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그러니까 내가 아직 전경련에 들어가기도 전, 그리고 대학에서 마지막 학기를 다니던 때에 이 블로그에 "운칠기삼 / 남이사"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인생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가치관 세 개를 써놓았다.
운칠기삼, 전화위복(=새옹지마), 남이사.
지금 생각해도 참 잘 생각한 것 같다. 지금부터 아래에 써내려갈, 내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나눈 얘기를 통해 인생은 운칠기삼이자 새옹지마, 그리고 남이사의 결정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크게 두 가지 point가 있는데, main과 side로 나누어 글을 쓸 생각이다.
<Main - 전화위복, 운칠기삼>
내 친구는 나와 동갑이고, 2014년 초에 대학을 졸업한 후에 나와 같이 전경련에 입사했다.
친구에게 동의를 얻고 쓰는 글이기 때문에,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자면 그 친구는 SKY가 아닌 소위 'in 서울' 대학을 나왔지만 입사 당시 스펙이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전경련은 세전 초봉이 4,800만 원 정도였다. 일하는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지만, 음... 신입사원 12명이었나, 그 중 8명만이 1년 넘게 남아있다는 것은 젊은 직원들에게는 확실히 맞지 않는 직장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몸이 편하고 연봉도 높은 직장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당시에는...
우리가 입사했던 해에, 전경련은 역사상 최초로 수습기간 이후 신입사원 중 한 명을 해고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누가 들으면 글로벌 초일류회사라고 착각할 법한 무서운 포스가 느껴진다.
우리 기수 이전에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우리 때에도 해고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반 년의 수습기간 동안 크게 문제를 일으킨 신입사원은 없었다.
있었다면 지각이 제일 많이 누적되고, 회사에서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녔으며, 업무시간에 탁구를 상습적으로 친 나뿐이었다.
그런데 그 때 희생된 동기가 바로 내가 오늘 만난 친구(결론부터 말하자면 위너)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먼 곳에서 회사에 오기 위해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한 번도 지각하지도 않고, 일도 문제 없이 한 친구인데 뭐가 문제였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인사담당자였던 분께 왜 내가 아니라 그 친구가 해고된 것이냐, 해고자가 있다면 나여야 하지 않냐고 따져물었을 때도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회사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밝고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친구를.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위로뿐이었고, "이번에 하루라도 빨리 나간 게 신의 한 수가 될 거다. 분명히 더 좋은 곳으로 가서 떵떵거리게 될 거다. 나도 곧 따라나가마."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진짜 그 때 그 일이 그 친구에게는 신의 한 수였다.
이후 1년 동안 그 친구는 다른 곳에 취업을 준비했고, 얼마 전 국내 top 자산운용사에 합격했다. 친구네 회사 자랑을 조금 하자면, 초봉은 무려 5,400만 원! 같은 본부 상사들은 전부 SKY, 카이스트 출신이고, 개인별로 실적이 나는 자산운용사의 업무 특성 상 퇴근 시간 압박도 적고 운용 전략도 자율적이다. (이쯤 되면 뭐가 전화위복, 새옹지마라는 건지 감이 왔을 듯하다.)
내 글에 한 번인가 등장했던 EVP 기준으로 봤을 때 Compensation, Career, Culture 3박자가 거의 다 좋은 최고의 직장인 것 같다. 물론 회사를 오래 다녀봐야 그 회사를 아는 것이지만, 확실한 것은 전경련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3C 모든 측면에서, 그리고 그 친구의 만족도 측면에서.
오늘 만나 회사 얘기를 하는 내내 행복해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뻤다. 결국 니가 위너구나! 결과적으로 훨씬훨씬훨씬훨씬 좋은 회사를 가게 됐으니!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다.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 미끄러져도, 그 사람이 언제 일어나서 하늘을 날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다음으로 운칠기삼이다. (아직 Main 파트다. Side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이 친구가 어떻게 회사를 들어가게 됐는지 듣고 나서, 새옹지마와 운칠기삼이 쌍으로 겹친 일련의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를 나간 후 친구의 일을 시간 순서로 나열하자면,
멘붕이 옴. 절망의 시기.
-->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음.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도 막막.
--> 채용 공고에서 해당 top 자산운용사 공채가 뜸. 지원 안 함.
--> 두 달쯤 뒤 같은 포지션에서 만족하는 지원자가 없었다는 이유로 소수 학교에 추천채용으로 공고가 올라옴.
--> 거기에 지원하고 관련 공부를 짧게 함.
--> 면접을 보러 갔는데 4인 1조 중 친구를 제외하고 같이 면접 본 3명의 스펙은 다음과 같음.
