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이야기
Enjoy your LIFE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수육을 한 점 먹는 중이었다. 엄마는 별일 아닌 것처럼 미국 사는 그 형이 죽었다는 말을 툭 던졌다. 엄마의 말투는 눈물을 참고 싶다는 듯, 혹은 내가 너무 놀라지 않길 바란다는 듯 억지스럽게 담담했다. "언제?"라고 물었을 때 "한 달 전"이라고 답한 것으로 보아 엄마는 눈물이 충분히 잦아든 후에야 내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그 형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아주 어릴 때 형은 이민을 갔고 그 뒤론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주 착한 형이었다는 생각이 잔향처럼 남아 있다. 엄마에게 들어보니 착하기만 한 게 아니었나 보다. 미국 서부와 동부 최고의 명문대에서 대학원과 포닥을 거쳐 얼마 전까지 조교수로 연구와 강의를 병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무슨 공학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생명공학 비슷한 이름이었다. 어디 유명 학술지에 논문도 게재되었다고 하니, 얼핏 들어도 전도 유망한 젊은 과학자였음이 분명했다.
형의 뇌에 무언가 치료가 어려운 병이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인 듯하다. 베아트리체를 기다리는 수개월간 형과 형 가족에게는 두려움, 답답함, 허탈함, 좌절감 같은 감정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었을 것 같다. 아쉬움. 그중에서도 형을 가장 심하게 괴롭힌 감정은 아쉬움이 아니었을까. '나라면 그랬을 것 같아.' 여전히 고기를 우적거리며 나는 짐작했다. 이제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멀어진 형이기에, 슬프기보다는 안타깝고 먹먹했다.
앞으로 펼쳐질 시간 속에서 형은 멋진 일들을 해내면서 세상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였다. 형의 가까운 동료와 제자들은 전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었다. 그 중에서 거대 기업을 일으키는 창업가는 물론이고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것이다. 어쩌면 형 본인이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내가 살아갈 앞으로의 수십년은 형이 꼭 살아보고 싶었던 시간일 것이다. 그런 형이 '나 대신 네가 잘 살아주고 있구나. 네 덕분에 대리만족 한다 야'라고 생각할 만큼 잘 사는 모습은 무엇일까. 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두고 떠난 미래를 나는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선 실패와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고 삶을 즐기며 개척해나가야겠다. 치열하게 부딪치는 도전이야말로 형이 가장 열망하는 모습일 것이다. 둘째로 많이 웃어야겠다.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하늘에서 바라본다면 누구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 그럴 거면 나랑 바꿔. 니가 저승으로 와라. 내가 가서 신나게 즐겨줄게." 셋째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 미움이나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허송세월 하지 말자.
인생을 즐기자. 많은 것들을 누리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