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

by Dongeun Paeng
Oct 28, 2014 · 만 24세

우리 회사의 인테리어 디자인에는 윗분의 취향이 세세한 부분까지 녹아 있다.

스티브 잡스의 '단순함에 대한 집착'과 '완벽주의'에 영향을 받은 그는 몇 군데 중요한 공간에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그 중 하나가 화장실이다. 시쳇말로 짜치 같은 게 눈에 띄는 걸 싫어해서, 우리 회사 화장실 칸에는 휴지통이나 뚫어뻥 같은 게 없다. 메탈 재질의 칸막이와 새하얀 변기, 새하얀 휴지만 있다. 딱 들어서면 아이폰이 연상된다고나 할까.

 

문제는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예상했겠지만) 변기가 자주 막힌다는 것이다... 청소부 아주머니의 안쓰러운 모습은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됐는데, 아주머니는 1주일에 한 번꼴로 더럽혀지는 바닥과 도구가 없어 손을 넣어 뚫어줘야만 하는 변기에 질려버리신 듯하다.

 

아니 휴지통이나 뚫어뻥을 갖다 놓지 그래요, 라며 지나가듯 충고하시는 본부장님께 청소부 아주머니가 하신 대답은 “몇 번이고 요청했는데 보기 싫다고 갖다 놓지 말래유~”라는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인의 목적은 실용목적에 맞는 쾌적하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것 아니었나?

 

이런 사소한 불편들을 제기하는 것도 회사 내에서는 쉽지가 않다. 일단 승진이 막힐 위험이 크고, 한 번 반동분자로 찍히면 과장 달기도 힘든 게 이 곳의 분위기다. 크고 작은 불편들을 적어놓았다가, 나중에 이곳을 떠날 때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건네주어야겠다.


일도 편하고 돈도 많이 주는 우리 회사, 이제 문화만 바뀌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회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눈과 귀가 사방에 깔린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기가 속한 조직을 까는 글을 쓴 것은 어른들의 말씀처럼 역시 경솔하고 철없는 행동이었으려나? 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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