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요한복음 14:27
세상이 주는 것과 차원이 다른 평안.
항상 마음에 평안이 가득하고 근심이 없는 삶.
언제나 싱글벙글하고 행복한 얼굴.
그런 것들이 가능하다. 내가 존경하는 교회의 목회자 분들도 항상 그런 삶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외모가 출중한 것도, 집이 넓은 것도 아닌데 항상 싱글벙글 뭐가 그리 즐거우신지 호탕하게 웃는 분들이 많다.
세상에 이렇게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하면서 본이 되는 좋은 분들이 많은데,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일부의 목사가 요즈음 기독교를 대변하는 것처럼 비추어지는 게 안타깝다.
아무튼, 나도 그 분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다. 그들이 발견한 평안을 왜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마음에 근심도 많고, 분노도 있고, 두려움도 크다.
이번에 무에타이 시합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작은 깨달음이 생겼다.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온갖 근심과 두려움과 싸워가면서 내가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이 고통을 이겨내고 트로피를 받으면 나는 나 자신을 세상에 증명할 수 있게 돼!"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나의 자아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이다. 자랑하고 싶고, 승리감에 취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적인 마음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자아가 죽고, 그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채우는 사람이라고 했다. 애초에 내가 기도하며 장고(長考)해보았다면, 시합에 재출전하기로 결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시합에 다시 나가는 의도 자체가 이전의 패배를 씻고 설욕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이 스포츠가 좋아서, 나와 잘 맞아서, 평생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패배했던 아픈 기억을 승리로 덮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니 승패는 나의 실력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진운을 따른다. 랭킹에 따라 비슷한 상대가 정해지는 프로 리그와 달리, 아마추어는 그냥 체육관에서 쓸만한 놈들을 데리고 나와서 붙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기도해보아야겠다. 나는 정말 이것을 하고 싶은지, 이것을 하는 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나의 근심과 고통, 평안하지 못한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나의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 연속이고, 즐겁지 못하고, 예민하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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