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보어는 이렇게 말했다.
The opposite of a fact is falsehood, but the opposite of one profound truth may very well be another profound truth.
세상엔 두 개의 진실이 양립할 수 있다. 항상 한 가지 방향만 옳다면 삶이 훨씬 단조로울 것이다.
모순과 불확실성을 맞닥뜨리는 것도,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누리는 호사다.
인생을 일종의 모험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듯하다.(말이 쉽지...)
카르다노는 허수를 발견했다. 그가 방정식을 풀던 중 제곱근 안에 음수가 들어 있는 경우를 만났는데, 제곱해서 음수가 나오는 수는 없다는 게 이전까지 수학자들의 컨센서스였다. 그런데 카르다노는 성인답지 않은 유치한 짓을 했다. '에라이 일단 그런 수가 있다고 쳐보자'며 식을 전개한 것이다. 재밌게도 식의 후반부에 허수들이 서로 cancel out 되면서 해가 나왔다. 수학자 에드워드 프랭클은 이런 '짓'을 mental torture라고 했다. 골치 아픈 일을 일단 저질러본다는 것이다.
AI가 카르다노 같이 '미친 짓'을 할까? 수천년 동안 수학자들 사이에 '제곱해서 음수가 되는 수는 없다'고 약속돼 있었는데, GPT 입장에서 학습한 적도 없는 대담하고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게 가능할까? 섀넌은 뭐라고 할까? "인간이 할 수 있는 생각이라면 기계도 무조건 할 수 있다. 인간도 기계의 일종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지 않을까? 어느 쪽이 맞을지 나는 모르겠다.
원진이가 말하길, 삼성 반도체 공장은 트럭 기사가 몇 시간이나 대기하는 동안 차 안에서조차 담배를 피울 수 없고, 공회전도 안 돼서 에어컨도 못 켠다고 한다. 기사 입장에선 삼성 일감 받으면 죽을맛일 것이다. 기피 대상이다. 그래서 삼성 일은 돈을 더 받고 한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나는 다시 한 번 '삼성 제품은 믿고 써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안전과 품질을 기하려고 돈을 더 내면서까지 외부 기사들을 불편하게 한 것이다. 삼성은 의도적으로 최적화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만 생각했다면, 결벽증까지 나아가지 않고 적당선에서 낙착을 봤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차 공간을 별도로 만든 후 거기에서만 담배 피우고 공회전 가능하게 한다든지.
그런데 삼성은 운송비를 더 내고라도, 반도체 공정 근처에서 사고가 날 미미한 확률조차 차단한 것이다. 이렇게 다소 무리한 결정들이 쌓여서 지금의 삼성을 만든 게 아닐까? 경제 논리에만 근거한 사람, 주판 튕겨보고 결정하는 사람은 이런 결정을 절대로 할 수가 없다.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낭만과 명분은 엑셀에 숫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Another profound truth란 그런 게 아닐까?
계산할 수 없는 것일수록 그 가치를 숙고해야 한다. 계산할 수 있는 것을 얼마나 잘 계산하는지 경쟁해봤자, 컴퓨터 못 따라간다. 계산할 수 없는 것, 이를 테면 허수 같은 것을 계산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가치를 알 수 없지만, 낭만과 명분에 입각해 반드시 포함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삶에서 그런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숫자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면 무량대수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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