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다 열심히 사니까 평균으로 살면 평균 이하의 삶을 살게 된다. (...?!)
호주 여행 중에 많이 느꼈다.
본다이 비치에 가면 평일에도 오전부터 오후 내내 사람들이 있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토스트 하나 먹고 보드 챙겨서 집 앞 바닷가로 서핑하러 나온 젊은이들이 수두룩하다.
주말엔 더 심하다. 너나 할 것 없이 놀고, 늦저녁에 양복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야근 인구가 적다는 얘기다.
나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호주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게으른가,'라는 생각을 처음에 했지만 곧 내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호주 사람들은 정말 잘 산다. 사회적 후생의 정도도 매우 높다. 소고기도 많이 먹고(앵거스라고 하던가, 싸구려 소이긴 하지만 10불 밖에 안 한다!), 맛있는 음식과 과일이 천지에, 주변에는 귀여운 동물들도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음악과 사랑이 넘치는 나라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가 확실히 이상한 것 같다. 전국민이 열심히 해서 경제를 끌어올린 과거가 있으니만큼, 지금도 그런 시각이 잔재하는 것 같다. 다같이 열심히 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자신을 희생해서 국가를 살리는 수밖에 없다고.
대부분이 야근하니까 안 하는 게 태만한 거고,
공부도 다 열심히 하니까 안 하는 게 게으른 거고,
영어도 다들 잘하니까 못하는 게 이상한 거고,
그래서 전에 어떤 글에 썼듯이 편의점이나 주유소 알바조차 영어를 쏼라쏼라 엄청 잘하는 것이다. 오버스펙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노력 대비 보상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전체가 노력을 줄이기보다는 다같이 더 노력하고. 그래서 대입 시험의 난이도와 노력 수준이 고등학교 입학, 중학교 입학, 심지어 유치원까지 전이되고.
그렇게 대한민국 노동 인구의 평균 능력이 향상되니까, 다른 나라 같았으면 뛰어난 인재로 여겨졌을 청년들이 우리나라에서는 평범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런 것을 Red Queen 현상이라고 한다.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면 전체적으로 공진화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모두가 너무 힘들게 되는 단점도 있다.
대기업에서는 완전 땡큐다. 고급 인력을 싼 값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 같은 국내 최고의 기업에서 일해보면 중졸, 고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을 시킨다고 한다.
이 '레드 퀸' 현상 때문에, 중졸도 할 수 있는 일을 구하기 위해 스펙 높은 대졸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게 된 것이다.
즉 기업에서는 해당 업무보다 훨씬 많은 재능을 지닌 사람들을 뽑는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경제학의 기본 이론으로 설명하자면 노동 시장에서 인재의 공급이 수요보다 많고, 그에 따라서 인재라는 재화의 가격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통해 모두가 뛰어난 인재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손 쉽게 고급 인력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고생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수출 제조업과 기간산업 위주로 성장해온 과거 세대에는 머리가 아니라 몸을 써서 부가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게 장땡이었다.
하지만 점점 산업구조가 변하고, 머리를 써서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몸은 시간을 쓰는 만큼 일을 해내지만 머리는 그렇지 않다. 휴식이 많을 수록 머리는 일을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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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그러니까 내가 아직 전경련에 들어가기도 전, 그리고 대학에서 마지막 학기를 다니던 때에 이 블로그에 "운칠기삼 / 남이사"라는 글을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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