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빗길이 싫다.
비 묻은 모래알을 밟을 때마다 구두 밑창이 께름칙한 마찰음을 낸다.
에폭시 코팅 바닥을 지날 땐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조심스럽게 걷게 되는데 이 아슬아슬한 기분도 마뜩잖다.
나는 볕내 나는 봄길이 좋다.
누군가 그랬다.
살면서 빗길 만나지 않는 곳은 사막 밖에 없노라고.
푸른 숲은 우기를 필요로 한다고.
나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목적지가 중요한지, 길이 중요한지.
마음 따라 길을 걸어가다가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은지.
그렇잖으면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속옷까지 비에 젖어도 괜찮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