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이 필요한 아름다움은 진정한 아름다움일까?
배경을 알아야만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미술 작품이나 음악들. 그것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일까?
갓난아기라도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작품의 탄생 배경과 작가의 일대기를 알아야 비로소 그 매력을 알게 되는 그림도 있다.
듣고 있으면 저절로 덩실거리며 춤추게 하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탄생 배경과 작곡가의 이름값을 알고 난 후에야 대단하게 느껴지는 음악도 있다.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연주자에 대한 지식, 곡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충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의 실험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실험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가치 평가가 상당 부분 음악 외적인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2007년 1월, 워싱턴의 한 지하철 역에서 조슈아 벨은 청바지와 셔츠 차림에, 야구모자를 쓴 채로 45분 동안 바흐의 곡을 연주했다. 러시아워였기 때문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의 연주를 들었을 것으로 계산된다. 이 연주에서 조슈아 벨에게 사람들이 남기고 간 돈은 총 32달러였다. 재미있는 것은, 실험이 있기 이틀 전 보스턴에서 열린 그의 연주회는 전석 매진이었고, 표는 평균 100달러의 가격에 팔렸다.
돈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따지지 말자고 하더라도, 지하철 연주회에서 사람들은 그 연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대부분 그냥 지나쳤다.
물론, 바쁜 시간이었기 때문에 연주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도 그냥 지나간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흐의 곡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갈팡질팡한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누군가 운동은 골프와 테니스를 하고, 음악은 클래식을 들어야 상류사회로 편입할 때 어려움이 덜하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클래식 음악은 뭔가 대단한 것이 있구나, 하는 마음에 여러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어보았지만, 솔직히 쉽게 즐길 수 없었다.
직관적으로 선율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곡들도 있었는가 하면, 어떤 곡들은 그냥 들어서는 별로라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곡의 주제와 배경, 연주자 혹은 지휘자의 명성 등을 알고 나서야 그 곡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된 경우가 많았다.
클래식은 어쩌다가 교양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고급 음악이 된 걸까? 클래식이 대중음악보다 더 아름답고 가치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에?
하이든의 '놀람교향곡'은 연주회 도중 잠이 드는 귀족들이 괘씸해서 만든 곡이라고 한다. 곡이 조용히 진행되다가 중간에 갑자기 포르티시모(ff, 매우 강하게)가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당시 클래식 음악의 청중은 대부분 귀족이었고, 높은 교육과 교양 수준을 대표하는 부류였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공연 도중 습관적으로 잠들어버린다는 것은, 원래 클래식 음악이 지루한 음악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일정 수준 이상의 교양이나 지식이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거라면, 현대인들은 대부분 클래식 음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현대 인류 전체의 평균적인 지식과 교양이 18세기 당시 귀족들 수준을 따라잡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고급 문화와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과거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 무료 오케스트라 연주회도 주위에 많고, 디지털 음원으로도 원하는 시간에 즐길 수 있다. 음악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더 쉽게, 더 정확하게,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네이버나 구글에 들어가서 작곡가나 곡의 이름을 검색하면 온종일 공부하고도 남을 만큼의 지식이 잘 정리되어있다.
그럼에도, 클래식 음악은 여전히 지루하다. 대중음악에 비해 인기가 없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어쩌면 몇몇 걸작들을 제외하고 나면, 클래식 음악은 원래 재미없고 따분한 게 아닐까?
클래식 음악이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은 그 고상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편견은 어디서 온 것일까?
우선 클래식 음악이 대중음악과 구분되기 시작한 시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과거에는,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계층이 귀족으로 한정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른 장르의 음악이 등장했을 때에는, 기존의 음악이 이미 귀족 음악으로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대중음악은 말 그대로 대중이 즐겨 듣는 음악인데, 유행을 타기 위해서는 음악이 녹음되어 먼 곳까지 전달이 가능해야 한다. 따라서 대중음악의 형성은 음향 녹음 기술의 발달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음향 녹음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중후반부터이다. 1877년 Charles Cros라는 프랑스인이 '팔레오폰'이라는 기계를 소개했는데, 그 후 '그라모폰'이라는 기계가 나오면서 음반의 복제가 가능해졌고, 이것은 대량생산을 가능케 함으로써 대중음악의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시기를 같이 하여 1885년 즈음부터 Tin Pan Alley로 불리는 대중음악 집단이 등장했다. 이 시기에는 작곡가들이 계약을 맺고 곡을 쓰면서, 본인이 좋아하거나 화성학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곡을 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대중의 귀에 맞는 곡을 쓰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렇듯 녹음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대중음악이 나타날 수가 없었고, 따라서 이전까지는 낭만파 중심의 클래식이 음악의 역사를 이끌고 있었다.
그렇다면 녹음 기술의 발달이 클래식 음악을 왜 대중음악으로 만들어주지 못한 걸까? 그것은 초창기 녹음 기술을 이용한 클래식 음반이 너무도 조악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가요 수준으로 깔끔하게 녹음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대중음악이 등장한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클래식 음악은 기존의 고객층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순식간에 일반인들 사이에 퍼진 대중음악에 비해, 부유층에 머물러 있던 클래식이 자연스럽게 더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음악으로 여겨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서, 거꾸로 클래식 음악이 signalling effect를 갖기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많이 안다는 것이, 자신이 우아한 취향을 갖고 있다는 신호(signal)가 되는 것이다. 요즈음은 다소 덜하지만, 아직도 클래식 음악을 이용해 고급스런 이미지를 풍기는 것이 가능하다.
맛을 구분하지 못하는데도 비싼 와인을 즐겨먹는 것, 몸에 더 좋거나 더 맛있는 게 아닌데도 한껏 뽐내고 싶을 때 한 끼에 5~10만 원씩 쓰는 것 등도 비슷한 종류의 signalling이라고 볼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이 대중음악보다 무조건 고결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음악 자체에서 오는 직관적인 즐거움을 찾는 것은 대중음악에 비해 클래식 음악이 훨씬 더 어렵다. 같은 값이면 오케스트라 연주회보다는 가사가 가미된 오페라나 성악 공연을, 또 그보다는 뮤지컬이나 유명 가수의 콘서트를 가고 싶은 게 일반적인 욕구이다.
대중음악이 근본적으로 클래식 음악에 비해 저급하거나 수준이 낮다고 평가될 이유는 없다. 다만, 요즈음의 대중음악은 스스로 그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사는 점점 외설적으로 변해가고, 성적 소구를 노리는 춤과 마케팅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런 모습이 클래식 음악을 고급문화로, 대중음악을 저급한 문화로 구분 짓게 하는 것 같다.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끌기 위해 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고민하기보다는, 10분 만에 만들어진 짧은 후렴구를 무한 반복하면서 그 위에 자극적인 가사를 입혀놓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신의 위대함을 찬미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은은하고 완곡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클래식 음악이 대중음악에 비해 고급스럽다고 평가될 수밖에 없다.
인기를 추구하는 것은 클래식 음악이나 대중음악이나 마찬가지이다. 음악은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청중으로부터의 반응이 그 음악의 매력을 평가해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인기를 위해 사용되는 방식은, 저질스러운 방법일 수도 있고 좀더 고급스러운 방법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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