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의 가르침과 게임 이론

by Dongeun Paeng
Mar 11, 2024 · 만 34세

게임 이론의 유명 문제 중 '평균의 2/3 말하기' 게임이 있다. 여럿이 0에서 100 사이 숫자를 고르는데, 이들의 평균의 2/3에 가장 가까운 답을 내면 승자가 된다.


사람들의 답이 대략 50 쯤일 것 같아 33를 답으로 제출하려는 순간, 남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게 뻔하다. 그런데 다들 33 쯤으로 답할 게 예상되면, 다시 그 값의 2/3인 22로 답을 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테니... 다시 2/3를 곱한다. 이를 반복하다 보면 0에 수렴한다.


이 게임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해야만 답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관절 게임 이론이 세이노의 가르침과 무슨 상관일까?


최근 콜드메일을 보내 찾아뵌 어느 업체 대표님이 대화 말미에 '세이노의 가르침'을 강력하게 추천해주시고 선물까지 해주셨다. 통상 자기 계발 서적, 부자 되는 비법서 같은 것을 경멸하기에 읽지 않으려다가, 문득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았다.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우선 저자의 독특한 생각이 솔직함과 만나 책을 재밌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 그것도 유명하고 부자인 사람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내 의견을 종합하면 우려를 일으키는 책이다. 이 책의 직설적이고 독선적인 문장이 내용 전달 측면에서 효과적이긴 하나, 그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저자의 틀린 생각을 맹목적으로 수용할까 걱정된다. 대중은 무척 수용적인 데다가, 특히 부자가 하는 말이라면 넙죽 받아들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이 세이노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것을 고려하면, '내 행동 또한 그에 맞춰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큰 문제고 불편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는 길게 늘어선 차선 중간으로 끼어드는 것을 파렴치하다고 비판하고, 심지어 그 차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운전자도 어리석은 것처럼 묘사한다. 나는 중간에 끼어들려는 차가 눈꼴사납더라도 늘 양보해주는데, 그 이유는 잠시 후 설명한다.


원래 문제로 돌아와서, 이제 나는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은 맹목적 다수에게는 양보하는 내 모습이 바보 같아 보이겠구나'라고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누가 뭐라건 나는 내 신념대로 행동하면 되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 내 주변 사람들이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자기도 모르게 세뇌(?)되었을 수 있다. 그런데 내게는 그들의 시선과 생각이 중요하다. (물론, 세이노의 가르침과 내 행동이 정면으로 배치되면 주변 사람들은 우선 내 얘기를 들어보려고 할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아마 그런 사람들을 태우고 운전할 때 앞으로는 "세이노의 가르침을 보면 이런 경우에 비켜주는 게 안 좋은 것처럼 쓰여 있던데, 나는 생각이 달라. (구구절절...)" 하며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지 모른다. 세이노의 말이 맞아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세이노의 말을 정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비판적 읽기'가 체화된 사람이라면 책의 대부분을 저자 개인의 세계관으로 여길 것이다. 저자의 주장 중 논리적 근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ecisive, judgmental, and strong 언어를 사용하면,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저자의 글이 그렇다.


정치 싸움에도 이런 유형의 전략이 종종 등장한다. 근거 없이, 일단 누군가를 비방한다. 터무니없는 거짓이라고 해서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가 없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짓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잘 판단할 거야, 그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내지 "진실은 드러난다" 같은 사고는 단기전에 적합하지 않다. 진실은 천천히 드러나고, 대중은 천천히 깨닫는다.


정리해보면 중요한 건 사실 여부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이다. 따라서 비방을 당한 정치인은 더러운 비방전에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듯 어떤 '게임'에서는 내 행동이 사실과 신념에 기반할 수 없다. 오히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


끼어들기 문제로 돌아와보자.


끼어드는 차량이 얄밉더라도 그 차에 경적을 울리고 욕할 필요는 없다. 나는 오히려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도로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싸움으로 번질 수 있어 위험하다. 싸움으로 번지면 신체적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은 물론, 도로 자체가 위험해진다. 둘째로 끼어들려는 운전자가 초보라면 위축될 수 있고, 그가 긴장해 우왕좌왕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로 끼어드는 차량이 위급한 상황일 수도 있다. 끝으로 끼어드는 차를 막거나, 경적을 울린다고 해서 내 도착 시간이 단 1분도 줄어들지 않는다.


끼어드는 차량이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얌체든 아니든 비켜주는 게 더 나은 바람직한 이유도 있다. 개인 정서 차원에서 더 낫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다. 얌체 운전은 시민 개인의 분노, 다툼, 응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교통 정책, 법규, 도로 디자인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만약 개인 차원의 복수나 욕설이 허용되면 우리 사회는 후퇴하고 만다.


Road Rage는 살인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더 큰 교통 정체로 이어질 수도 있고, 교통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세이노의 취지와 나의 취지를 둘 다 만족하는 대안을 제시해보자면, 얌체 운전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제보하는 체계가 만들어지는 건 어떨까? 얌체 운전자에게 벌금을 걷어 제보자에게 상금을 주는 것이다. Passive하게 공격성을 분출할 수 있게 하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저자는 공공장소에서 치사한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면 욕을 퍼붓는다고 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무서우면 참고 살아라"라고 한다. 나는 이 생각에 반대다. 길거리에서 용감한 건 득보다 실이 많다.


어릴 때 엄마가 뉴스 내용을 전해준 적이 있다. 줄이 긴 공중전화에서 앞사람에게 통화 좀 빨리 끝내라고 다그친 사람이 그 자리에서 칼에 찔려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때 엄마가 이렇게 얘기했다. "너는 깐족대는(따지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이런 경우에 절대 나서면 안 된다"라고 하시면서, 함부로 싸움 거는 일을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이가 먹을수록 엄마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교양 없는 사람들은 미래도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과 엮이면 위험하다.


어릴 때 어디선가 들은 얘기 중 영국 이야기도 기억이 난다. 영국에서는 길에서 다툼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갈등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경찰을 부르고 상황이 종료된다고 한다. 어느 정도 과장이 섞인 얘기겠지만, 침착하고 조용하게 일을 처리하는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저자처럼 거칠게 세상을 볼까 봐 걱정이다. 내 기우라면 좋겠다.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이 책이 너무 유명해지고, 틀린 내용들이 잣대가 될까 우려스럽다.


그리고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를 고려해 나의 행동을 바꾸는 게 불쾌하다. 사람들 사이에 잣대가 생기면, 그것이 옳든 그르든, 내 기분이 좋든 싫든 어느 정도 반영해야만 사회에 섞일 수 있다. (물론, 500만 부 이상 팔리지 않으면 무시하고 살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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