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여행 - 3. 두려움

by Dongeun Paeng
Feb 08, 2015 · 만 25세

서퍼들의 천국이라는 발리의 꾸따 해변에서 서핑을 실컷 하고 왔다.

파도도 좋고, 날씨도 좋아서 몇 시간을 정신 없이 하다 보니 살이 다 타버렸다.

숙소에 돌아왔을 땐 온 몸이 너무 따갑고 다리도 피곤하고 눈은 시리고 장난이 아니었다.


그만큼 서핑을 재밌게 했는데, 파도가 와서 보드가 엎어질 때 발이 안 닿는 곳도 많이 있어도 처음 했을 때처럼 무섭지는 않았다. 깊은 물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물이라는 걸 두려워했던 걸까, 이렇게 별 것도 아닌데. 물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이 어디서 온 걸까. 그리고 나는 정확히 뭐가 두려웠던 것일까. 물? 깊은 물? 익사?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발이 안 닿는 것 자체를 무서워한 것은 아니다. 왜냐면 물에 떠 있는 법을 알고 있었고, 발이 닿지 않는 수영장에서도 괜찮았다. 그 느낌이 싫지도 않았다. 그럼 왜일까.


아마 2009년 카자흐스탄의 호수에서 죽을 뻔했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호수를 헤엄쳐서 건너는 것을 했는데, 그 때 물을 정말 많이 먹었다.


그 때 단 한 번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나는 계곡물, 바닷물 같은 자연의 깊은 물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게 된 것 같다. 하지만 '트라우마가 있어서 무서운 거야.'라고 단순히 결론짓기에는 석연찮은 점들이 많다. 트라우마 자체는 두려움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같은 깊이, 같은 온도, 같은 조건이라도 수영장 물은 무섭지 않고 호수나 바닷물은 무서워하게 된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고, 어떤 차이인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바다는 너울이 있지만, 호수나 계곡은 조류가 없더라도 무서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영장 물과 달리, 자연의 물은 익숙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단지 그 이유이다.


몇 번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바닷물 등이 위험하지 않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이 물이 어쩌면 나를 죽이고 말 거야, 라고 생각하는 그 '말 거야'라는 추측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낸 것이다. 단지 물과 친해질 필요가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다른 계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이 갑자기 안 무서워진 이유가 이번 여행에 있다. 필리핀 세부에서 고래상어를 보는 호핑투어를 했는데 그 때 수심이 7-8m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 때 처음에는 마스크를 쓰고 구명조끼를 입고 놀다 보니까 가라앉지도 않고 물 속도 보여서 깊은 바닷물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사라졌다.


중간부터는 마스크랑 조끼가 답답해서 모두 벗고 사진도 찍고, 수영도 하면서 '아, 물이 무서운 게 아니구나.'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그 때 또 주변에 사람도 많았고 보트에 연결된 그물도 언제든지 붙잡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더 자연스럽게 바닷물에 익숙해질 만한 환경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물의 편안함을 알고 나니까 물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 보르네오섬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다이빙 자격증을 땄는데, 수심 18미터까지 들어가보고 그 깊디 깊은 바닷물이라는 것이 이렇게 생겼구나, 바다가 이렇구나 하는 것을 알고 나니까 물 속 깊이 푹 잠겨 있는 기분까지도 익숙해졌다. 물 위에서든, 속에서든 그 느낌들이 편안해질 정도로 많은 시간을 바다에서 보냈다.


그래서 이제는 '이 물이 나를 죽일 거야.'라는 생각이 안 든다. 그것은 나의 오해였다. 때로 난폭할 때도 있지만 정신만 차리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 바다나 계곡에서 놀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따져보면 번지점프나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처럼 확률의 문제인데, 우리가 보통 교통사고가 무서워서 운전을 안 하는 게 아니듯, 몇 건의 죽음이 두려워서 물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그런 사건사고의 적은 확률에 내가 포함될 거라고 믿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된다. 비행기도 못 타고, 번지점프나 스카이다이빙도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물놀이뿐 아니라 삶의 많은 영역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추측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부정적으로 '~하고 말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내 감정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게 심해지면 병이 된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에 친구들끼리 모인다고 하는데, 나는 그 자리에 못 간다. 그런데 그 중에 남의 뒷담화를 참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또 그 자리에는 나랑 친한 친구가 있어서, 그 중 누군가가 내 근황에 대해 물어보면서 왠지 내 얘기가 나올 것 같다. 그러면 이제 부정적인 상상이 시작된다. 아, 그 놈 성격상 또 나에 대해서 나쁜 얘기를 하겠구나, 이런 식으로 여러가지 추측이 더해져서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런 생각의 과정을 글로 보면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퍼뜨리는 소문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개인적인 의심과 그 사람에 대한 주관적인 인상으로 결정되는가. 그리고 그 인상이라는 것은 외모라는 극히 일부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내 동향을 알고 있는 친구가 그 자리에 간다는 이유만으로 나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거기서 또 다른 친구가 나에 대해 나쁜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가정이 필요한가. 여러 변수들이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상황 중 가장 최악인 단 하나의 사례, 상상 가능한 여러 상황 중에 하나일 뿐인데,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마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고 말거야~라고 생각해놓고서는 혼자 기분 나빠지고 그 친구가 싫어지고. 그럴 때가 있다. 이 경우 나는 분명 비정상에 속한다.


연인 간, 친구 간 연락이 끊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1이 없어진 경우ㅋㅋ) 그러면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얘가 나에 대해서 뭐 안 좋은 게 있나, 이런 상상을 또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그런 걸 거야~' 이렇게. 그러면 또 나만 기분 나빠지고, 의심과 고민이 반복된다. 근데 잘 생각해보면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1)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나를 싫어하고, (2) 그래서 답장까지 안 하기는 확률적으로 드문 상황이다. (1)과 (2)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나와 상대방 사이에 중요한 다툼이 있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그런데 소개팅 애프터 신청 같은 것은 연락을 씹는 게 하나의 시그널이 될 수도 있으니까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해야겠다.


그러니까 연락을 씹었다고 해서 누가 시키지도 않는 부정적인 상상을 하면서 사람이 마음 속에 많은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두려움, 의심, 걱정 같은 것들.


(2024-08-08: 비행기 공포증에 대한 문장을 몇 개 없앴습니다. 그 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에 불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벽증도 똑같다. 저 물건은 더러울 거야. 저걸 만지면 내 몸에 균이 들어와서 질병을 유발할 거야. 감기에 옮고 말 거야. 그런 생각들. 모두 적은 확률의 사건을 가지고 자기가 지어낸 상상들이다. 그렇게 따지면 인도사람들은 갠지스강에 시체를 씻고, 거기서 시체를 태우고, 또 그 강물로 빨래를 하거나 식수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전부 병에 걸려 죽어야 하는 건가. 오랜 시간 씻지 않고 바닥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오해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깨기가 어렵다는 것은 원효의 일심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발리에서의 서핑이 나에게는 물 공포증을 극복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내가 가진 많은 편견들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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