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험에 AI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의견
대학이 수준을 높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최근 Open University 서브레딧에 AI 사용이 의심돼 0점 처리된 학생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학교가 '의심 사유'로 제시한 항목들을 공개하면서, 그 항목들이 의심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따져달라고 했다. 댓글 분위기는 대체로 냉담했다. 그 점에선 나도 마찬가지였다. 글쓴이는 누가 봐도 의심할 만한 방식으로 시험지를 제출했다. 벡터/행렬 표기가 뒤죽박죽이었고, 교재에 나오지 않은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학교의 의심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AI를 막고, 의심되면 0점 처리하는 이런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할까?
학생의 AI 사용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AI 사용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0점 처리하는 것은 '누가누가 AI를 더 잘 쓰나'를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뿐이다. 예를 들어 그 학생은 너무 naive해서 들통났을 뿐이지, AI라는 도구를 좀 더 잘 쓰는 학생이었다면 표기법은 물론 풀이 방식까지 교재의 모범 답안에 입각하도록 AI를 활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 실력과는 상관없이 AI를 잘 쓰는 사람이 성적 상위권을 독차지할 것이다.
대학의 목표, 특히 Open University 같은 온라인 대학의 목표는 정해진 시간 내에 학생의 지식 수준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평가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 시험 범위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들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 학생 스스로 자신의 수준을 파악하게 한다.
-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핵심 개념을 한 번 더 공부하게 한다.
- 학교가 학생들의 수준을 상대적으로 나열할 수 있게 한다.
이제 위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우리가 가진 제약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AI 사용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AI 의심 사례에 불이익을 주면 AI를 쓰고도 잘 숨기는 쪽으로 선택압이 발생한다.
위 제약 조건 아래에서 대학의 목표와 평가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라면 커리큘럼 수준을 크게 높일 것이다. 수학적 사고의 본질은 논리와 추상화, 암기력 같은 데에 있다. AI를 쓰든 쓰지 않든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AI 활용을 필요한 만큼 극대화하면서도, 논리와 추상화, 암기를 고루 동원해야만 이해하고 풀어낼 수 있는 개념과 문제를 가르치면 된다.
이미 많은 대학이 통계나 수학을 가르칠 때 Python, R 등의 소프트웨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쉽게 해줄 수 있는 행렬 연산을 굳이 사람이 손으로 정확하게 해내는 것이 '수학적 사고'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AI도 하나의 도구로서 그 위에 얹히는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학부 1학년은 미적분의 개념과 활용 영역을 배우는 데 집중하고, 계산은 AI에게 맡겨도 된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적분식을 구분하고 올바른 풀이법을 적용하는 것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 미적분 계산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게 찝찝한 학생은 예제를 손으로 풀어볼 것이고, 미적분을 도구로 인식하는 학생은 AI에게 넘길 것이다. 둘 다 옳다.
남는 시간은 추상대수학이나 위상수학을 더 깊이 가르치고 토론하는 데 쓰면 어떨까? 내 생각에는 이런 방식이 대학은 물론 학생에게도 유익하다. AI 활용 능력과 수학적 사고 능력을 모두 얻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