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은 총체가 아니다
분해해보면 본질을 이해하게 될까? 아니다. 분해하는 바로 그 순간 본질은 붕괴한다.
대상을 구성(composition)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다. 답답한 마음에 하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왜 질투하는가, 나는 왜 슬픈가, 나는 왜 두려운가.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저 기업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공책을 펴고 분석하려는 시도를 한 번쯤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제각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봤을 것이다.
감정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세포와,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과, 각종 수용체와, 뇌의 기작을 연구해보자.
그러다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가끔 이 방식이 통할 때가 있다. 고통을 줄이려고 신경을 죽이는 외과 치료도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을 두고 '치유'라고 하진 않는다.
성공 방정식을 찾아 나서는 사람도 많다. 성공을 구성하는 항들을 나열하고, 그것들에 가중치를 매기며 성공률을 예측하거나 성공 사례를 해석한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의 회고록에는 분석보다 직관이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그들은 용기와 도전, 상상과 믿음을 강조한다. 그것들은 물리적, 화학적으로 분해할 수가 없다.
용기를 가지는 7가지 단계 또는 상상의 7가지 구성요소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계적인 원리를 궁금해한다. 접영을 빠르게 하는 원리, 물구나무를 서는 원리.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모두 빗나간다. 총체의 본질은 그 상태에만 있다. 접영을 빠르게 하려면 접영을 자꾸 해봐야 한다. 물구나무를 서려면 물구나무를 자꾸 서봐야 한다. 엘리트 선수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 필요 없고, 빠따를 맞으면 실력이 빨리 는다.
여러 기업의 성공 요인을 모아놓는다고 해서 성공할 수는 없다. 애플이 애플의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애플이어서다. 삼성이 삼성의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이어서다. 서로가 상대의 전략을 분석하고 베끼려 했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두려움에 맞서는 하나의 방식으로, 답답함을 이겨내는 하나의 방식으로 분석이나 분해를 취한다. 하지만 그것이 잘 작동하지는 않는 것 같다. 분석 마비(Analysis Paralysis)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