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은 내 인생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사성어 중 하나이다. 인생에서 겪는 성공과 실패의 칠할은 운에서 오는 것이요, 삼할이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은 겉으로는 운의 존재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행운은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혹은 "행운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것을 포착하는 사람만이 기회를 살릴 수 있다"라며 운의 영역에 노력을 물타기함으로써 운 고유의 영역을 희석시킨다.
세상에 권선징악, 인과응보의 원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사람, 운이 좋은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답답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노력으로 빌 게이츠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최고의 미인과 결혼할 수 있다면, 세상은 오히려 재미가 없을 것이다. 또한 노력 순으로 보상이 주어지면, 꼴찌는 비난 외에 받을 것이 없어진다. 보상이 노력 순이기 때문에 꼴찌라는 것은 노력을 제일 덜 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우울하지 않은가.
운은 고유의 영역을 가지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특정한 결과에 대해 운이 노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최근 재미있는 기사를 보았는데, KAIST 경영대학원의 장세진 교수가 기업의 수익률 요인을 분석하고 그 중 운이 차지하는 부분을 따져본 것이 그 내용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운칠기삼은 아니고, 55%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통제 가능한 영역의 항목으로는 산업효과, 기업효과, 기업집단효과, 연도효과 등이 있었다. 산업효과를 예로 들자면 어떤 산업에서 활동하는가가 수익성 편차의 12% 정도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기업을 하나의 의사결정 주체로 본다면 어떤 산업에서 기업 활동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포트폴리오 관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통제 가능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CEO나 오너 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본인이 운영하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그 활동 영역을 바꾸기란 쉽지가 않다. 이미 기업의 핵심역량이 그 시장에 최적화되어 있다면 더더욱 시장을 포기하기 어려워진다.
국내 화학회사 OCI를 예로 들어보겠다. OCI는 유기화학, 무기화학 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회사였다. 소비자와 직접 맞닿아 있는 석유화학제품(거의 모든 생활용품)이나 정유제품(휘발유 등)은 가치사슬의 맨 마지막 부분에 달려 있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크다. 즉 매출액과 마진이 기본적으로 크다. 반면 OCI와 같이 가치사슬의 맨 앞부분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규모 자체가 작을 수밖에 없다. 똑같이 잘 팔고 똑같이 많이 팔아도 원자재의 경우에는 이렇다 할 부가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벤젠, 자일렌과 같은 기초 화학 물질이나 카본 블랙 등과 같이 주로 다른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원자재의 경우에는 가격 자체도 낮고 부가가치도 거의 없다.
10만 원이 넘는 고가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화학 물질들이 사실은 100원 밖에 안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화장품을 만들어주는 OEM 제조업체는 매출액이 100원이지만, 그것을 갖고 포장을 하고, 유통을 하고, 마케팅을 함으로써 화장품 회사가 벌어들이는 매출액은 10만 원이다. 가치사슬의 뒤쪽, 즉 소비자에게 가까이 갈수록 제조원가와 판매가 사이에 일반적으로 높은 마진과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수익성이 낮은 산업군에서 고전하다 OCI가 최근 영역 확장을 꾀했는데, 바로 태양광 발전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태양광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평평한 패널(모듈이라고 한다)이 필요하다. 이 모듈을 만들기 위해서는 셀이 필요하고, 셀은 웨이퍼로 만들고, 웨이퍼는 잉곳으로, 잉곳은 폴리실리콘으로 만든다.
가치사슬을 이해했다면 알겠지만, 여기서 가장 앞쪽의 제품이 폴리실리콘이다. 즉 가격도 제일 낮고, 마진도 낮다. 원래 OCI는 폴리실리콘을 파는 회사이다. 그런데 OCI가 가치사슬의 반대편에 있는 태양광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유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같은 가치사슬 상에서 소비자에게 가까이 갈수록 단위당 매출액이 커지고, 마진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리실리콘에 전문적인 역량을 갖고 있다고 해서 태양광 발전소를 짓고 그것을 정부나 공공기관에 공급하는 역량도 갖고 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이 선택이 잘한 것이었는지는 지켜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OCI에게뿐 아니라 산업군을 바꾸는 시도는 모든 회사에게 부담되고 위험한 일이다. 기업의 핵심역량도 고려해야 하고, 상이한 시장 환경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기업의 일부로서 활동하는 경영인 개인이나 회사 직원 개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혼자 힘으로 기업의 활동 영역을 바꾸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기업이 이미 역량을 확보한 산업군은 정해진 요소이고, 대부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산업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가며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본다면 기업이 속한 산업 또한 하나의 단기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요소이다. 산업효과에도 운이 작용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국적, 즉 한국 기업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도 운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인 기업인은 내수시장의 크기를 보고 자신이 어디서 기업을 일으킬 것인지 결정하지 않는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고, 내수시장이 작아 수출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생긴 일이다.
위의 조사의 대상이 된 샘플 자체가 이미 운에 의해 상당 부분 특정한 영향을 받은, 걸러진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그 안에서 다시 운에 의해 수익성이 나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겠다.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고, 근방에 있던 일본 기업이 모두 피해입은 것도 운이다. 기업이 자신의 내일을 어떻게 완벽히 예측할 수 있겠는가? 어느 정도 위험성이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상식적으로 원전이 폭발할 것을 알았다면 모든 기업이 그 지역에서 철수하지 않았겠는가? 극단적인 예이기는 해도 말이다.
