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대수학과 색칠 문제 (1/2)

by Dongeun Paeng
Mar 07, 2024 · 만 34세

다음 도형을 빨강, 초록, 파랑 세 가지 색으로 색칠하는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자.



네 칸을 세 가지 색깔로 칠하는 경우의 수는 34=813^4 = 81 이다.


이제 우리가 이 삼각형을 회전하거나 뒤집을 수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회전하거나 뒤집었을 때 같은 모양이면 중복이라고 치자.


예를 들어 가운데는 빨간색이고 나머지는 파란색이라고 해보자. 이 삼각형을 왼쪽으로 120도 돌리든, 좌우로 뒤집든 똑같은 모양일 것이다. 이런 경우는 같은 모양으로 취급하자는 것이다. (아래 그림)




이런 중복을 모두 제거했을 때, 위 도형의 각 칸을 색칠하는 경우의 수는 당연히 81보다 적을 것이다. 정확히 몇 개일까?


일일이 세어봐도 언젠가 답을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색깔이 다섯 가지가 되고, 삼각형이 좀 더 복잡해지면 일일이 세는 방법으로는 답을 못 찾는다. 따라서 이렇게 특수한 사례에 맞는 방법이 아닌, 좀 더 일반화된 체계가 필요하다.


추상대수학을 이용하면 답을 구할 수 있는데, 차근차근 알아보자.


우선 이 문제는 두 개의 집합을 포함한다. 하나는 삼각형을 회전하거나 뒤집는 방법들로 구성된 집합이다. 이 집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S(tri)={e,a,b,r,s,t}\text{S(tri)} = \{e, a, b, r, s, t\} .


각 원소가 의미하는 것은 이렇다. ee 는 삼각형을 그대로 두는 것이고, aa 는 왼쪽으로 한 칸 돌린 것, bb 는 오른쪽으로 한 칸 돌린 것이다. rr 은 좌우 반전, ss 는 왼쪽 아래 꼭지점을 기준으로 해서 나머지 두 꼭지점을 교환한 것, tt 는 오른쪽 아래 꼭지점을 기준으로 해서 나머지 두 꼭지점을 교환한 것이다. 즉 aabb 는 회전이고, r,  s,  tr,\;s,\;t 는 뒤집기다.


이런 회전, 뒤집기를 '작용'이라고 한다. S(tri)\text{S(tri)} 는 평범한 집합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집합보다는 몇 가지 특징적인 성질을 더 띠므로 수학에선 군(Group)이라고 부른다. 그 특징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소들을 아무리 반복해서 실행해도, 결국 집합 안에 있는 원소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aa 다음 rr 다음 ss 다음 tt 를 하고 거기에 아무리 많은 원소를 다시 실행해도, S\text{S} 의 원소 중 한 가지로 표현된다. 삼각형을 회전하거나 뒤집는 새로운 방법은 없다.


둘째, 작용 순서를 따질 때 괄호가 필요 없다. 즉 a(br)=(ab)r=abra \circ (b \circ r) = (a \circ b) \circ r = a \circ b \circ r 이다.


셋째, ee 는 제자리다.


넷째, 어떤 원소를 정하든, 그 원소에 다른 원소를 곱하면 제자리로 돌릴 수 있다. 예를 들어 aa 로 왼쪽 회전을 했으면, bb 를 곱해 제자리로 돌릴 수 있다.


아무튼, 이제 이 문제가 포함하는 다른 집합을 생각해보자. 바로 삼각형 모양들의 합이다. 이 집합을 X\text{X} 라고 하자. 결국 우리는 이 집합에 원소가 몇 개인지 궁금한 것이다. 위에서 확인했듯 X\text{X} 에는 81개보다 더 적은 원소가 있다. 몇 개인지 아직은 모르지만.


두 집합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S\text{S} 안에 있는 원소들은 X\text{X} 안에 있는 원소들을 변화시킨다. 예를 들어 x1Xx_1 \in \text{X} 가 아래 모양이라고 하자.



