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eun Paeng

크리스 밀러 - 칩워 (Part 1)

비유로서가 아닌, 문자 그대로의 전쟁

들어서는 말

강철과 알루미늄이 2차 세계대전을 갈랐고, 냉전 시대 패권은 핵무기가 좌우했다. 지금은 반도체다. 우리는 반도체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 영향권 안에 살고 있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우는 세계화를 사실 반도체가 주도했다는 것을 알았는가? 한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의 성장이 반도체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알았는가?

이렇게 중요한 반도체는 우연히도 전세계에 공급망이 퍼져 있다. 가령 가령 설계와 설계용 소프트웨어는 미국에, 핵심 장비는 네덜란드와 일본에, 제조는 대만과 한국에 있다. 반도체 산업의 중심에는 실리콘밸리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공급사슬(supply chain)의 각 단계는 놀라우리만치 적은 회사에 의해 점유되고 있다. 예를 들어 첨단 반도체 제조 설비 EUV는 네덜란드의 ASML이 100% 점유하고 있으며, 메모리 반도체의 44%가 삼성과 SK하이닉스에 의해 과점되어 있다. 이렇게 가느다란 공급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 대만의 TSMC다.

대만을 둘러싼 미중 긴장을 보면, 반도체가 단순히 '전자 장비'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석유보다도 중요한 전략 자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PART 1 냉전의 칩

Chapter 1

2차 세계 대전은 산업 생산 능력의 승부였다. 비행기와 탱크를 누가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날 때쯤엔 계산 능력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고, 사람이 하던 계산을 기계로 대체하려는 노력이 활발했다. 계산을 더 정확하고 빠르게 수행할수록 폭격 명중률도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톱니바퀴를 가진 기계식 계산기(=레버를 돌리면 미리 정해진 순서대로 움직이는 주판을 상상해보자)는 사람보다 나았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게 전자식 계산기의 태동을 야기했다. 전자식 계산기는 톱니바퀴 대신 전기 신호를 이용하며, 그러기 위해 진공관을 사용했다. 진공관은 0과 1을 표현할 수 있는 일종의 스위치인데, 0과 1을 이용하면 모든 숫자와 모든 논리를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숫자와 논리를 표현할 수 있으면 "사고"라는 것을 할 수 있다. 모든 정보는 숫자로 표현할 수 있고, 정해진 논리 규칙에 따라 숫자를 계산, 비교, 선택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사고를 흉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전자식 계산기의 대표격인 에니악은 진공관 18,000개를 엮어놓은 것이었고, 1초에 수백 번의 곱셈을 할 수 있었다. 현대 컴퓨터가 하는 모든 작업도 진공관으로 하는 연산과 다름이 없다. 다만 18,000개의 진공관이 아니라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로 이뤄졌다는 차이가 있다. 트랜지스터는 진공관과 하는 일은 같으나 크기가 수백만 배 작은 스위치다.

Chapter 2

트랜지스터 탄생은 벨 연구소의 천재 윌리엄 쇼클리가 이뤄냈다. 그는 1945년 반도체가 스위치처럼 동작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실리콘 조각에 전기장을 적용했다 제거했다 반복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전류 변화가 거의 측정되지 않았는데, 이는 반도체 표면의 전자들이 전기장을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쇼클리의 발상 자체는 옳았던 셈이다.

1947년 월터 브래튼과 존 바딘이 쇼클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최초의 반도체 증폭을 시연했다. 쇼클리의 구상 그대로는 아니었지만, 반도체가 스위치이자 증폭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입증된 것이다. 이에 자극받은 쇼클리는 1948년 대량 생산에 더 적합한 트랜지스터를 고안했고 이것이 업계 표준이 되었다.

트랜지스터가 스위치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안의 작은 부분에 미세한 전류를 흘렸을 때 전체 소자에 큰 전류가 흐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미세 전류를 흘렸다 잠갔다 하면서 전체 소자의 전류 흐름을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벨 연구소는 AT&T라는 통신사 산하 기관이므로 트랜지스터를 스위치로 쓸 생각보다는 '신호 증폭기'로 쓰는 데 집중했다. 트랜지스터의 잠재력은 벨 연구소 내에서도, 기자회견에서도 과소평가 되었으며 발명자 본인들도 트랜지스터의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Chapter 3

쇼클리는 1955년 쇼클리 반도체를 설립했다. 트랜지스터 양산을 통해 부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량 생산은 이론/실험 물리가 아니라 엔지니어링의 영역이었다.

쓸만한 동작을 하려면 트랜지스터가 많이 필요했고, 트랜지스터가 많아지면 그것들끼리 이어주는 배선이 복잡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페어차일드반도체의 진 호에르니와 밥 노이스였다.

페어차일드반도체는 쇼클리 반도체에서 쇼클리를 싫어한 8명의 배신자("The Traitorous Eight")가 나와 만든 회사다. 리더는 밥 노이스였으며 이 무리에는 고든 무어, 유진 클라이너 등이 있었다. 초창기 페어차일드반도체는 메사(mesa) 모양의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는데, 이 형태는 불순물이 트랜지스터 표면과 반응하는 문제를 보였다. 진 호에르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산화규소로 된 보호막을 덧대는 방식을 고안했는데, 이 과정에서 트랜지스터가 평평해지는 효과까지 덤으로 얻었다.

