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를 하면서 사기를 네 번 당했다.
첫 번째는 중국 제조사. 품질과 납기가 약속과 달랐다. 금형비 명목으로 받아간 2천만 원도 끝까지 갚지 않았다. 정확한 손해액은 추산이 어렵다. 사기라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두 번째는 중국 제조사와 한국 기업을 연결하는 브로커. 킥보드 중요 부품 중 하나인 리튬이온배터리 740개를 불량으로 만들었다. 중국 제조사로부터 리콜 및 보상을 받겠노라고 약속했으나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손해액은 대략 8천만 원이다.
세 번째는 관세법인을 사칭한 사기꾼. 통관 업무 비용 6천만 원을 받아간 후 도망다니면서 연락을 피했다. 추심 법인을 동원해서 2,200만 원 정도 돌려 받았다.
네 번째는 돈을 빌려간 가맹점 사장. 킥보드 자산을 담보로 잡았기에 큰 걱정 없이 대출해주었는데, 잠적한 지 몇 달 되었다. 현재 진행형이며, 담보물을 회수하든 추심을 하든 할 듯하다.
이 중 세 번째 사기꾼이 엊그제인가, 어제인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습적인 사기의 끝은 해외 도피, 감옥, 자살 뿐인 것 같다. 사기꾼은 개인 회생이나 파산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사기는 끝이 정해져 있다. 비참하고 끔찍한 결말이 정해져 있고, 이 비극으로부터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다.
사기를 칠 당시에는 돈이 생기지만, 그 돈에 대한 책임이 몇 개월 이내에 반드시 도래한다. 사기꾼은 돈을 갚기 위해 또다른 사기를 쳐야 하는데, 이게 신용카드 돌려 막기와 다를 바 없다.
이 사기꾼도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한 사기였거나, 실수였을 것이다. 그 때 멈추었어야 한다. 문제는 사기를 덮기 위해 다른 사기를 쳤다는 것이다. 즉 어느 때부터인가 돈을 벌고 부자가 되기 위해 사기를 치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생존형 사기를 쳤을 가능성이 크다.
더이상 사기를 칠 건덕지조차 남지 않고, 채권자들로부터 도망칠 곳도 없게 되었을 때, 남은 옵션이 자살 뿐이었던 게 아닐까. 사기에는 반드시 끝이 있고, 그 끝은 해외 도피, 감옥, 자살로 정해져 있을 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불현듯 생생하다.
죽은 사람에 대해 불쌍한 감정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다만 남은 가족이 신경쓰인다. 이혼한 지 꽤 된 것 같은데, 슬하에 예쁜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는 듯하다. 어린 아이들이 놀라고 슬퍼할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너무 슬프고 마음이 저린다.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할 전처도 불쌍하다. 정말이지 마음 아픈 사건이다. 이런 일이 더이상 내 주변에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사기꾼의 마지막 100원까지 받아내고자 추심 법인을 동원해 법정 최고 이자를 받아내려고 했다. 6천만 원이 없다고 해서 디어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혼쭐을 내지 않으면 이 사람이 '법인 돈 뜯는 거 꿀인데?'라는 생각으로 또 다른 곳에서 사기를 벌일 것 같아, 다시는 사기를 치지 않게끔 호되게 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사기를 그만두는 방법으로 자살을 택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내가 몰랐던 또 한 가지, 남은 가족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는 것이다. 나는 피해자인데도 말이다.
이제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나는 다음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추심을 하면 상대방은 쫓기다 끝내 자살할 것이다. 그것 말곤 답이 없다. 그걸 알면서도 추심을 할 것인가?"
과연 추심을 안 할 수 있을까? 추심을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으면 배임이고, 배임도 일종의 사기다. 즉 추심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내가 주주들에게 사기를 치는 셈이 된다. (물론 작은 금액이라면 주주들에게 동의를 얻고 추심을 포기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겠지만.)
이렇게 보면 애초에 사기를 안 당하는 게 제일 좋다. 그런데 아무리 똑똑해도 사기꾼은 못 당한다. 모든 사기는 당한 후에야 선명하게 보인다. 선명하게 보이면 그제야 "이걸 속다니. 내가 정말 바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사기를 당할 때는 아무리 똑똑해도 그게 사기인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대출을 하는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위 질문보다 더 나은 질문을 더 이른 시점에 할 수 있다. 대출 시점에 다음 질문을 해야 한다. "이 사람이 빚을 못 갚으면, 추심을 할 것인가? 추심을 해야 한다면, 이 사람은 쫓기다 끝내 자살할 것이다. 정말 대출할 것인가?"
옳은 질문을 할 기회는 대출 시점에 단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이 시점에 제대로 질문하고, 제대로 답해야 한다.
대출이 주요 사업인 회사들은 '높은 회수율'을 KPI로 삼는다. 그런데 추심을 잘한다고 회수율이 높아지지 않는다. 절대로. 그 이유는 자명하다. 돈이 바닥난 차입자는 아무리 쥐어짜도 나오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짜면 짤수록 피와 눈물만 나올 뿐이다.
회수율이 높은 회사는 추심을 잘하는 게 아니라, 대출을 잘하는 것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주택 담보 대출 사업을 갖고 있는데,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일어났던 당시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출할 때 차입자를 꼼꼼히 살폈다.
단추를 처음부터 잘 끼우는 것이 뒤로 갈수록 많은 비용을 절감하는 비결이 된다. 추심 비용, 감정 비용, 시간 비용 등 아낄 수 있는 비용이 무척 크다.
슬픈 사연을 곱씹으며 많은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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