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짜리 책 치고는 엄청 쉽게, 그리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어려운 문장이 없어서 속도가 팍팍 붙는 책이었다.
같은 소설이지만 칼의 노래는 속도가 매우 더뎠던 반면 정글만리는 엄청 빨랐다. 비문학까지 합쳐도 칼의 노래는 제일 느린 속도였고, 정글만리는 제일 빠른 속도였다.
아무튼, 정글만리는 최고의 책은 아니었다.
책을 보면 작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같은 현실을 볼 때 작가가 관심을 갖고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은 어디인지 알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조정래 작가의 시각은 내 기준으로 볼 때는 건전하지 못하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것인지, 실제 세상이 이 작품대로라면 믿을 사람 하나 없고 더러움으로 가득찬 게 인생일 것이다. 상사원들은 틈만 나면 젊은 여자가 나오는 술집에 접대를 하러 다니고, 중국의 관료들은 축첩을 일삼고, 중국 여자들은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맡기는 게 당연한 것이고.
자기 신념과 건전함을 지키며 살아가는 주재원, 상사원들이 이 책을 읽으면 모욕감을 느낄 여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남자는 아내보다 젊은 여자를 좋아한다."라는 당당한 주장은 도대체 어떻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인지, 작가의 수준을 알 만하다. 얼마나 확신에 차면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그 확신은 작가 자신을 돌아봄에서 출발했을 텐데,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만큼 책은 인간의 더러움을 묘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으며, 때로는 혐오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조정래 작가의 글솜씨는 이미 국내에서, 넓게는 세계 여러 곳에서도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글솜씨와 가치관은 다른 것이니까.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