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비나 후기
2026-09-30 링크드인에 올린 글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생 중에 도인 같은 면모를 보이는 친구가 있었다. 남의 코드를 보고 "정갈하다"라고 처음으로 느낀 친구였다. 낡은 스택을 리팩터링 한 번 없이 끌고 오는 동안 사용자가 꽤 늘자, 개발자들이 "코드에 손대기 무섭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팀이 번아웃에 빠졌을 때 이 친구에게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라고 물었다. 그 친구는 몇 초간 고민하더니 "문제는 여유야"라고 짧게 답했다.
그 이후로 몇 해가 지났는데, 사색과 여유는 지금도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돌아보면 노력보다 숙고의 결과가 더 좋았다. 그래서 여유에 대한 갈증은 갈수록 커졌다.
AI의 발전을 지켜보는 과정이 무척 즐거운 것도 그 때문이다. AI라는 연산 도구의 본질은 시간 절약이다. 코드를 대신 짜주거나 자료를 대신 만들어주는 것은 시간 절약의 특수한 사례이다. AI가 벌어다 준 시간을 숙고에 쓰고, 그 숙고로 "AI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지?"의 답을 찾는 선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핫했던 Jev나 Grok Bot/Muse를 비롯해 어떤 AI 기술이든 '시간 절약'이라는 렌즈를 끼고 바라보면 그 영향을 손쉽게 해석할 수 있다. Jev는 거의 모든 종류의 분류 작업에 드는 시간을 수십 배 줄여주고, Grok Bot/Muse처럼 에이전트끼리 대화하는 기술은 사용자가 방향을 조정하려고 개입할 필요를 줄여주므로 영향력이 크다.
이 시간 절약이 일반 사람들에게 가장 파괴력 있게 작동하는 분야는 1인 창업일 것이다. 예전에는 혼자서 다 하기엔 시간이 모자라 팀을 꾸려야 했고, 그만큼 자원이 많이 필요했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높은 벽이었다. 이제는 AI가 들여야 할 시간을 압도적으로 줄여주니, 혼자서도 의미 있는 규모로 사업을 키울 수 있다.
바이브코딩으로 돈 벌 수 있냐, 라고 한다면 정말로 돈을 벌 수 있다. 아직 초반이지만 5월 이후 하루 30–60분을 들여 1,600만 원을 벌었다. 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웹에는 돈 번 사례가 넘쳐난다. 단지 어떻게 벌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에는 신호와 소음이 교묘하게 섞여 있다.
"바이브코딩으로 돈 버는 방법"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돈 버는 방법만 있을 뿐이다. AI 없이 수익을 일군 사업가들은 바이브코딩으로도 돈을 곧잘 벌 것이다. AI 이전에 돈 버는 재주가 없었던 사람들은 바이브코딩을 한다고 갑자기 돈을 잘 벌지는 못할 것이다.
나도 컨설턴트로, 투자자로, 창업가로 일해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개발 경험이 전무했다면 수익을 내기까지 먼 길을 돌아갔을 것이다. 이런 경험들이 나에게는 지름길이 되었고, 하루 30–60분으로 충분했던 것도 그 덕분이다.
Michael Seibel이 "비싸게 팔아보기"를 수요 검증 방법으로 제시한 게 2018년인데, 그 방법은 지금도 통한다. 월에 5–10만 원을 청구해도 쓰는 제품을 만들겠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레 코딩은 뒷전이 되고 시장 조사와 제품 본질 탐구가 앞설 것이다. 무료로 뿌리고 광고로 월 5만 원을 벌겠다면 유료 사용자 1명 대신 100명을 모객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바이브코딩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남다른 제품이 나와야 한다.
내 지름길을 나누고 싶어 연휴 전에 웨비나를 열었다. 주제는 "돈 되는 바이브코딩"이었다. 많고 많은 주제 중에 가장 사기꾼 같아 보이는 주제를 고른 것은 실제로 이 영역에 사이비(似而非)가 많아서다. "딸깍"만으로는 절대 돈 벌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얼굴 내놓는 게 부끄러웠지만, 내 강의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거나 "값을 매길 수 없다"고 격하게 응원해주신 이전 수강생분들과,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실질이 있는 이야기"라고 용기를 주신 지인들 덕분에 나설 수 있었다.
웨비나에 앞서 사전 질문을 보내주신 분들은 570명이 넘었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웨비나에서 'Tiro'의 은성이와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며 질문에 답했는데, 막막했던 1인 창업 과정이 선명해졌다는 후기를 수십 개 받았다.
웨비나에서 다룬 요지는 구현이 쉬워질수록 차이는 사업 역량에서 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4주 캠프 빌더스1452로 확장했다. 커리큘럼의 바탕은 나에게 지름길이 되어준 컨설팅, 투자, 창업, 개발 경험이다. 여기에 일하며 읽은 400여 권의 책과 영업이익 수백억 원을 달성한 젊은 창업가들의 모임에서 배운 것들을 더했다. 캠프에는 네트워크와 데모데이도 마련했다.
또 하나의 사이비로 끝나면 그동안 쌓은 평판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다. 그 부담과 싸우며 매일 내용을 다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