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이 이번 주 내 퇴근 시간을 듣고는 "정말 힘들겠다. 힘든 만큼 돈은 받니?"라고 걱정하며 물어봐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한 후 대답을 했는데, 불평보다는 감사가 항상 나에게 더 큰 힘을 준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대답했다.
"감사하게도, 제가 하는 일에 비해서야 훨씬 많이 받고 있죠. 제가 뭐 대단한 일 한다고..."
집에 오는 택시에서 내가 한 대답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자격 이상으로 많은 돈을 받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과분한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마음 속으로 이런 테스트를 해보았다.
내가 회사라고 가정해보자. 만약에 나랑 비슷한 사람을 데려다 놓고, 내가 요즘 한 달 동안 하는 일을 똑같이 시킨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내 월급만큼을 매달 줘야 한다. 물론 세금을 포함한 금액이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받는 세전 연봉이 3,600만원이면, 나는 매달 그 사람에게 300만원씩 줘야 한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는 내가 요즘 매일 회사에 가서 하는 그런 일이다. 정말 별 것 없다.
그 돈이 아까울까, 안 아까울까.
내가 회사라면 돈이 너무 아까울 것 같다. 나는 아직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사람이고,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내가 하는 일이 회사에 월급만큼의 공헌을 하지 못한다.
내 월급이 400만원이면, 나는 회사에 매달 400만원 이상의 돈을 벌어다주고 있는가? 내가 하는 일로 인해서, 고객이 우리 회사에 한 달에 400만원 이상 쓰는가? 절대 아니다.
내 월급이 300만원이면, 내가 하는 일이 회사에 한 달에 3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벌어다주는가? 절대 아닐 것이다.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회사의 시니어 분들이다. 영업을 통해 억 단위의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수주해오면, 나 같은 주니어들은 낙수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회사는 나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 내가 회사에 기여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이 나에게 월급으로 지불된다. 회사는 나에게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는 내가 점점 월급값 하는 사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월급이 너무 적다며 불평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많고 적음은 늘 상대적인 것이고, 내 월급에 만족하고 안 하고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물론, 월급 대비 생활비가 너무 큰 것은 경제구조에도 많은 책임이 있다. 그것은 정부와 기업들이 힘을 합쳐서 고쳐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그 잘못을 내 회사에 돌려서는 안 된다. 회사가 악의를 품고 월급을 적게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다니엘 카네만의 '손실 회피 성향' 이론은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너무나 유명하다. 카네만은 이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탔다.
무슨 이론인고 하니, 원래 사람은 같은 금액에 대해서 얻는 것은 적게 느끼고 잃는 것은 크게 느낀다. 내가 매달 200만원을 받는 입장이면 적다고 느끼기 쉽지만, 매달 200만원을 줘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에게 매달 200만원씩 주는 게 쉬운 일인가? 엄청나게 큰 돈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매달 200만원씩 줘야 하는 입장이면, 나는 그 사람이 200만원 어치의 일을 하는지 못하는지에 대해 엄청 신경쓸 것이다. 조금이라도 부족한 것 같으면 얼른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려고 할 것이다. 내가 그 사람한테 매달 200만원이나 주는데,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나에게 200만원 이상의 가치를 주지 못한다면 나는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돈을 받기만 하는 사람은 돈을 주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
직원 5명 내외를 데리고 사업하는 지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회사가 잘 안 되는데 월급날이 다가오면 스트레스가 극심하다고 한다.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머리가 빠지고 병에 걸리는 사장들이 얼마나 많은가.
돈을 받는 건 너무 쉬운데, 주는 건 정말 어려운 것이다.
나는 월급값을 하는 사람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그래서 회사가 너무 고맙다.
그리고 매달 돈을 받으면서 일하는 회사원들도 멋지지만, 고용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말 큰 존경심이 생긴다. 내 밥그릇뿐 아니라 남의 밥그릇까지 챙기는 사람이 짊어지는 무게는 엄청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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