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환생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 사는 인생이 내 영혼에 허락된 유일무이한 인생이다.
나는 Second Life는 없다고 믿기 때문에, "다음 생에서는"과 같은 말들은 나에게는 위안이 되지 않는다.
첫 직장에 입사한 지 이제 거의 세 달, 졸업한 지는 한 달이 지났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나의 평가는 딱 하나다. 이 일은 내가 하고 싶은(혹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어서, 나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업무 강도가 높은 것도 아닌데 왜 하기 싫은 일이 돼버렸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니 이 일은 목적성, 자율성의 측면에서 0점이다.
내가 왜 이 보고서를 쓰고 있지, 내가 왜 이걸 찾아보고 있지 하는 생각만 계속 들고, 내가 결정해서 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는 것이다.
조직행위론과 인사관리에서 배웠던 Job Characteristic Theory(직무특성이론)에 따르면, Autonomy(자율성)이 그 일로부터 오는 Motivation, Satisfaction, Performance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 다른 이론 중에는 직원가치제안(EVP, Employee Value Proposition)이 있다. 이 EVP는 3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걸 3C라고 한다.
3C는 경력(Career), 문화(Culture), 보상(Compensation)로, 이 세 가지가 모두 잘 갖추어져 있으면 그야말로 최고의 회사이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고 이 중 어느 한 부분이 뛰어나야 직원들을 붙잡을 수 있다고 배웠다.
우리 회사는 Compensation의 측면에서는 가공할 수준을 갖추고 있으나(그리고 그것에 끌려 입사했으나), 나에게는 문화와 경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입사하고서야 깨달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정례적이고 반복적이어서, 창의력보다는 익숙함이 요구되는 일이 많다. 첫 1년 동안 연례 행사 요령을 익히고 나면, 앞으로 5년이고 10년이고 같은 걸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내가 가진 Talent가 100이라고 하면 그 중 10도 채 활용하지 못하고 썩히고 있다는 기분이 매순간 든다.
원래, 남이 주는 일을 하는 한 자기 Talent를 100% 사용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여기서는 정말 10%도 못 쓰고 있는 것 같다.
남의 돈 먹기가 쉬운 게 아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대학에서 얻은 지식들, 그리고 밤마다 떠오르는 숱한 아이디어들이 여기서는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한 사례 하나를 써볼 생각이다.
아무튼, 오직 한 번 살 수 있는 인생인데, 이렇게 매일 투덜대면서 하기 싫은 일 하면서 살 거면, 애당초 나는 왜 태어난 거냐, 라고 묻고 싶다.
엄마 뱃속에 살던 시절의 나에게 앞으로 살 인생을 보여주고 태어날 건지 말 건지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그런데 내가 본 나의 모습이 이런 거였다면, 나는 "그래요, 이 삶 살겠어요!"라고 했을까?
내가 살아야 하는 100년의 인생 기간 중 40년을 차지하는 직장생활 파트가 내내 지루하고 하기 싫은 노역을 해야 하는 것으로 묘사됐다면 내가 그 삶을 살려고 했을까?
그래서 나는 한 번 사는 인생 동안, 태어난 게 아쉽지 않게 살고 싶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웬만하면 다 해보고 싶다.
새로운 곳을 가고, 특이한 경험을 해보고, 뭔가 떨리는 일들도 과감하게 도전해보고.
그러면 한 번 사는 인생 모험하듯 살면 신날 것 같다. (근데 이건 완전히 개인의 성격인 것 같다. 내가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성격일 뿐.)
Flying Suit를 입고 맨몸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려보고 싶기도 하고, 레이싱 대회에 나가보고 싶기도 하다.
티벳 고원에 홀로 가서 정신수양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고 음악도 만들고 싶다.
현실적으로 다 해보는 게 불가능하다고 해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다.
첫 직장생활을 통해 느낀 점이 많다. 나는 왜 사는가, 돈은 왜 버는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내일 죽어야 한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등등.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었던 모든 얘기, 나의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인생길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된다. 앞으로 이어질 글들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진로를 선택하는 데 도움을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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