기업의 생존에 있어서도 그 영향력이 크지만, 개개인의 인생 단위로 보면 그 영향력은 훨씬 어마어마하다. 기업은 최악의 경우 파산하거나 매각될 뿐이지만, 사람은 운 때문에 건강, 돈, 친구 등을 잃기도 하고 운이 나빠 생명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듯 운은 위의 연구 결과에서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향력이 크고 모든 현상의 전제로 존재한다.
심지어 우리가 운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자주 사용하는 개인의 노력도 운의 도움을 전제한다. 노력하고 싶어도 노력할 수조차 없는 운 나쁜 현실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 모두 잘 알 것이다. 난독증을 겪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일반인 수준의 학업 성취도를 달성하기 어렵다. 물론 예외는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이렇게 보면 운은 7할로도 부족할만큼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운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것은 왜일까?
운에 대해 논할 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표본으로 삼아 비교하곤 하는데, 그런 경우에 표본 자체가 이미 내부적으로 상당히 동질적인(homogeneous) 집단일 수 있고, 변인(운)의 영향을 다함께 받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한 방향으로 치우친 표본집단만을 조사하게 되면 모집단(세계 전체 인구)에 미치는 변인의 영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을 통계학에서 표본오류(sampling error)라고 한다.
쉬운 예로, 구글에서 '직원의 혁신성이 업무 성과와 상관관계가 있는가?'라는 주제로 통계 분석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혁신이 1단위 변할 때 업무 성과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구글은 앞으로 직원들을 뽑을 때 혁신성에 관한 항목은 제거해도 되는가? 별 차이가 없으니 말이다.
이 때 구글은 자사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통계 분석을 한 것이 실수였다. 표본을 추출하는 과정, 즉 sampling의 과정에서 이미 혁신성이라는 변인에 대해 상당히 위쪽으로 치우친 사람들로 표본이 구성됐기 때문이다. 구글에 입사한 직원들은 평균적인 사람보다 혁신성이 이미 높은 수준(이것은 나의 가정이다)이기 때문에, 그들은 혁신이 1단위 변할 때 오르는 업무 성과, 즉 혁신성에 따른 한계생산성이 낮다. 달리 말하면 이미 혁신성을 뽑아먹을 만큼 다 뽑아먹어서 혁신성을 가지고 더이상 올릴 업무 성과가 없다.
이렇게 되면 분명 혁신성이라는 요소가 업무 성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구글의 입장에서 혁신성의 중요성이 평가절하될 수 있다.
물론, 당연히, 실제 구글은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든 KAIST 교수도 그런 문제를 이미 파악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해당 기사의 제목은 원래는 '한국의 기업 중, 운이 미치는 영향'이 되었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삶에 운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자. 출생과 관련한 요소들이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은 본인이 자신의 출생과 관련한 조건들을 노력으로 바꾸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출생이야말로 100% 운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장소(where)이다. 어느 국가에서 태어나고, 어느 국가에서 일하는지는 개인의 일생의 성패와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큰 몇 안 되는 요소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운으로 결정된다.
출생지는 100% 운이고, 일하는 나라는 웬만해선 출생 국가를 벗어나기 어렵다. 아프리카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주린 배를 움켜쥐며 살다가 시가전에 휘말려 총에 맞아 죽은 아이들은 무엇을 잘못했는가. 권선징악, 인과응보의 원리에 의해 고통을 당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한편 대한민국의 언론과 사기업의 총수로 있으면서 성상납 리스트에 그 이름이 위풍당당히 올라가는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아이들보다 고귀하고 바람직한 삶을 살기에 수백명의 직원들을 책임지는 위치에 올라서고, 한 끼에 몇만 원씩 하는 식사로 배를 채우는 것인가?
다음으로 때(when)이다. 어디서 태어나는가 하는 것만이 아니라, 언제 태어나는가 하는 것도 운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또한 개인의 생애를 아주 많이 결정짓는다. 민주주의 시대에 태어났는지, 봉건시대에 태어났는지. 만약 전근대사회의 노비로 태어났다면 지금보다 훨씬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는, 굶어죽어가는 동생을 위해 뙤양볕을 네 시간씩 걸어가 물을 길어오는 아프리카의 동갑내기 친구에 비해 나을 게 하나 없는 사람이다. 그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생각하며 매일 눈물을 흘려주지도 못한다. 나뿐 아니라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삶은 운에 의해 많은 부분 결정되었고, 한가로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 중 하나이다. 용기를 내어 사회로 나가면 성공의 기회가 100%는 아니더라도 희망을 걸 만큼 주어지고, 결정적으로 최소한 굶어서 죽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인생에서 운이 결정하는 부분을 과감히 내어주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마친 후에 결과에 목맬 필요가 없어진다. 운이 충분히 좋다면 내가 노력한 것보다 몇 배의 결실을 맺을 것이고, 운이 적당히 있다면 내가 노력한 만큼 받을 것이고, 운이 없다면 노력이 충분히 결과에 반영되지 못할 것이다.
남보다 못했을 때는 운이 없었다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남보다 잘했을 때는 운이 좋았다며 고개를 숙이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NEXT POST
셸리 케이건(Shelly Kagan, ?~)은 우리나라에서 '죽음이란 무엇인가(영문 제목은 Death)'로 유명하다. 마이클 센델의 '죽음이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