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판단, 가치판단 - 2 정치

by Dongeun Paeng
Aug 21, 2013 · 만 23세

종교에 이어, 정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정치적인 문제의 가장 밑바닥에는 국가 통치술에 대한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 미국, 일본을 대하는 태도라든지 국가 경제를 통제하는 방법 면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한다. 상황마다 요구되는 해결책이 다르고,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어느 방법이 옳은지 알기가 어렵다. 양측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 의견의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결국 국가를 통치하고 유지함에 있어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즉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중요성의 판단은 어디에 더 큰 가치를 두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결국 정치적인 갈등은 가치관의 차이에서 온다.


최근의 예를 들어보자면, 나라의 미래에 관하여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선거가 더 중요한 문제인지, 북한과의 외교와 빈틈없는 국방이 더 중요한 문제인지 등에 대해서는 사실판단이 불가능하다. 한 쪽에서 열심히 설명을 해도, 다른 쪽에서 '아냐, 이게 더 중요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


근대 정치학의 기초를 세운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의 "군주론(1513)"을 보면, 같은 결정을 내려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옳은 결정이 될 수도, 그른 결정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느낀 군주론은 튼튼한 논리(연역)보다는 역사를 소개하는 달변(귀납)에 가까운 책이지만 위의 말은 정치적 결정을 표현하기에 참 좋은 것 같다.


상황에 따라 해결책도 변할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 않은가? 그런데 흥미롭게도, 많은 정치인들 그리고 특정 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보수적인 방침 혹은 진보적인 방침이 옳다고 믿거나, 믿지 않더라도 그렇다고 주장한다. 흑 아니면 백이라는 식이다.


반복하지만, 시대적 상황에 따라 더 적합한 해결책은 늘 바뀔 수 있다. 따라서 두 개의 가치관이 부딪칠 때 어떻게 옳은 선택을 내릴지는, 결국 결정권자의 재량에 달려 있다. 그 자신도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갖고 결정을 내리지만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나중에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


이렇듯 정치에는 정답이라는 게 없고, 대부분의 결정이 개인의 정치적인 성향은 가치관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정치적 사안들의 가장 밑바닥에는 가치판단 문제들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한편으로 정치 문제 중에는 사실판단으로 해결 가능한 경우도 많다. 마치 스마트폰의 속도를 비교하는 것처럼 답이 딱딱 떨어지는 문제들이 많다.


그럼에도 일년 내내 나라가 시끄러운 것은 사실은 특이한(?) 현상이다. 사실을 딱 꺼내어놓고 비교하고 밝히면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문제들이 있다. 그런데 그 사실에 접근하기까지가 상당히 어렵다.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사람이 거의 접근했을 때 즈음에는, 갑자기 증거가 사라진다...!


일부 강직한 기자를 비롯해 어떤 사람이라도 사실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는 (1)사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고, (2)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 왜곡의 달인들과 주의 돌리는 사람들의 기법에 대해 글을 쓰겠다. 하지만 그럴 일이 아마도 없을 이유는, 특정 정치 세력을 비판하는 것은 나에게 비판의 책임이 있지 않은 이상 불필요한, 그리고 부주의한 행동으로 남을 것 같다. 아무리 맞는 말 같아도, 그리고 설령 맞는 말이라 해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괜히 욕을 사서 먹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원래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정치가 결국 어느 것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며 가치판단의 문제인 사안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자. 달리 말해 어느 해에는 보수적인 정책이 더 큰 효과를, 어느 해에는 진보적인 정책이 더 큰 효과를 가져온다. 항상 어느 한 쪽이 옳은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있어서인지 정치에 대해서는 나는 완전히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 나는 대학 입학 직후에는 정치 성향이 보수와 진보로 나뉜다는 것, 전라도는 진보 성향이 강하고 경상도는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것, 그리고 역대 대통령들이 지지와 비판을 동시에 받는 것이 정치 성향에 따른 현상(?)이었다는 것 등을 전혀 몰랐다.


정치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것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지성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며, 나의 수수방관을 꾸짖은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정치에 어느 정도 무관심한 것이 중립적인 성향을 지키는 것에 일조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떤 정치인이 더럽다는 것을 알게 될수록, 그가 옳은 정책을 펼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커지지 않겠는가.


어쨌든 대학 시절에 나는 거의 항상 정치에 무관심했고, 지금은 관심은 갖지만 여전히 정치 공방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 양당 모두 어느 정도는 근거를 갖고 주장을 하기 때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근거가 정확한 사실(solid fact)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인지 따져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정치인들의 태도이다. 자신의 주장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견고한 논리와 명백한 사실이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나 욕설은 논리를 강화하기는커녕 자신을 무식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로 (1)가치관이 달라 얘기를 하다 보면 답답해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가치관은 좁혀지기 힘들고, 이 때는 결정권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해야 한다. 둘째로 (2)자신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기 위해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남을 비난하는 모습이 설득력 있게 보이지는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추한 모습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의 정치인들, 사실은 정치인들뿐 아니라 어느 한 쪽을 지지하는 혈기왕성한 대학생과 키보드워리어들이 철저한 논리보다는 비난을, 명백한 사실보다는 욕설을 무기로 상대방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 같다.


