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생래적으로 불균형하다. 약속 당사자들에게 그 약속이 정확히 같은 무게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방은 반드시 상대방보다 약속을 상대적으로 가벼이 여길 수밖에 없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원하는 위약벌의 크기를 각자 제안한 후, 둘 중 큰 위약벌에 합의하는 것이다.
가령 약속에 늦으면 벌금을 1분에 500원 내자는 쪽과 5만 원 내자는 쪽이 있을 때, 5만 원으로 합의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약속이 당초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수년 전, 교회 모임에 강력한 벌금을 도입했더니 상습 지각자가 쌍욕을 하고 모임에서 나가버린 적이 있다. 그에게는 시간 약속은 가볍되, 벌금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보통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은 그 약속의 무게를 모른다. 약속은 어쩔 수 없이,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 의해서 깨진다.
그러므로 내가 약속을 깨는 입장일 때는 재고해야 한다. 그 약속이 내겐 별 것 아닐지언정 상대에게는 중요한 것 아닐는지.
돌이켜보면 나도 약속을 자주 어긴다. 잠들기 전 딸이 마실 물을 따뜻하게 데워놓는 것이 내 역할인데, 항상 잊는다. 아내와의 약속을 매일 어기는 것이다. 내겐 가벼운 망각이지만,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이렇게 자문할 만큼 깨어 있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사정이 이러니 단순한 약속이라도 중히 여기고 헌신한 사람은 상대방에게 실망한다.
너무 민감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네가 지나치게 민감한 탓이야"라고 반문하면, 자기 잘못이 떠넘어가지는가? 그렇지 않다. 잘못은 잘못이다. 약속을 어긴 게 원인이고, 민감한 건 원인이 아니라 주변 요인이다.
아무튼, 약속 어기는 사람 중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 드물다. 물론 세상 만사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길 기대할 순 없다. 그저 이렇게 생긴 세상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찰리 멍거가 말했다. 하지만...
약속을 어긴 상황에서는 사과부터 해야 한다. "내가 약속을 어겼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약속을 깼는데 인지를 못하는 데는 편향이 작용한 게 분명하다. 멍거가 이야기하는 "Simple, Pain-Avoiding Psychological Denial"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편향에 빠지지 않으려면 애초에 약속, 신뢰, 신용 같은 단어에 큰 무게를 두고 사는 수밖에 없다. (역시나) 찰리 멍거는 신용을 중시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How to Guarantee a Life of Misery”라는 강의에서, 무려 첫 번째로 그가 제시한 방법이 "be unreliable"이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이 나빠서 약속을 어기는 게 아니다. 결정 장애가 있거나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은 약속을 어길 가능성이 크다.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할 약속에 쉽게 응하므로. 비슷한 이유로, 깊이 고민할 시간, 여유 또는 사고력이 없는 사람도 약속을 어길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무엇에 '서명'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쉽게 약속하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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