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중요합니다.
나의 생각들을 글로 써야 진정으로 내 것이 됩니다.
-유시민 <공감필법>
The person who says he knows what he thinks but cannot express it usually does not know what he thinks.
- Mortimer Adler <How To Read A Book>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자기 생각을 글로 쓰기 전에는 그것은 그냥 떠다니는 생각에 불과하다. 그래서 글을 쓰긴 써야 한다. 그런데 평소에는 마구 쓰던 글이 요즘은 무척 어렵게 느껴진다.
글을 잘 쓰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지는 오래 되지 않았다. GRE writing을 공부하면서, 대입 논술을 준비할 때 이후로 오랫동안 잊고 있던 '논리적 글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논리적으로 문단을 구성하는 것 외에, 단어의 중첩 사용이라든지, 비문이라든지 하는 전반적인 언어 사용의 측면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영어를 바르게 쓰는 법을 공부하다 보니 문득 '내가 한글은 제대로 쓰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 글쓰기와 더불어 우리말 글쓰기도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우리말 공부를 통해 이 블로그의 글도 이전의 글에 비해 질이 높아졌으면 좋겠다. 이전 글들은 나의 철없는 생각들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게 아까워서 차마 지울 수는 없고, 그렇다고 그 글을 그대로 남겨놓고 보자니 낯이 화끈거리고 그렇다. 아직은 어떻게 처리(?)할지 마음이 서지 않았다.
글을 쓰는 게 이렇게 어렵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글을 쓰기 어려운 것 같다. 나는 말이 많고 말의 무게도 가벼운 편이다. 내가 뱉는 말들은 들을 때는 말이 되는 것 같을지 몰라도 휘발성이 강하다. 그래서 내 경험을 돌이켜보면, 유시민 작가가 말한 게 뭔지 더 잘 이해가 된다.
일례로 이런 적이 있다. 친구와 한국의 직업난과 이민에 대해 대화를 하는데, 말로 할 때는 아주 논리적이고 유창했다. 말이 술술 나오고, 어디서 잠깐 봤던, 혹은 본 것 같은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뿜어져 나와서 탄탄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한국의 시민 의식이 이렇고, 경쟁이 이렇고, 회사들의 고용 논리는 이렇고..."
그런데 이제 그것을 블로그에 써보려고 하면, 글이 잘 안 써진다. 끝내는 그 주제에 대해 아무 문장도 쓰지 못하고 그냥 지워버리게 된다. 즉, 나는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이 없는 생각으로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생각을 글로 쓸 때 느끼게 되는 말하기와의 차이점이 대체 뭘까. 왜 글은 말보다 어려운 걸까.
글쓰기를 하게 되면 우선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내가 하려는 말이 결국 한국에서 괜찮은 일자리가 줄고 있다는 건지, 취업이 어렵다는 건지, 해결책이 이민이라는 건지, 그게 아니면 뭐라는 건지. 흘러가는 대화일 때는 이도저도 아닌 결론이 문제가 안 된다. 어차피 흘러가는 대화이니까. 성명서 같이 어디에 남기려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길어봤자 한 시간짜리 대화이기 때문에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글이 되면 얘기가 다르다. 글은 다수에게 보여지는 기록이다. 그래서 섣불리 결론을 내려서도 안 될뿐더러, 신중하게 내린 결론이라면 그것을 명료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글의 목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도저도 아닌 결론으로 끝나거나, 아니면 결론이 아예 없거나, 아니면 의식의 흐름에 따라 그냥 마구 적어놓은 글은 낙서와 다를 게 별로 없다. 왜냐하면 그 글을 읽는 사람이 읽는 활동을 통해서 내 생각을 제대로 알게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을 보고 아무도 내 생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내 생각에 동의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다면, 나는 그 글을 쓸 필요가 없다. 나중에 나 혼자 보려고 써놓은 일기(日記)라면 몰라도. (사실은 일기로서도 의미가 별로 없는 글이다. 결론도 제대로 나지 않은 글을 나중에 본다 한들, 그 일기가 기록물로서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 모름지기 수 년 전의 일기를 볼 때는 '아, 내가 이 시절에는 이런 생각을 했더랬지. 지금은 많이 변했구나.' 같은 게 있어야 한다. 하지만 횡설수설 무슨 의도인지 모를 글을 보면, '음,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쓴 거지?'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글을 쓸 때는 자료 조사를 철저히 하게 된다. 말은 뱉으면 그만이니 "어디서 들은 건데, 이러이러하대."라고 슬쩍 갖다 붙이면 그 순간은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말을 할 때는 "유시민 작가가 어디서 강연하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글로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라고 하는 걸 들었던 것 같아." 정도면 훌륭한 근거가 된다. 그런데 글은 다르다. 글은 사실 여부를 더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왜냐하면 글은 그 자체의 특성 상, 말처럼 얼버무리는 게 잘 안 되기 때문이다. 글은 명확하다. 맞고 틀리는 게 티가 확 난다. 말은 약간 얼버무리고, '거시기'라든지 '좀' 이라든지 하는 수식어구를 통해 의미를 흐리는 것이 가능하다. "아마 유시민 작가였던 것 같은데, 어디서 듣기로는 글을 써야 아무래도 좀 더 생각이 자기 것이 되고 그게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긴 되나 보더라."라는 말을 예로 들어보면, 곳곳에 구멍을 많이 만들어놓아서 나중에 혹시 틀리더라도 크게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이런 게 불가능하다. 글은 더 분명하게 자기 생각이 드러난다. 그래서 근거도 확실해야 한다. '유시민의 공감필법'처럼 출처가 분명해질 수밖에 없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여느 작가들의 글처럼 훌륭한 글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글을 쓰는 데에 30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내가 이 글에 적은 나의 생각들을 말로 전달할 수 있었다면 5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GRE 공부를 하다 보니 글쓰기 전반에 대해 우리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이런이런 책을 보니 이런 얘기가 있었고, 공감이 되고." 등등.
이제는 글을 막 쓰지 말고, 조금 더 '잘' 쓸 수 있도록 글쓰기를 연습해야겠다. 유시민 작가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쓰기"부터 봐야겠다.
NEXT POST
나는 소설은 잘 안 읽는다. 비소설만 줄창 읽는다. 그런데 이제 비소설들 사이에 소설을 의식적으로 끼워넣기 시작했다. 최근 읽은 4권의 책은 더 보기
PREVIOUS POST
마이클 루이스 책은 대체로 재밌다. Michal Lewis seldom fails in making his readers excited.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