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친구들로부터 배우다

by Dongeun Paeng
Sep 15, 2015 · 만 25세

세 사람이 지나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三人行必有我師 (삼인행필유아사)


공자가 한 말이다.

200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못 본 친구들을 6~7년만에 다시 만났다.


한 친구는 선관위 공무원으로 입사를 앞두고 있었고, 다른 한 친구는 나와 같은 대학생, 나머지 한 친구는 농사를 짓고 있었다.


친구들이 기억하는 내 모습은 고등학교 시절의 나였다. 나도 그 친구들을 고등학교 때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었고.


우리는 각자 고등학생이었을 때보다는 이상이 현실에 의해 많이 가려져 있었고, 우린 세상과 타협할 줄도 알게 되었고, 고민거리도 당시에 비해 철저히 현실적인 것들로 변해 있었다.


그 중 제일 심하게 변한 건 나였다.


대학에 올라오면서 내 주변 친구들이 온통 서울대 출신의 소위 엘리트들이다 보니, 모르는 새 내 가치관이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나는 너무 '성공지향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성공'이라는 것도 나는 너무 이상하게 정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서울대 친구들의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엘리트 사회에 적응해버린 것이었다. (스스로 엘리트 집단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도 민망하고 우습다. 나는 남들처럼 똑똑한 사람이 전혀 아닌데. 내용의 전달을 위해서 편의 상...)


대학을 다니면서, 그리고 오랜 서울 생활을 통해 평소에는 못 느꼈는데, 7년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있기는 커녕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상의 측면에서 나는 오히려 퇴보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허황되이 들리는 얘기를 지금보다 더 많이 떠들고 다녔다. (물론 지금도 돈키호테 같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 돈키호테는 아직도 내가 지킬 박사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허구의 인물이다.)


부끄러워서 차마 일일이 적을 수는 없지만, 생각하는 스케일이 정말 컸다. 그리고 꿈꾸는 것들은 모두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시의 나는 사람이 언젠가는 보조 장비 없이도 하늘을 날 수 있다며 아빠와 격론을 펼쳤고, 우사인 볼트처럼 빠르게 달리는 것도 아주 어릴 때부터 적절한 훈련을 받으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불가능 같은 건 사람이 만드는 생각이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생믿었다.


나는 선천적인 재능으로 사람의 미래를 딱딱 정해버리고 분류하는 것을 질색했다.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타고나는 사람은 없고, 사람은 노력을 통해 천재가 되어가는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분통할 것 같았다.


아무튼, 친구들이 오랜만에 본 나의 모습은 더이상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어느 직장이 좋은지, 돈은 얼마나 버는지, 그 회사의 네임 밸류는 어떤지, 자식은 어느 나라에서 키우는 게 좋은지, 어느 회사는 접대를 많이 받고 어느 회사는 꼰대가 많은지 등등.


친구들과 약속이 있기 전에 베인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친구들은 베인컴퍼니가 어느 회사인지도 몰랐다. 글로벌 컨설팅사라는 명성 따위에 집착하는 사람은 그 중에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 중 농사를 짓던 친구는 연 수입이 7천만원 정도라고 했다. 애초에 그런 걸 궁금해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해줬지만.


"이야, 전원 생활에 돈도 그렇게 많이 벌면 진짜 땡기는 조건이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야. 3년 있으면 외제차 한 대 뽑겠는데?"라고 말했을 때,


내 얘기를 듣던 다른 친구가 갑자기 물었다. "너는 돈이 그렇게 중요해? 니가 생각하는 성공이 뭔지 궁금하네.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거야? 내가 아는 너는 이상을 좇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너를 남다르다고 생각하며 존경한 이유가 그런 점 때문이었는데. 아프리카를 돕겠다는 생각은 아직 있긴 한 거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서울대생은 너밖에 없다. 그리고 넌 뭘 하든 항상 잘해왔잖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잘 될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너야. 그러니까 바라보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니 인생에 부담 좀 가져라. 너는 꿈꾸는 건 반드시 해내는 사람이었잖아."


겉으로는 나는 그런 이상주의자가 아니라며 웃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굉장히 씁쓸했다. 누군가는 나를 그렇게 기억해주고 있었구나. 아직도 나를 꿈꾸는 사람으로 기억해주고, 그런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구나. 내가 정신차리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기대를 꺾어버리는 게 되는구나.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좇는 많은 것들 중에 헛되고 일시적인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내 인생은 길어야 100년에 불과하지만, 내가 인류에 남기고 갈 수 있는 유산은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1년짜리가 될 수도, 천 년짜리가 될 수도 있다.


여성과 흑인의 인권 신장, 노벨상, 상대성이론, 전기, 자동차 같은 유산을 남기고 떠난 과거의 인물들 덕분에 지금의 인류가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역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들이 모두 엘리트였던 것도 아니고, 상류층도 아니었고, 부자인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각자 자기가 가진 것을 최대로 활용해서 어떤 비범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나도 비록 가진 것도 없고 남들에 비해 특출난 무엇도 없지만, 최소한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떻게 이 사회에 임팩트를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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