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과 장기 투자는 "동치"다.
거미 집 짓듯 읽기
다독과 장기 투자는 사실상 "동치"다.
비약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 명제는 참이다. 따져보자.
장기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선별"이다.
그럴싸한 기회를 잡는 것은 장기 투자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럴싸한" 주식은 오래 붙들고 있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장기 투자자는 이런 기회를 모두 흘려보내고, 10년 이상 보유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들 만큼 좋은 기회만 골라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베팅할 때는 강하게 베팅해야 한다. 워렌 버핏의 방식이 이렇다. 버핏은 평생 스무 번의 투자만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투자하라고 했고, 10년 보유할 생각이 없으면 10분도 보유하지 말라고 했으며, 야구와 달리 투자에는 삼진 아웃이 없으니 좋은 공이 올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리라고 했다. 대신 그는 좋은 공이 왔을 때 누구보다도 크게 휘둘렀다.
좋은 기회는 아주 드물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좋은 기회는 희소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는 분야가 좁은 사람은 평생을 기다려도 자기 앞으로 좋은 공이 지나가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누구든 그런 상황을 못 참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구장창 한 섹터만 공부한 사람은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좋다'의 기준을 슬금슬금 낮추게 된다. 어떻게든 그 섹터 안에서 투자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준이 낮아지면 그럴싸한 기회에 스윙을 하게 된다.
Off-the-Ball 움직임이 중요하다.
버핏은 IBM에 투자하기 전에 수십 년 동안 IBM의 연차보고서를 읽었다. IBM에 투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큰 기대 없이 '읽어둔 것'이라고 표현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번에 투자를 결정했다. 그렉 아벨도 '기회가 왔을 때 빠르고 과감하게 결정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 기회가 왔을 때에는 그것이 기회인 줄 깨닫기도 어렵거니와, 기회라는 것을 알더라도 급급하게 스터디를 하느라 결정이 미뤄진다. 반대로 결정이 빠르다는 것은 이미 그 분야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기회가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르지만 결정을 빠르게 하려면,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평소부터 깊이 공부해야 한다. 기회의 창은 잠깐 열렸다가 순식간에 닫힌다. 그 짧은 순간을 포착하려면 지식이 미리 쌓여 있어야 한다.
거미줄
사냥에 나서는 포식자는 자기 목표만 쫓아야 하며,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거미는 다르다. 어떤 곤충이 언제 어느 방향에서 날아올지 모르므로, 망을 넓게 쳐두어야 한다. 장기 투자자는 쫓아다니는 쪽이 아니라 기다리는 쪽이다. 망이 좁으면 굶어 죽는다.
간단한 산수로 표현할 수도 있다. 단위 면적당 좋은 기회의 수를 n, 내 지식이 닿는 반경을 m이라고 하자. 내가 잡을 수 있는 기회의 총량은 대략 n과 m의 곱이다. 그런데 장기 투자자에게 n은 절대 높을 수 없다. 내가 매수하고 나서 2년쯤 주식 시장이 문을 닫아도 마음 편한 주식, 가격이 떨어질수록 흐뭇해지는 주식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n을 내 마음대로 키울 수 없다면, 총량을 높이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m을 키우는 것.
그리고 m을 키우는 방법이 바로 읽기다. 여러 산업의 역사와 전기를 읽고, 연차보고서를 읽고, 오래된 신문 기사를 읽어야 한다. 당장 써먹을 데가 없어 보이는 독서가 사실은 거미줄을 한 뼘씩 넓히는 작업인 셈이다.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잡지나 책을 읽는 습관은 찰리 멍거나 토드 콤스, 모니시 파브라이에게서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크리스 밀러의 Chip War는 2022년에 출간했다. 그때 이 책을 깊이 읽었다면 요즘 난리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장기 전망을 미리 내다볼 수 있었을 것이다. 투자 목적 없이, 순수한 호기심에서 관심사 자체를 넓히다 보면 자명해보이는 기회들이 나타날 것이다. 물론 그 기회는 3년에 한 번, 5년에 한 번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족하다는 것이 워렌 버핏의 의견이다.
이런 책은 다른 산업에도 즐비하다. 더 박스, 뉴맵, 면화의 제국,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 The Power Broker, The World for Sale, ....
마치며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장기 투자자는 좁은 거미줄을 쳐놓고 곤충이 걸리기를 바라는 거미와 같다. 그런 거미는 굶어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