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匠人) 최유민

by Dongeun Paeng
Oct 16, 2015 · 만 25세

유민이형은 내가 사업을 같이 하고 싶었던,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같이 하고 싶은, 현재로서는 유일한 친구이자 나의 롤모델이다.

그리고 뭘 하든 성공할 것이라고 내가 확신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 또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른 사람이 생각 안 나는 것 보니, 유일한 사람이 맞다.


그는 스타트업 스쿨에서 찍어낸 듯한 정형화된 창업가가 아니다. 장인이다.

사실 진짜 상인, 진짜 사업가는 코딩과 디자인이 빠삭하고 업계 인맥도 넓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경제 감각을 가진 예술가, 장인이야말로 진짜 사업가다.

겉으로 비춰지는 데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아주 오랫동안 노력을 축적하는 사람이 진짜배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말은 당연한 듯 들릴지 몰라도 우리 주변에 "겉으로만 IT 창업가"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코딩도 배우고, 업계 인맥도 튼튼히 쌓고, VC에게 투자 받는 요령도 알고,

그것이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자질인가?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 제품과 고객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장인이자 제대로 된 사업가다.


Jim Collins의 Good to Great에 나오는 Great companies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필요에 따라 필요한 만큼만,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만 기술을 사용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는 무조건 끼고 가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스타벅스 CEO 하워드 슐츠는 카페 창업 강연 따위에 참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커피를 미친 듯이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스타벅스는 매장 하나의 연매출이 10억 원을 넘을 때까지도 매장 내 POS 시스템에서 MS-DOS를 사용하고 있었다ㅋㅋㅋㅋ MS-DOS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1990년대 중반에 지원을 중단했다고 한다. 연 매출이 10억 원이 넘는 카페 POS 시스템이 MS-DOS로 작동된다는 게 상상이나 되는가?


아니 그보다도 MS-DOS로 작동하는 POS 시스템을 깔아놓아도, 그리고 그 컴퓨터로 인터넷 접속도 불가능해도, 연 매출이 10억 원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단계를 잘 알고, stage마다 적절히 투자를 받는다고 해서 그 스타트업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아무 데도 없다. 요즘 유니콘이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트위터·에버노트… 위기의 실리콘밸리 유니콘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창업 후 10년~20년이 지나자 슬슬 스타트업 스쿨(실제로 존재하는 스쿨이 있는 게 아니라 업계 풍토가 그렇다는 것)에서 가르치는 방법론이 틀렸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폴 그레이엄이 스탠포드 강연에서 경계하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투자를 받고, 팀을 꾸리고, 서비스를 만든 다음에 광고하는 것.

기업 가치가 높이 인정받게 되면 exit하는 것.

그 단계를 마치 정형화된 스타트업 바이블처럼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돈으로만 따지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만,

웬만큼 알려진 스타트업의 대표보다 아프리카 BJ가 돈을 더 잘 번다.

BJ들은 삐까뻔쩍한 사무실과 명함이 없어서 그렇지 둘 다 사업가다.

후자는 1인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는 일이 경우에 따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아무튼, 유민이형은 스타트업 키드가 아니다.

그리고 사업가 흉내를 내지도 않는다.

그냥 자기 일을 무지하게 잘하는 장인이다.


하지만 나보다 한 살 많은데 현금으로 들어오는 월 수입이 1000만 원 정도이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세전 1억6천5백만 원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사람인 연봉계산기 기준)

혼자 일해서 혼자 버는 것이기 때문에 웬만한 사업가보다 훨씬 많이 버는 셈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일하는 시간이 하루 4~6시간 x 6 = 약 30시간이다.


프로그래머도 모르고 VC도 모르고 아는 사람 하나 없지만 자기 분야에서 크게 성공했고, 고객(주로 법조인)의 업계에서 reputation도 기대 이상으로 높다.


업을 시작한 지는 5년이 넘은 것 같다.


이 형을 보면서 잘 되는 사람이 왜 잘 되며, 어떻게 잘 돼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내가 십시일반을 완성하기 전에는 다른 일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 형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단 자기가 하는 일에서 크게 성공을 경험해본 사람은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자신감이 뼛속까지 스며들게 된다.

내겐 아직 그런 자신감이 없다. 성공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시일반을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일에서 도를 튼 사람은 다른 일을 시작해도 금방금방 잘한다. 모든 업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리를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백주부가 새로 하는 사업마다 잘 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얘기를 나누어보니 유민이형의 인생 원칙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형이 무엇을 하든 성공할 수밖에 없는 '진리'라고 생각됐다.