밥 노이스는 여기에 착안했다. 표면이 평평하고 절연 보호막까지 덮여 있다면, 그 위에 금속 배선을 인쇄하듯 그려 넣을 수 있다. 그러면 하나의 실리콘 판 위에 여러 트랜지스터를 만들고, 그것들을 전선으로 일일이 이어붙이는 대신 판 위에 그린 배선으로 한 번에 연결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여러 소자와 배선을 하나의 판에 통째로 구현한 것을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 또는 칩이라고 부른다.

이는 트랜지스터의 안정성을 높이고, 크기를 줄이고, 전력 효율을 높였다. 즉 쇼클리가 내걸었으나 정작 본인은 이루지 못한 트랜지스터 대량 생산의 조건들이 갖춰진 것이다.

Chapter 4

페어차일드반도체 설립 무렵, 즉 초창기 반도체 수요는 대중이 아니라 군사 기관이 이끌었다.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 발사를 성공하자 미국은 로켓에 많은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로켓의 핵심은 정확한 유도이며, 이를 위해 아주 큰 연산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연산력이 커질수록 컴퓨터의 무게와 크기가 커지는 것이 문제였다.

NASA와 MIT는 아폴로 우주선을 만들기 위해 크기와 무게가 작은 컴퓨터를 찾고 있었는데, 그때 페어차일드반도체에서 만든 칩이 사용됐다. 미 공군에서는 소련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로 Minuteman II를 개발하기 위해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칩을 사용했다. 사실 집적회로를 최초로 시연한 사람은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잭 킬비였다. 다만 킬비의 회로는 부품들을 금선으로 일일이 이어붙인 형태였고, 판 위에 배선을 그려 양산에 적합하게 만든 것은 노이스였다. 그래서 오늘날 두 사람은 집적회로의 공동 발명자로 인정받는다. 어쨌든 그렇게 만들어진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칩은 공군에 대량 납품되었다.

정리하자면 초창기 반도체 시장은 국방 사업의 대량 수요가 뒷받침해준 동시에 페어차일드반도체와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대량 생산 기술을 만들어내면서 형성/확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Chapter 5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는 또다른 천재들이 있었으니, 바로 제이 라스롭과 모리스 창이다. 제이 라스롭은 포토리소그래피의 창시자다. 그는 원래 미 육군 연구소에서 박격포(迫擊砲) 탄두의 자동 폭발 장치를 개발하는 일을 했는데, 트랜지스터가 포탄에 들어가기엔 너무 커서 이를 해결하려다 포토리소그래피를 발명했고, 이후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합류했다. 포토리소그래피는 집적회로만큼이나 반도체의 소형화에 크게 기여한 기술이다.

포토리소그래피의 발명으로 직경 2.5밀리미터의 트랜지스터 위에 높이 12.7마이크로미터의 미세 구조까지 새길 수 있게 되었다. 직경 2.5밀리미터의 반도체에 전선을 어떻게 그려넣을 수 있을까? 사람 손으로는 불가능하다.

빛에 노출되면 성질이 변해서, 노출된 부분과 아닌 부분 중 한쪽만 씻어낼 수 있는 화학 물질(포토레지스트)을 반도체 위에 발랐다고 해보자. 이 물질 위에 정교한 패턴으로 된 빛을 쏘면 전선이 지나가는 길을 쉽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정교한 빛을 어떻게 쏘느냐는 것이다. 제이 라스롭은 현미경을 뒤집어보자는 생각을 떠올렸다. 현미경은 아주 작은 물체를 커보이게 하는 것이니, 그 현미경을 뒤집으면 큰 패턴을 아주 작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 손으로 충분히 그릴 수 있는 크기의 큰 패턴을 뒤집힌 현미경에 쏘면 아주 작아진다. 그렇게 작아진 패턴을 위의 포토레지스트에 쏘는 것이다.

포토리소그래피는 반도체의 소형화뿐 아니라 생산의 자동화에도 기여했다. 일일이 손으로 전선을 납땜할 필요 없이, 미리 그려둔 패턴을 쏘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은 말이 쉽지, 관련된 장비와 소재를 모두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직접 만들고 표준화 하지 않으면 초소형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가 없었기에 엄청난 투자와 노력을 요구했다. 심지어 기온과 압력도 수율에 큰 영향을 미쳤고, 작은 먼지 입자도 트랜지스터를 오염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생산 공정을 꼼꼼하게 관리해 트랜지스터 생산 수율을 크게 높인 사람이 바로 모리스 창이다.

제이 라스롭의 비결은 페어차일드반도체에도 전해졌고, 페어차일드반도체에서는 앤디 그로브가 모리스 창 같은 역할을 했다.

이렇게 대량 생산을 위한 준비가 갖춘 반도체 기업들은 민간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Chapter 6

반도체 시장의 초기 성장은 국방/우주 프로그램에 힘입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형 반도체를 탑재한 전자 제품이 사람들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자명했다. 이 시기(1965년)에 고든 무어는 그 유명한 무어의 법칙을 발표했다. 밥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이미 이때부터 PC와 휴대전화를 꿈꾸었다.

실리콘 칩에 집적하는 트랜지스터의 수는 매년 두 배씩 커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2년마다 2배"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무어의 1975년 수정판이다.)

1968년이 되자 민간 컴퓨터 산업에서 반도체를 주문하는 양이 군대를 따라잡았다. 문제는 페어차일드반도체의 유능한 직원들에게 그 보상이 충분히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페어차일드반도체는 실리콘밸리 정반대편에 위치한 동부의 부자 소유였는데, 그에게 '스톡옵션' 같은 보상책은 너무 과격한 것이었다.

페어차일드반도체의 영웅들은 탈출을 모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