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는 인간

by Dongeun Paeng
Oct 24, 2015 · 만 25세

인간은 기억되는 존재다.

오늘 내가 만난 그 사람에게 있어, 나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오늘의 모습일 것이다.

오늘 만난 그 사람과 나는 언제 다시 마주칠지 알 수 없다.

오늘의 만남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오늘 내가 한 말과 행동으로 평생 기억될 것이다.


남을 대할 때 항상 마지막으로 대하듯 대해야 한다.

오늘의 모습이 나에 대한 그 사람의 마지막 기억이다.

내가 내일부터 착한 사람이 된다고 해도, 그 사람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나는 오늘의 나로 기억될 것이다.

누구를 대하든 그 사람의 역사책 한 페이지에 나에 대한 문장이 최소한 한 문장은 등장한다.

누구에게든 진지하게, 진심으로 대해야 하고, 누구를 만나든 일관되게 행동해야 한다.

나에 대해 상충되는 기억들이 어지러이 널브러져서는 안 된다.

나를 스치는 모든 인연들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라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 비전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2년 전 OCI라는 회사에서 인턴을 할 때도 그 비전은 변함이 없었다.


인턴들끼리 한 사람씩 자기소개를 할 때, 내가 비전으로 말문을 열었나보다. 그것을 기억해준 사람이 블로그에 나에 대한 얘기를 짤막하게 썼다. 나도 잊은 2년 전 나의 모습을 그 사람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다시 몇 달 전 그를 만났을 때 내가 해준 조언이(조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경박한 나의 의견이었을 뿐임에도), 그 사람에게는 자기 사상을 쌓는 하나의 건축 재료가 되었다.


그가 자기 블로그 링크를 보내주며 읽어보라고 했고, 만나서 오랜만에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었다. 나의 비전에 대한 그 사람의 첫인상, 내가 해준 조언에 대한 그 사람의 생각이 글에 드러났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비춰진 것보다 훨씬 가소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부끄러웠다.


그 후 2년 동안 내가 어떻게, 얼마나 변했는지는 그 사람의 세상에는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다시 만나기 전까지 그 사람에게 나는 2년 전 모습 그대로 굳어 있는 화석이었다.


그 때보다 내가 얼마나 퇴보했는지, 얼마나 부패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었다.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존재구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도 기억되는구나.


오늘 오랜만에 어느 친구를 만났다.

내가 아직 철이 없고 노골적이던 시절에 나를 알던 친구였다.


그 친구의 기억 속에 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돼지 같은 존재였다.

얘기를 듣자니 마음이 아팠다.

지난 일들에 대해 사과를 했을 때, 그 친구는 나보고 "굳이 이미지 세탁하려고 안 해도 돼~ 이제까지 내가 봐온 게 있어서 진심 같이 느껴지지가 않네."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기억될 것이었다.

내가 변했다고 말한들 그 사람의 머릿속의 내가 존재가 변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안타까움은 평생 내가 참회하는 마음으로 지고 가야 할 마음의 짐이다.

내 잘못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애초에 내가 지은 잘못들이 깨끗이 지워지는 것은 바라서는 안 될 일이다.


세상과 타인에게 떳떳하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목표 의식이다.

내 죄책감을 덜어놓으려고 하는 사과는 가식이고 허례다.


(2024-07-08: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께 하는 회개라는 문장이 여럿 있었는데, 삭제했습니다. 지금은 사람에게 한 잘못을 신에게 용서 구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죄 짓고 살아도 된다, 라는 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고.

잘 살아야겠다. 똑바로 살아야겠다.

다른 사람의 기억이 된다는 것은 나도 그 사람의 인생의 일부를 이룬다는 뜻이다.


정말로, 정말로 행동을 조심해야겠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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