카오톡으로 옮겼고, 회당 5만 원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첫 수업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의심

강사는 이러저러한 강의 안내가 포함된 장문의 카톡을 보내며 입금 요청을 했다. 4회분, 20만 원이었다. 예금주명은 그 강사가 맞았다.

그런데 나는 선뜻 돈을 보내지 못했다. 쎄한 느낌이 드는 게 지극히 당연했다.

한 번도 안 만나봤는데 어떻게 돈을 보내지? 과외 당일 이 사람이 안 나타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강사 이름으로 검색을 조금 더 해봤지만 동명의 유명한 과외 선생은 검색되지 않았다. 강사 매칭 플랫폼에도 등록된 게 없었다.

사기일 확률은 낮았다. 하지만 0%가 아니었다.

죄송하지만 아직 수업 시작도 하기 전에 20만 원을 송금하는 건 부담돼서요. 1회 수업 듣고 결정하면 안 될까요? 수업을 안 하기로 결정하더라도 1회분은 즉시 입금하겠습니다.

그러자, 약속을 잡았는데 노쇼 하는 경우가 잦아 1회분만 먼저 입금해주시면 어떻겠냐는 회신이 왔다. 이쯤에서 나는 의심이 짙어졌던 것 같다. '이놈, 사기꾼이다!'

하지만 진짜 강사일 수도 있으니 예의를 갖춰 중립 지대를 찾아보려 했다. 나는 이렇게 제안했다.

그러면 10분 정도만 짧게 통화나 화상 회의를 통해서 수업을 설명해주시면 어떨까요? 통화/화상 회의 직후 1회분 입금하겠습니다.

어쩌면 여기에 소질도 없는 농담을 더한 게 내 실수였다. "사실 제 입장에선 선생님이 봇인지 사람인지도 모르니까요"

하루 동안 1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과외를 고사하는 카톡이 왔다. 만나면 불편할 것 같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 다른 선생님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미안하고 헛헛했다.

수수께끼

내게는 평생 풀지 못할 수수께끼다. 만나기도 전에 2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요청하는 과외 선생은 흔치 않다. 게다가 SNS 프로필을 비롯해 인터넷 세상에는 강사의 신원이나 실력을 보장하는 어떠한 정보도 없었다. 이런 점만 보면 사기꾼일 확률이 높았다.

반면 사기꾼이라면 내 마지막 카톡에 회신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미 놓친 물고기라고 판단해서 말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초고단수 사기꾼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죄책감을 느끼고 붙잡거나 덜컥 선입금할 작은 확률을 노리고 마지막까지 덫을 놓는 성실한 사기꾼 말이다.

이쯤되면 내가 이상한 사람 같다. 누가 보면 '속고만 살았나' 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신뢰

그 사람이 진짜 강사였다면 정말 아쉽게 된 셈이다. 가격과 장소가 잘 맞는 과외 기회를 내가 잃은 것이니까. 그리고 그 사람도 지불 용의와 배울 의지가 충분한 학생을 놓쳤으니까.

그는 신뢰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전하고 순수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만나기도 전에 과외비를 요청하는 당당함은 극도의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공동체 전원이 신뢰를 지탱하는 사회라면 이런 태도는 괜찮다. 그리고 가장 효율적이다. 계약도 필요 없고, 홈페이지도 필요 없고, 리뷰도 필요 없다. 약속만 존재할 뿐이다. 미국 중서부에서는 악수가 곧 계약서라고 한다. 신뢰 위에 쌓아올린 촘촘한 공동체의 좋은 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그런 곳이 아니고, 한국 사회도 그런 곳이 아니다. 의심과 검증은 필수다. 신뢰가 무너진 자리를 이렇게 불가피한 비효율이 채운다. 다양한 장치들이 파생된다. 계약, 소송, 사회적 보복 같은.

홈페이지를 만드는 수고를 하거나, 대형 플랫폼에 수수료를 10퍼센트나 떼어주거나, 리뷰를 쌓는 과정들도 일종의 비효율이자 비용이다.

결론

그 사람은 진짜 일본어 과외 교사였을까? 아니면 사기꾼이었을까? 정말 궁금하다.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쓸데없는 농담만 덜어내고 싶다. 하지만 의심을 거두진 않을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 선택이었다.

합리적 선택.

죄수의 딜레마에서 두 죄수가 모두 자백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이유는 바로 각자가 자기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