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여행 - 4. 실행력

by Dongeun Paeng
Feb 10, 2015 · 만 25세

숙소에서 쉬다가 법정스님이 하신 좋은 말씀을 보았다.


[나의 생각이 나의 운명이다]


현대인의 불행은 모자람이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함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 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등 살아 있는 생물과도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므로 행복과 불행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고 찾는 것이다.


행복은 이웃과 함께 누려야 하고

불행은 딛고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행복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곧 자신의 운명임을 기억하라.

우주의 법칙은 자력과 같아서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

밝은 삶과 어두운 삶은 자신의 마음이 

밝은가 어두운가에 달려 있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사람은 저마다 홀로 자기 세계를 가꾸면서 

공유하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한 가락에 떨면서도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거문고 줄처럼'

그런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거문고 줄은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울리는 것이지

함께 붙어 있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

공유하는 영역이 너무 넓으면 다시 범 속에 떨어진다.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다. 


또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며 잠 못 이룬다면

그는 아직 오지도 않을 시간을 

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연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 버린다.

그 물이 아래 연잎에 떨어지면 거기에서 또 

일렁이다가 도르르 연못으로 비워 버린다.


이런 광경을 무심히 지켜보면서,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리는구나' 하고

그 지혜에 감탄했었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세상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다. 


오늘날 인간의 말이 소음으로 전락한 것은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소음과 다름없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 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입에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을 전부 말해 버리면 말의 의미가

말의 무게가 여물지 않는다.


말의 무게가 없는 언어는

상대방에게 메아리가 없다.

말의 의미가 안에서 여물도록 

침묵의 여과기에서 걸러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지혜는 어느 극점에서 만나는 듯, 다른 데서도 많이 본 얘기들이었다.

입에 말이 적으면~~~ 하는 부분은 성경의 잠언 17장 28절과도 일맥상통한다.


잠언 17:27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말을 삼가고, 슬기로운 사람은 정신이 냉철하다.

잠언 17:28 어리석은 사람도 조용하면 지혜로워 보이고, 입술을 다물고 있으면 슬기로워 보인다.


17장뿐 아니라 잠언 전반에 말수를 줄이라는 구절이 많이 등장한다.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것, 생각이 곧 운명이라는 것 등등 다른 데서도 자주 보는 얘기들이다.

그걸 누가 모르나, 싶은 얘기들.

문득 회의감이 들어 생각해보니, 이런 지혜의 글들은 내 주변에 지천이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에 하루에도 대여섯 개씩 좋은 글들이 올라온다.


문제는 그런 것을 아무리 많이 봐도 사람들의 삶에 진정한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앎(깨달음)만 있고 실천이 없어서라는 것이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글을 보기만 해서는, 읽으면서 위로는 받을 수 있을지언정 진짜 변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실천이 따라야 하는 것 같다. 실천해보아야 명언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동기를 부여하는 이런 글들이 도움이 됐다는 사람들은 실제로 그대로 해본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가 졸업연설에서 한 아래의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매일 거울을 보고 스스로 물었다. 내일 죽더라도 나는 오늘 내가 할 일을 할 것인가."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변명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너무 이상주의적이고, 스티브 잡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는둥 여러 핑계를 댈 것이다. 실제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글들에 대해 비판할 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변명거리가 그것이다.


"이상주의적인 메시지로 젊은 청년들을 사지로 몰지 마라. 현실적,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런 얘기를 하는 자신이, 위인들이 남긴 메시지처럼 모험적으로 살아보기라도 하고 하는 말인가? 5년, 10년 실천해보니 저건 아니더라, 라고 하는 사람의 말은 믿을 만하지만 저 말대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이성과 현실을 운운한다거나 저러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아무렴 애플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운 스티브 잡스가 그들보다 덜 이성적일까ㅋㅋㅋㅋ


둘째로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현실이 심심하고 지루한, 젊은 날에 해보지 못한 도전에 대한 후회로 점철된 현실이라고는 왜 말하지 않는 것일까.


또한 현실적으로 결혼도 해야 하고, 집도 사야 하니까, 라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인데


결혼과 집 마련이 인생에서 중요한 마일스톤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게 만드는 어떤 중요한 목적이 될 수 있을까. 결혼 자체가 인생의 목적인 사람이 많을까?


이제 결혼 생각해야지, 라는 어른들의 말이 없었다면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위해서 재미는 없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가려고 했을까?


남자가 30 전까지는 결혼을 위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사회가, 특히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가이드라인이다. 난 그것을 싫어한다.


애초에 내 objectives에 없었던, 결혼이라는 것이 자꾸 to do list에 강제로 올려진다. 그리고 그것이 나머지 to-do를 너무 많이 훼손한다. 황소개구리처럼.


게다가 설령 결혼과 자손 번식이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이라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꼭 경제적으로 잘 준비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좋은 조건 속에서 결혼하는 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의 시작이라는 것은 사회가 주입한 기괴한 편견일 뿐,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과 믿음이다.


나라는 사람을 심즈에서 키운다면, 혹은 온라인 상에서 아바타로 키운다면 결혼과 집이라는 퀘스트를 달성하기 위해 예술가, 여행가, 탐험가, 기업가 등등 재밌는 직업을 놔두고 회사원, 공무원(no offense, 하지만 꿈 없이 안정감이라는 것만 가지고 지루한 직업을 택한 사람들은 feel offensed해도 어쩔 수 없다.)이라는 직업을 부여할까? 난 아닌데.


물론 인생은 심즈가 아니기에 나도 당장 올해 큰 기업에 입사하기 급급할 수도 있다ㅋㅋ


문제는, 이 글의 주제는 스티브 잡스처럼 살 것이냐, 가 아니라 명언을 보거나 듣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인데 글이 너무 산만해진 듯하다. 


다시 실천에 관한 얘기로 돌아와,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이전 글에도 썼지만 에릭 슈미트가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녀라!"라고 하는 것을 보거나 듣고 실제로 여행을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좀 다른 경우지만 나는 '지금 떠나라. 떠나지 못할 이유가 더 많아지기 전에.'라는 글을 보고 퇴사와 여행을 결심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후회도 없고, 지금도 그 글을 보고 실천까지 옮겼다는 것에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보기만 한 사람들이 내 잘난척(?)에 코웃음을 친다 한들, 그들이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저질러 본 사람들끼리만 아는 코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아인슈타인, 간디, 법정스님 같은 분들이 글로써가 아니라 직접 조언해줬다고 생각해보자. 어차피 같은 내용을 글에 담아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니까.


명언을 그저 보기만 하는 것은 그들의 조언을 듣고 그 순간 감동하고, 싸인 받고, 울고불고 한 다음에 막상 집에 돌아와서는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에게 위의 위인들이 두 번 세 번 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을까? 자기 얘기를 듣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라야 그들이 인정하는 제자일 것이다.


절대 모험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 모험심에 대한 글을 본다고 해도 잠깐의 감동은 있을지 몰라도 그 삶이 변하지는 않는다.


인생의 선배들, 철학자들, 위인들이 남긴 조언들은 자기 의지로 그 길을 가는 사람이 멈추지 않도록 돕지만, 그 길을 가지 않는 사람에게 그 길을 가게끔 의지를 불어넣어주지는 않는다.


의지는 스스로 가지는 것이다. 첫 발은 자기가 내딛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좋은 글들을 몽땅 스크랩해놓기보다는, 하나만 골라서 짧게라도 실천으로 옮겨보는 것이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더 나은 행동이 될지도 모른다.


나도 더이상 그런 글들을 보고 감동하고 위로받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까지 잇는 데 더 힘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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