S\text{S} 의 원소 aa 는 이 도형을 왼쪽으로 회전시켜 다음 x2Xx_2 \in \text{X} 로 만들 것이다.



이렇게 S\text{S} 의 원소들이 X\text{X} 의 원소들에 '작용'하는 것을 '군의 작용(Group action)'이라고 한다.


자, 이제 군과 군의 작용에 대해서 알게 됐다. 재료는 여기서 끝이다. 이제부터 논리를 차근차근 쌓아가보자.


내 생각에는, 천천히 읽으면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다. 순수수학은 응용수학과 달리 천천히 읽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선 우리가 중복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자. 아니, 생각해보지 말고 아래 설명만 따라가보자.


X\text{X} 의 원소 xx 는 어떤 삼각형일 것이다. 그게 어떻게 색칠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임의의 삼각형이라고 치자. 이 삼각형에 S\text{S} 의 원소를 하나씩 차례대로 작용시켜보자. 즉 xx 를 회전하고, 뒤집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xx 의 복제품들을 모아놓은 것을 "궤도"라고 하고, 군론에서는 Orb x\text{Orb }x 라고 한다. 똑같은 모양, 즉 중복인 삼각형들을 담아놓는 주머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그 주머니에 xx 라고 스티커를 붙여놓은 셈이다.


자, 우리는 방금 하나의 즉 xx 에 대해서 그것과 중복인 녀석들을 모두 찾아서 xx 의 궤도 안에 가두었다. 이 궤도에 있는 녀석들을 제외하고, X\text{X} 의 다른 원소들에 대해서도 각각 궤도를 찾으면 여러 개의 궤도가 나올 것이다. 즉 여러 주머니가 나온다.


결국, 회전하거나 뒤집었을 때 중복인 녀석들이 한 개의 주머니에 담겨 있으므로, 중복되지 않는 도형의 개수는 어떻게 구하면 될까? 바로 주머니의 개수가 된다.


우리는 벌써 답을 어떻게 찾으면 될지 알아냈다. 우리는 문제를 아래와 같이 다시 쓸 수 있다.


집합 X\text{X} 를 분할하는 궤도의 개수를 구하라.


그럼 궤도의 개수는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 우리는 수학적 추상화를 경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 제안은 '우리가 가진 문제를 추상화해서 생각해보자.'라는 말과 다름 없다.


'우리는 원래의 문제를 잊고, 궤도의 개수를 구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궤도의 개수를 tt 같은 미지수로 표현한 후, tt 에 관한 방정식을 푼다. 추상대수학에서는 궤도의 개수와 관련된 방정식이 다양하게 연구되어 왔다. 우리는 그 방정식들 중 우리 문제에 적합한 것을 사용한다.'


자, 이제 유용한 방정식들을 인용해보자.


우선 앞으로 제일 유용할 만한 방정식은 "Orbit-stabiliser theorem (궤도-안정자군 정리)"이다. 먼저 안정자군이 뭔지 간단히 설명하자면, 안정자군은 X\text{X} 의 원소 xx 에 작용할 수 있는 S\text{S} 의 원소들 중, xx 를 가만히 냅두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작용들만 모아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마지막 삼각형을 보자. 왼쪽 아래와 가운데가 빨갛다. 만약 우리가 왼쪽 아래 꼭지점을 그대로 두고, 다른 두 꼭지점을 맞교환하는 뒤집기를 한다고 해보자. 도형이 변하는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이 뒤집기를 우리는 ss 라고 했었다. 그리고 삼각형을 그대로 두는 걸 ee 라고 했었다. 그러면 이 삼각형의 안정자군은 {e,s}\{e,s\} 인 것이다. 어떤 원소 xx 의 안정자군을 Stab x\text{Stab }x 라고 표현한다.


(2편에서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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