건전한 토론문화가 생성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자신이 하는 말의 출처나 진위여부도 모르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기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언론사의 인사고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자 1인의 업무 실적이 기사의 질보다는 양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예를 들어 "강용석(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을 비판하는 것이 "절대" 아님.)의 고소한 19"라는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방송에서 유명 화장품의 원가가 방송에 나간 후로, 피라냐 같은 기자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한 기사 제목은 이렇게 써놓았다. "'갈색병' 수입원가 고작 7천원?…고가화장품 알고보니". 위에서 잠깐 언급한 왜곡하기의 아주 좋은 예이다.


그러면 갈색병은 미국에서 얼마에 팔릴까? 원가와 크게 차이나지 않을까? 미국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인 아마존(www.amazon.com)에서 estee lauder로 검색을 하면 갈색병이 바로 나온다. Estee Lauder Advanced Night Repair Synchronized Recovery Complex의 가격은 100ml 당 약 149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67,000원 정도이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왜 일견 가격 차이가 심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블로그가 있어 링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http://aboutcar.co.kr/1839 - 김한용 기자의 About Car)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cul&arcid=0007146224&cp=nv - 2013.05.04 쿠키뉴스 이은지 기자)


어쨌든 요지는, 어떤 주장을 하든 명백한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또 논리를 튼튼하게 함으로써 굳이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비난할 필요 없이 자신의 주장이 건전하고 타당하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


사실에 입각한 토론은 뒤탈을 야기하는 일이 훨씬 적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어떤 아이 둘이 싸움이 났다. 한 명은 21 x 13 = 273이라고 하고, 다른 한 명은 34라고 싸우고 있다. 21 x 13 = 273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기 때문에 뒤탈 없이 싸움이 끝날 수 있다. 34라고 주장한 아이가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는 것은 차치하고, 이 문제는 깔끔하게 끝이 났다.


정치 토론도 마찬가지이다. 토론자가 사전에 관련된 fact를 더 많이 준비할수록, 더 간결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


대기업을 비난하는 의견에 맞서고 싶다면, 대기업이 늘린 일자리의 수와, 그들이 대한민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 그들이 사회복지에 지출하는 CSR 비용, 그들이 지역사회에 가져오는 여러가지 혜택 등을 정확히 보여주면 된다. 반대로 중소기업 상권이 대기업으로 인해 무너진다고 주장하고 싶으면 시장집중도와 대기업의 시장점유율, 중소기업의 존속 연수 등을 자료로 내밀면 된다.


자유시장경제에 입각하여 대기업을 옹호하고 싶다면 듣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사실을 나열하면 되고, 성공사례를 나열해도 좋다. 사실을 깊이 파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시장에 대해 정부의 간섭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시장실패의 사례와 정부의 역할 등을 쉽게 풀어 설명하면 된다.


누가 군대를 안 갔네, 누가 주식으로 이득을 많이 봤네, 누구 자식이 어느 학교를 다니네 할 것 없다.


자신이 펼치고 싶은 얘기에만 집중하고, 그것이 왜 옳은지, 왜 더 설득력 있고 더 좋은 정책인지 설명하는 데 모든 시간을 쏟는 것이 훨씬 유리하고 건설적이다. 양쪽이 네거티브 전략을 펼치면 승자는 아무도 없게 된다.


뉴욕에서 11월에 시장 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후보자들 중 다수가 추문에 휘말려 정계를 떠났던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선거 공세가 상대에 대한 비난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제3자의 입장에서 시(市)의 발전을 바란다면,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 반드시 시장이 뽑혀야 한다면 그들의 과거 추악한 모습을 더 자세히 알고 싶은가, 아니면 그들이 미래에 펼칠 정책에 대해 더 알고 싶은가?


어떤 사안이 사실판단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ex. 더하기 or 곱하기 문제), 아니면 바닥에서부터 두 개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대립하는 문제인지 파악함으로써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사실판단 문제임이 파악됐으면 사실을 알아보면 되고, 가치판단 문제일 경우에는 서로 비난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최대한 매력적으로 설명하고, 결정권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가치판단의 문제일 경우 당장 정답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운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후에 어떤 가치관이 더 적절했다는 것이 밝혀져도,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보다는, 다음 결정 때 "가치판단을 사실판단에 더 가깝게 만들기 위해" 어떤 fact들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야 한다. 지난 판단에 의해 지금 도출된 결과 또한 하나의 fact로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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