A: 카이스트 학부 졸업. 골드만삭스 도쿄 오피스 리서치 full-time analyst. UBS 근무. quant 공부하려고 카이스트에서 경영공학 추가로 공부.
B: CFA level 2. 연대 졸업.
C: 토론토 대학 학부 졸업. IB 인턴 1회, PE 인턴 3회.
내 친구: 금융권 인턴/자격증 無, in 서울 대학 학부 졸업 후 반 년간 전경련 근무. 이후 경력 없음.
놀랍게도 여기서 최종 합격한 사람은 내 친구와 B였다고 한다. 실력으로 보나, 학력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더 좋은 조건의 지원자들이 있는데 친구를 뽑은 것은 attitude 때문이었다고 한다. 친구는 자산운용사에서 일하기 위해 지난 1년간 대기업 공채에 지원도 하지 않고, 외골수로 공부해왔다고 대답했고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전까지 친구네 팀에서는 SKY 밑으로는 다 잘랐기 때문에 상사들의 학력도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SKY+카이스트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친구는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운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노력도 무지 많이 했겠지만, 노력으로 커버할 수 없는 간극이 대충 봐도 7할은 되어보이는 상황이다.
역시 인생은, 운칠기삼이다. 노력도 중요하고 실력, 경력, 학력 등 사람의 힘으로 갖출 수 있는 다양한 준비도 그 비중이 크지만, 운 좋은 놈은 못 이긴다.
Main의 결론은 이것이다.
인생은 새옹지마, 운칠기삼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지금 나보다 뒤처져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못나보이거나, 겉으로 보여지는 스펙이 남들보다 떨어지거나,
뭐 어떻든지간에 그 사람이 앞으로 얼마나 큰 일을 해내고 얼마나 일이 잘 풀릴지 절대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그건 정말 근시안적인 것이다.
인생은 장기전이다.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는, 다른 사람의 현재 모습이 그 사람의 미래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Side - 남이사>
학교 동기 중에 불미스런 일로 연락이 잘 되지 않게 된 친구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친구를 좋아한다. 지금도 좋아하고, 무엇을 하든 응원한다. 누구도 그 친구를 비난하고 헐뜯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 친구를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본인들은 얼마나 깨끗하게 살길래 그러는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깨끗했던 예수님도 강도와 창녀를 용서하셨는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하다가 잡힌 한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의 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래도 그들이 계속해서 질문을 하자 예수님은 일어나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그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땅바닥에 무엇인가 계속 쓰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둘씩 모두 가 버리고 예수님과 거기에 서 있는 여자만 남았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그 여자에게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죄인 취급한 사람은 없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녀는 '주님,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그렇다면 나도 너를 죄인 취급하지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8:3~11)
아무튼 어떤 사람들은 마치 그 친구가 한 번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성공하면 안 된다거나 혹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권선징악형 꼰대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속좁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악질적인 기대처럼 실수 한 번으로 남의 인생이 망가지지도 않는다.
그들의 평가와 판단이 유치한 질투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친구뿐 아니라 다른 멀쩡한 친구들이 잘되는 것 같을 때에도 꼭 나쁜 소문이나 뒷담화를 퍼뜨리기 때문이다. 남이사, 누가 어떤 실수를 해서 구설수에 오르든 나랑 무슨 상관인가. 직접 피해자도 아니면서 그 놈이 그런 실수를 하다니 충격이라는둥, 그 서비스 망할 것 같다는둥, 안 좋은 얘기를 왜들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그 친구는 원래 준비하던 일을 영원히 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후 사업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준비하던 길이 막혔으니 정말 간절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그 사업이 지금 꽤나 인기가 많다는 것을, 오늘 만난 그 친구가 바로 그 서비스의 헤비 유저여서 알게 됐다. 어찌나 푹 빠져있는지 2주만에 5만원이나 현질을 해버렸다며, 그 서비스 혹시 아냐며, 나에게 추천을 해줬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서 친구가 운영하는 서비스의 이름을 들으니 반갑고 신기했다. 그리고 더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남이사 그 친구에게 뭐라고 하든, 신경쓰지 말고 멋지게 성공했으면 좋겠다. 원래도 똑똑한 친구였기 때문에 앞으로 더 잘 살아갈 거라고 믿는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결론>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누가 지금 인생에서 바닥을 치고 있든, 하늘을 날고 있든, 잘못을 저질렀든, 착하게 살든, 그것은 그 사람의 10년 후와는 거의 무관하다.
인생은 운칠기삼, 새옹지마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을 속단할수도, 평가할수도, 욕할수도 없다.
우리가 겸손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어려움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하고, 진심을 담아 응원하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남을 평가하며, 그에 대해 얘기하고, 다른 사람의 흥망성쇠를 점치겠는가.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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