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보기 전에 내가 읽으려는 책이 좋은 책인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최근에 영어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영어로 책을 읽느라 한 번 책을 집으면 다 읽기까지 꽤 오래 걸리는 편이기 때문에, 빈 깡통 같은 책을 고르면 읽는 게 지치고 힘이 든다. 그렇다고 중간에 책을 덮고 다른 책으로 옮기기엔 뭔가 찝찝하고.
영어로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서너 달쯤 된 것 같다. 그 동안 읽은 책을 순서대로 나열해보자면 "Fortune's Formula", "HBR Guide to Better Business Writing", "Flash Boys", "Smarter Faster Better"가 된다.
앞의 세 권은 정말 훌륭한 책이었다. 몰랐던 것을 알게 해주고, 내용이 간결했다. 간결하다는 것은 내용이 적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이다. 똑같은 300쪽짜리의 책이 두 권 있을 때, 둘 중 더 간결한 책이 더 내용이 많다. 같은 내용을 설명하는 데 더 적은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네 번째 책, Charles Duhigg의 "Smarter Faster Better"였다. 이 책을 읽고 작가에게 실망을 해버렸다. 글이 너무 장황한 데 비해 건질 만한 내용이 별로 없는 책이었다. 영어 단어로 표현하자면 too verbose.
Duhigg는 유능한 글쟁이다. 뉴욕타임스의 저널리스트이기도 하고, 이전에 쓴 "The Power of Habit"도 히트작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책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명성에 비해 글을 쓰는 재주는 바닥인 것 같다. 그럼에도 책이 많이 팔린 것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독자도 아주 많다는 얘기이겠지.
아마존 평점은 4.5/5.0이다. 나도 이 평점을 보고 이 책을 골랐다. 지루한 anecdotes들의 의미 없는 위치, 그리고 그 anecdotes로부터 공통의 교훈을 억지로 찾아내서 만든 결론들. 책을 다 읽고 나서 고민이 생겼다.
'이런 책을 다시는 고르면 안 되겠다. 어떻게 하면 속지 않을 수 있을까?'
정보의 홍수. 수많은 책들과 그 책들을 추천하는 찬사들. 내가 이 책을 고르는 데 영향을 준 것들은 뭐가 있었을까? 먼저 팟캐스트가 있었다. 내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 중에 Investor's podcast라는 게 있다. 이 팟캐스트는 투자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하고, 책 추천도 많이 하는데 최근에 "Smarter Faster Better"를 추천하는 내용이 나왔었다. 이 팟캐스트의 쇼호스트들은 내가 느끼기에 굉장히 객관적이고 똑똑한 사람들이어서, 그들의 추천을 듣고 일단 이 책이 재밌을 거라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 팟캐스트 내용 중에 유명한 헤지펀드(Citadel이었나... 기억이 안 난다.) CEO가 전직원에게 이 책을 선물(선물이 아니라 추천이랬나... 이것도 기억이 안 난다.)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믿고 살 수 있는 책이구나, 라는 편견을 가지기 충분했다.
둘째로는, 아마존 평점이 좋았다. 나는 아마존 평점 4.0/5.0 미만의 책은 아예 안 읽는다. 4.0이 넘는 책도 평생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4.5점이었으니, 충분히 믿고 살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래서 아마존 평점을 다시 들어가봤다. 전체 평균은 4.5점인데, 평점을 더 자세히 뜯어서 보니 내가 미리 알아챌 수 있을 만한 힌트들이 있었다. 아마존 리뷰는 단순히 그 책에 대한 리뷰만 있는 게 아니라, 리뷰들에 대한 리뷰도 있다. 즉, 좋은 리뷰가 좋은 점수를 받는다. 어떤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칭찬/비판을 해놓으면 사람들은 'not helpful'이라는 시그널을 보낼 수 있게 돼 있다. 반면 아주 공감 가는 좋은 리뷰를 써놓으면 'helpful'에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top reviews란에 가면, "167 people found this helpful" 같은 표시가 달린 리뷰들이 나온다. 즉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도움을 받은 순서대로 리뷰가 나열된다.
"Smarter Faster Better"의 경우, 최고 점수를 받은 리뷰는 3/5점을 주었다. 무려 "935 people"가 공감한 리뷰였다. Voila! 리뷰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일화 소개가 쓸데없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왜 평균 점수는 높게 나오는 것인지 조금 알 것도 같다. 책에 중간 이상으로 만족한 사람들은 쉽게 별점을 남기고 훌쩍 떠날 수가 있다. 5점이나 4점을 주고 휙 가는 것이다. 반면에 책이 너무 재미 없거나 도움이 안 돼서 불만인 사람들은 점수를 주고 리뷰를 남기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별로인 책이 왜 별로인지 '분석'하기 위해 시간을 쓰기도 아까운 것이다. 왜냐면 책을 읽는 것 자체에 이미 아까운 시간을 많이 버렸기 때문에. 그런데 누군가 자기와 똑같은 불만을 가지고 리뷰를 남겨놓으면 그것에 투표를 할 수는 있다.
달리 말하면, "Smarter Faster Better"의 경우 5점 짜리 리뷰가 300개 달리고, 1점 짜리 리뷰는 1개만 달린 것이다. 근데 그 한 개의 1점 짜리 리뷰에 935명이 공감 표시를 한 것이다. 이제 다시 계산해보면 이 책은 300명의 지지자가 있고, 1명의 반대자가 있고, 935명의 '반대자의 지지자'가 있어 결론적으로는 300:936으로 반대표가 더 많은 것이다.
결론: 1분 고민하고 책을 잘못 사서 10시간을 갇혀 있기보다는 1시간을 투자해서 최대한 많은 리뷰(부정적인 리뷰 중심으로)를 꼼꼼히 읽고 9시간 동안 유익한 내용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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