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그리고 앞으로 쓸 글들 중 많은 부분이 인간의 편협한 지식, 편견, 교만에서 오는 착각, 우습고 바보 같은 모습들을 다룬다.
나는 인간은 하늘 아래서 개미 같은 존재이고,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우아한 사람도 배탈이 나면 허겁지겁 화장실에 달려가 일을 볼 수밖에 없고, 가장 똑똑한 사람도 10년 뒤의 일을 모를 뿐 아니라 자기가 연구하는 분야의 지식도 완전히 알지 못하고 많은 오류를 남기고 죽는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을 공부하면(나는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으나) 인간 심리와 사고의 불완전성을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이론과 사례들이 있다. 후광효과(Halo Effect)는 가장 유명한 심리학 개념 중 하나이다. 이름은 생소해도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후광효과라는 것은 쉽게 말해 어떤 사람의 특징 하나가 그 사람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눈꼬리가 처진 사람은 착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외모라는 특징이 그 사람의 성격까지 설명한다는 믿음을 전제한 생각이다. 물론 착각이다. 관상을 믿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면 반박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타고난 외모가 그 사람의 성격을 설명할 수는 없다.
더 흔한 착각 중 하나는 학벌이 '후광'으로 작용할 때 생기는 잘못된 생각들이다. 예를 들어 가방끈이 길어서 그런지 점잖네, 하는 것이나 서울대 나온 사람이 그것도 몰라? 하는 착각이 있다.
지행합일을 중시한 과거 선비들은 덕을 중시하는 유교 사상을 공부하면서 읽기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중시했다. 가난하지만 올곧게 사는 것이 선비의 멋이었다.
하지만 유교적 가치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많이 사라졌다. 따라서 공부를 잘할수록 예의 바르고, 학벌이 높을수록 정직하고 그런 것이 아니다. 전혀 아니다.
왜냐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선생님을 존경할 줄 알아야 한다거나,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거나, 욕을 입에 달고 살아선 안 된다거나, 학교폭력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거나, 거짓말을 습관처럼 해서는 안 된다거나 하는 법이 없다. 그 모든 것을 하고도 성적이 높으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오히려 수업 시간에 앞에 선 교사가 뭘 가르치든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 학교 뒤뜰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컨닝을 해서 점수 몇 점 올리는 것이 대학 입시에는 더 유리할 수 있다.
높은 학벌은 높은 도덕 수준을 요구하지 않는다.
의사나 경찰 고위 간부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대에 들어가면 되고, 경찰 고위 간부가 되기 위해서는 경찰대에 들어가면 빠르게 승진할 수 있다.
성형외과 의사로 일하는 선배와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20년 정도 선배이니, 지금 40대 중반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 분은 성격도 호탕하고 똑똑한 분이었지만, 아내는 무조건 예쁜 사람을 만나야 후회가 없다며 나이가 들어 초라해진 자신의 아내를 두고 바람피우는 저질스런 얘기를 거침없이 해댔다. 그것이 20대 초중반의 후배들을 앞에 앉혀두고 할 말인가 싶었다.
같은 의사 중에는 한없이 선하고 헌신적인 사람들도 아주 많다. 그러나 그들이 좋은 학교를 나와서 그렇게 되었다거나, 똑똑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지성은 도덕성과 함께 성장하지 않는다. 지식을 위한 것과 별개로 윤리 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이나 경험이 필요하다.
경찰의 사례는 이미 매스컴에서 많이 다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어디서 출발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친구의 지인 중 경찰대 출신이 있는데 그 사람에 관한 얘기이다. 경찰대를 나와 임관식을 치르고 나면, 선배들과 함께 룸싸롱에 가서 한 턱 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고 한다. 경찰이라는 직업은 나라의 치안과 정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그 사명의 출발을 룸싸롱 접대로 하는 게 정상일까? 나중에 선배 아는 분이 한 번 봐달라며 여자와 술을 사주면 그것을 눈 딱 감고 거절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나라에 타락한 경찰보다 청렴결백 경찰이 더 많고, 위와 같은 나쁜 관례도 금세 사라질 것이라고 바랄 뿐이다.
여기까지 읽고 괜히 비판하거나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하면 괜히 반항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늘상 있었다. 나도 그랬다. 왜냐하면 내가 위의 집단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들과 룸싸롱을 다녀온 날은 늘 짜릿했고, 애인을 두고 미팅에 나가 다른 여자들과 어울린 적도 많았다.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불가피한 관습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방편이라고 설명해야만 했다. 그런 식으로 나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 것 같다. 그러나 늘상 있는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이 용납 가능한 일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양심이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 옳은지는 이미 자신이 알고 있다.
학벌이 주는 착각 중 또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이 점잖고 생각도 논리적이며 바를 것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학생이라는 신분이 나에게는 좋은 반례들을 제공하는데, 나의 페이스북 친구 중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 동문이다. 그런데 그 중 어떤 사람들의 글은 '그만 받기'를 누르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 사람들의 거친 표현 방식은 가끔씩 저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페이스북은 일기장처럼 생겼지만 본질은 광장이다. 친한 친구부터 어색한 친구까지, 아직 한참 어린 친구들부터 높디 높은 어른들까지 모두 내가 쓰는 글을 자의로든 타의로든 보게 된다.
이런 곳에서 자기 주관을 너무 폭력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마치 광장에서 자기 지인들을 다 불러모아놓고 "야이 새끼들아 내 친구 새끼가 어쩌구저쩌구... 세상이 어쩌구저쩌구"하며 소리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기분을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그런 현상의 이유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사람들이 볼 것을 생각할 때 자신의 표현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이것이 누군가의 기분을 망칠 가능성이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옳지 않은가.
너무 바빠서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지, 사람들은 페이스북에 욕을 너무 습관적으로 올리곤 한다. 말을 예쁘게 하면 본인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고, 손해볼 것도 없는데 욕을 줄이는 시도라도 해봤으면 좋겠다.
서울대를 나왔다는 것은 그 사람이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다는 것. 그리고 입시 기간 동안 큰 실수나 불운 없이 모든 과정을 잘 통과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대학에서 질 좋은 교육과 가장 최신의 지식들을 습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람이 위력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러나 위의 것들을 제외하고,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많은 부분을 학벌이 설명해줄 수 있을까? 그가 우리 사회를 더 좋게, 더 밝게, 더 건전하게 만들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가? 그가 후대에게 좋은 본이 될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가?
내가 다닌 서울대학교는 그런 교육 커리큘럼이 아직 없다. 다른 대학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다음 세대의 교육은 윤리 교육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세상은 상위 1%의 천재들이 움직인다는 얘기가 있다. 그들이 모두 환경 보호, 빈곤 퇴치, 의료 혁신 등에 관심을 갖게 되면 세상이 얼마나 살기 좋아질까. 공기는 맑고 먹을 것은 풍족한 그런 세상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평범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와 다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1%의 천재들에게 맡겨보면 어떨까? 그들이 8살이 되어 교육 과정을 밟기 시작했을 때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올 때까지 지속적으로 윤리 교육을 한다면, 다음 세대에는 정말 세상이 선한 혁신들로 가득찰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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