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적이라는 개념이 없다.
어느 동네, 나라, 민족, 문화권 같은 지엽적인 그룹에 나를 귀속시키는 것 자체가 작은 생각이다.
어느 동네 출신인지를 중시하는 사람의 관심사는 동네 간 경쟁에 머문다.
동네끼리 경쟁하고, 동네끼리 싸우는 수준에서 생각하게 된다.
이런 사람이 동네를 초월한 국가의 발전에 관심을 두기란 쉽지 않다.
손정의가 가장 감명깊게 읽었다는 '료마가 간다'라는 책에서도, 번(마을) 내에서 상급무사와 하급무사 간 갈등이 팽배한 시대에 주인공인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인'이라는 개념을 가슴에 품었다.
그는 어느 번의 어느 무사인지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다 같은 일본인으로서 힘을 합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개국의 흐름에 대해 국가 차원의 적절한 준비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료마와 같이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 국가를 단위로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러분이 어느 동네 출신인지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한국 사람입니다! 우리의 적은 나라 밖에 있다고요! 우리끼리 싸우는 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료마도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이런 사람도 꽤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결국 국가 간의 갈등, 심하게는 전쟁이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국가 간 경쟁의식, 차별의식 때문이다.
이 시대에 걸맞은 진짜 큰 그림은
국가를 넘어서, 민족과 문화를 넘어서 "인류를 하나로" 묶는 생각이다.
애국심도 중요하지만 이제 애국심을 넘어서 인류애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우리는 미국 사람, 이스라엘 사람 따위로 묘사되기보다는 '인간'으로 구분되는 게 맞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국적, 문화, 인종밖에 다를 게 없는 우리 사람(Human)들끼리 싸우고 죽일 겨를이 없다.
이제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 미국 vs. 중국" 같은 무의미한 전투를 중단하고 전쟁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그 수준은 바로 "인류 vs. 인류를 위협하는 모든 것"이다.
우리의 진짜 적은 사람이 아닌 것들(non-Human) 중에 있다.
그것은 질병, 가난, 기근, 자연재해 등이다.
우리는 이제 인식을 넓혀야 한다.
사고의 기준이 좁디 좁은 국가가 아니라 '전 인류'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나라끼리 싸울 시간에 화해로 하나가 되어서 질병과 싸워야 한다. 에이즈, 간염, 암, 패혈증, 조류독감, 에볼라바이러스 등 이미 맹위를 떨치는 적들이 지구상에 만연하다. 우리는 빈곤과 싸워야 한다! 가난이라는 적과 싸우다 지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아군이 질병과 가난이라는 적에 의해 사살되고 있다는 것이다.
각 나라의 국방비를 의료 연구비에 쏟는다면 어쩌면 우리를 두렵게 하는 질병들은 삽시간에 제압될 수도 있다.
각 나라의 국방비를 빈곤 퇴치에 사용한다면 굶어죽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세상이 당장이라도 올 수 있을 것이다.
같은 편끼리 싸우느라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이다!
삼국시대에 같은 우리나라 사람끼리 이 좁은 한반도를 차지하려고 싸웠던 것, 에도 시대에 일본에서 상급 무사와 하급 무사 간 차별이 존재했던 것. 지금 생각해보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모습이다.
징기스칸, 알렉산더, 진시황 등 역사 속의 위대한 통치자들은 천하통일을 꿈꾸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어쩌면 국가 간 싸움을 불식시키고 "더 큰 무언가"와 싸우고자 하는 거대한 그림이 있었던 게 아닐까?
일각에서는 외계 생명체가 있네 마네 하는 요즘, 다시 한 번 그런 인물이 등장해 지구 전체를 하나로 묶어줄 때인 것 같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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