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 케이건(Shelly Kagan, ?~)은 우리나라에서 '죽음이란 무엇인가(영문 제목은 Death)'로 유명하다. 마이클 센델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와 더불어 아이비리그 3대 명강의라는 별명을 달고 국내에서 한창 인기를 끈 책이다.(나머지 하나는 하임 샤피라(Haim Shapira) 교수의 '행복이란 무엇인가'이다.)
이 책의 국내 selling phrase는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인데, 국내에만 존재하는 광고문구인 건지, 아무리 검색을 해보아도 이 책이 정말 17년 연속 예일대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뽑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출판사가 새빨간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 때는 예일대의 강의평가 수준이 다시 문제가 될 것 같다. 왜냐면 솔직히 형편 없는 강의이기 때문이다. 지식 전달보다는 의견 공유의 성격이 더 강한, 즉 교수가 자신의 생각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강의인 것 같다.
책을 여러 번 읽은 사람들은 이미 느꼈겠지만, 책의 내용이 그다지 논리적이거나 과학적이지 않다. 그래서 설득력도 떨어진다. 이러한 점은 동영상 강의가 책보다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는데, 왜냐하면 사람의 생각을 글로 썼을 때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게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셸리 케이건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상상과 인용을 많이 한다. 이 때 상상을 하는 것이 모두 '만약~'으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그의 논리가 감점당하고 들어간다.
그 만약은 셸리 케이건의 그럴싸한 상상일 뿐, 사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 방식은 이렇다.
(1) 신이나 영혼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A이다. (2) A가 성립되려면 B가 성립되어야 한다. (3) 그런데 만약! B가 아니라면? (4) B가 아니라면 A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신이나 영혼은 없다.
(5) 그렇기 때문에 신이나 영혼이 있다고 백퍼센트 장담할 수는 없다.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쁜 논리는 아니지만 좋은 논리도 아니다. 책의 전반부가 거의 '만약~'에 근거한 주장이라서 책이 일단 재미가 없다. 더 이상한 건, 뉘앙스이다. 마치 영혼이 있다는 주장이 빈틈 많은 것처럼 묘사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반박이 모두 상상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 할수록 영혼이 있다는 주장이 저자의 모든 반박을 막아내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보이게 만든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여러가지 가정을 해보았을 때, 신이 있다는 논리가 거짓일 수도 있으므로 그것을 100% 맞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신(영혼)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하나씩 그것에 반하는 가정(상상)을 함으로써 그것의 부재를 증명하려고 애쓴다. 만약 ~라면 영혼은 없을 수도 있는 거잖아? 라는 식으로 말이다.
한 예를 들어보면 저자는 책에서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이원론적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속에 피가 흐르는 생명체, 즉 하나의 기계로 묘사한다. 이 때 인간과 쏙 닮은 컴퓨터를 상상해내는데, 이 컴퓨터가 감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한다.
만약 컴퓨터가 감정이 있다면, 인간은 기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식이다. 이렇게 약간 억지스러운 가정을 하면서 영혼의 존재를 반박해보는 것이다. 즉 저자는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을 함으로써 자신이 반박하고자 하는 의견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참고로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컴퓨터는 아름다운 시를 쓰거나 작곡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P클라스=NP클라스"의 순간이 와야 가능하다는 뜻인데, 이것은 너무 복잡한 개념이므로 그냥 알고만 있으면 될 것 같다. 컴퓨터는 아직도 알고리듬 상으로는 I is the ninth letter를 이해하지 못한다. I am이 되어야 맞다고 생각한다. 휴리스틱(추측 방식)을 이용하는 컴퓨터는 어떨지 모르겠다.
아무튼, 셸리 케이건의 반박 형식은 얼핏 보면 초보 수학자가 골드바흐의 가설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닮았다. 골드바흐의 가설은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개의 소수의 합이다."이다. 이것의 반례를 찾기 위해 초보 수학자가 4부터 시작해 죽을 때까지 모든 짝수를 검토한다고 생각해보라. 처참하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교수는 자신의 개인적인 추측과 의견을 전달하기보다는 지식과 논리를 전달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자신의 가치관, 의견을 전달하고 싶다면 튼튼하고 반박하기 어려운(compelling)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강의로부터 무언가 배울 것이 생긴다.
만약 어떤 교수가 나는 사과가 배보다 맛있다고 생각해, 라고 한다면 그 강의를 듣고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무려 예일대 교수니까 그냥 그렇게 얘기해도 많은 학생들이 '맞아 가만 생각해보면 사과가 배보다 맛있는 것 같아.'라고 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진짜 사과가 배보다 맛있다는 의견을 주장하고자 한다면, 교수는 사과와 배의 당도와 수분 함유량 등의 수치(지식)를 제공하거나 blind test(눈 가리고 맛보기)를 통해 귀납적으로 학생들을 설득하는 등 논리를 펼쳐야 한다.
배가 사과보다 맛있다면 배가 사과보다 많이 팔리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더 맛있는 것을 찾으니까 말이야~ 하는 가정으로 뒤덮인 주장은 한 겹씩 벗길 때마다 눈물이 나는 양파와 같다.
앞으로는 책을 살 때 화려한 광고문구에 속지 말아야겠다. 출판사들도 판매량을 늘리려고 억지를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몇 년 뒤 아마존과 같이 질 좋은 추천 제도를 갖고 있는 대형 기업이 들어오게 되면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국내 출판업계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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