인간으로서, 장인으로서 본받을 만한 사람이다. 내 주변 또래 중에 이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오늘 나눈 대화를 간략히 적어놓아야겠다. 읽기 전에, 꼭 알아두어야 할 놀라운 점은, 유민이형은 나한테 뭘 가르쳐주려고 체계적으로 얘기한 게 없다. 그냥 수다를 떨면서 이제까지의 일들을 듣는데, 내가 최근 읽은 위대한 기업가들과 기업들의 공통점들이 소름끼치게 맞아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들으면서 내가 속으로 정리한 것이고, 형과의 대화는 정말 평범했다. 그리고 형은 자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죽어도 안 할 사람처럼 얘기했다. 대단한 사람은 자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정말인가보다.


1. 돈 버는 데는 왕도가 없다는 것. 무조건 성실하게, 꾸준하게, 묵묵히 하는 일을 계속해서 잘할 것. 형은 자기가 똑똑하고 잘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된 게 아니라 누구라도 자기가 한 것처럼 꾸준히 5년 이상 하면 똑같이 될 거라고 말한다. Jim Collins의 Good to Great 중 제일 처음 나오는 greatness, 겸손한 리더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하지만 초반에 어떻게 틀을 갖추었는지 들어보면 엄청난 고민과 고생이 있다. 추운 겨울날 전봇대에 전단지를 혼자 붙이러 다니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혼자 고민한 흔적들이 5년 동안 누적되어왔다. 그것이야말로 know-how이고, 형만의 얼큰한 맛을 내는 비밀 양념장이 되는 것이다.


2. 돈보다 사람, 이윤보다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 순간의 이윤을 위해 얕은 수를 쓰거나 남을 속이지 말 것. 형은 어느 날 고객이 값이 너무 싸다며 3배 이상의 금액으로 착각했을 때도 사실대로 말하고 본래의 값만 받았다. 당장이야 수입이 엄청 크게 늘어날 수 있지만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기존 고객의 약속 시간을 조정하지 않는다. 차라리 새로운 수입을 포기한다. 지금 하는 일을 완벽히 하고 다음 일에 착수한다.


3. 가벼이 하려고 하지 말 것. 쉽게 쉽게 겉치장으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딱 보면 안다고 한다. 남들이 굳이 왜 사서 고생하냐고 할 때도, 본인은 절대 대충 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면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 장인스러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4. 거창한 미래를 꿈꾸기보다 오늘 할 일을 잘할 것. 이 부분은 내가 많이 부족하고 배워야 할 점이다. 나는 비전을 외치고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잘하지만, 당장 오늘 할 일을 열심히 하고 detail에 신경쓰는 것은 약하다. 이 또한 Jim Collins의 Good to Great에 나온 얘기인데, "이러이러한 기업이 되자!!!"라고 선언하고 일에 착수하기보다는 그저 매일매일을 충실히 살았을 때 뒤돌아보니 Great company가 되어 있더라, 라는 것이다. 유민이형이 한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형은 자기가 국내 최고의 전문가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아예 없는데, 5년이 지난 지금 업계 일인자 중 한 명이라고 할 만하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이 형은 다음에 어떤 사업을 하게 되더라도 자신의 원칙을 똑같이 고수해나갈 것이다. 고객에 대한 진정성과 기본적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투명하게 대하는 인격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무엇을 하든 다음 프로젝트도 멋지게 성공시킬 사람이다.


나도 십시일반이라는 첫 인생 프로젝트를 성공의 궤도에 올려놓고 싶다. 십시일반은 이윤을 창출하는 조직은 아니지만 세상에 기여하는 측면에서는 웬만한 기업보다 더 좋은 일을 하고 있다. 십시일반을 통해 대학생에게 기부 문화를 심어주어서 20~30년 후에는 기부가 !#$!%^!@^ 세상에 미치는 파급력은 무려 %!@%!%!#$ 이런 자세한 것은 다른 글에서 기회가 되면 쓰고 싶다.


최근 읽은 위대한 기업들에 관한 책들의 주인공들,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하워드 슐츠. 공통적으로 그들은 자기 자신을 마술사, 예술가, 장인, 상인 등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불리길 원했다.


자기가 하는 일이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진지하게 임해야 할 일종의 mission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자기가 하는 일과, 고객에 대한 진지함이 무서울 정도로 치열했다.


유민이형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이 사람들이 떠올랐다. 형이 들려준 이야기와 내가 읽은 책 속의 이야기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유민이형은 스스로 장인이자, 고객에게는 마술사이고, 자신의 노하우를 공들여 파는 상인이고, 자기 고객을 도자기 빚듯이 새로운 그릇으로 만들어내는 예술가다.


(2024-07-08: 10년 정도 지난 지금 돌아보건대 아직도 저는 장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십시일반의 완생을 지켜볼 때까지 책임지지 않았고, 그 후에 한 일들에도 유민이형의 정신을 본받는 자세로 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야말로 그의 태도를 갖추고 싶지만, 10년 간 그러지 못했음을 고려할 때 자신이 없는 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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