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과 회개

by Dongeun Paeng
Nov 14, 2015 · 만 25세

아무래도 내 블로그는 간증집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만큼 신앙이 내 안을 채우는 비중이 커졌다. 그 비중이 100%가 될 때까지 내 자아는 죽고 또 죽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은 '모든 가정이 세 끼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사명을 잊고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24시간 중 전체는 하나님이 부탁하신 적도, 시키신 적도 없는 일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세운 인간적인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 피로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삶은 그리스도인에게서 보이는 평안과 행복이 숨게 만들었다.


1. 내 마음 속에서 너무 커져버린 무에타이 시합


모든 것이 내게 허용돼 있으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며, 모든 것이 내게 허용돼 있으나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고전 6:12)


자유의지가 있으니 무엇을 해도 좋지만, 그것이 마음 속에서 너무 커져버려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의 양식을 잃을 정도까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크리스천의 삶이란 무엇인가?


평안과 감사가 넘쳐야 한다. (요 14:27, 살전 5:16~18) 그렇지 못하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삶이 고달플 때는 시험을 받는다고 할 게 아니라 내가 내 욕심에 끌려 미혹된 게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약 1:13)


내게는 하나님이 권유한 적도, 명령한 적도 없는 무에타이 시합에 매였던 것이 미혹이었다.


지난 '무에타이 시합 출전 포기'라는 글을 쓴 이후, 포기하기 싫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쓴 다음날 코치에게 시합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하리라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면서 한 번 더 물었다.


'진짜 이게 맞나요?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데, 이렇게 포기하는 게 맞나요? 하나님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포기하려는 내 마음이 불편합니다.'


나는 마음에 확신이 없이 준비하던 것을 포기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고, 코치에게 얘기해서 시합 준비를 재개했다. 그러면서 기도했던 것은 아버지가 해준 말씀에 근거한 제목들이었다. 아버지가 전화로 말씀해주신 것은, '무에타이는 그냥 취미 생활이 아니냐, 그게 무엇이길래 니가 하루종일 그 생각에만 빠지는 것이냐? 그게 직업보다 중요하냐? 그게 얼마 후 있을 동생의 수능 시험보다 중요하냐? 그 무게가 하나님보다 무거운 것이냐? 무에타이라는 것이 취미에 머물도록, 니 마음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마음을 잘 간수해라.'라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니가 상대방에게 지면 그것이 상처로 남을 것이고, 니가 상대방을 이기면 상대방에게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것에 대해 잘 생각해보아라.'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무에타이가 뭐라고, 나는 하루종일 그것으로 인해 스트레스 받고, 예민해지고, 무엇인지도 모르는 대상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나로 하여금 크리스천답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루 한 끼만 먹으며 물도 제대로 못 마신 체중감량의 시기는 콕 찌르면 터져버릴 것 같은 예민한 상태로 나를 만들었다. (덕분에 3주 동안 8kg을 감량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고통을 통해서도 가르치시는 하나님. 느낀 점은 다음 글에서!) 그 기간 동안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기엔 너무나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또한 그렇다. 시합에 나가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것이다. 상대방을 아프게 해서 시합을 포기시키는 것이 최우선 전략이다. 그리고 패자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승패에 익숙하고 이것을 생업으로 삼는 프로 선수끼리의 시합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내 경우에는 필요 이상의 폭력이었다.


나는 무에타이에 대한 마음을 비우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한편으로는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이 자꾸 들었다. 코치의 말에 의하면 상대방이 나보다 실력이 낮을 확률이 훨씬 크다는데, 내가 이기기 위해서 상대방을 아프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꾸 미안했다. 져봐서 안다. 몸 곳곳의 피멍이 정말 많이 아픈데, 마음은 더 아프고 상처도 더 오래 간다.


상대방을 흠씬 때릴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다시 기도했다. '이기든 지든, 제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만큼이나, 상대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경기 후에 상대방과 제가 둘 다 후련함만 남고 아픔이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무에타이는 구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어떻게 할까요? 주님 내게는 지혜가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차라리 시합이 취소되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1월 13일 금요일의 기도 내용이었다. 시합 예정일은 11월 14일. 바로 내일이다.


기도를 마치고 30분이 지나지 않아 오후 두 시쯤 코치에게 급하게 연락이 왔다. 상대방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시합이 취소되었다고. 정말 죄송하게 됐다고. 나는 곧장 답장을 했다.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것이라고.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이렇게 신묘막측하시다.



2. 십시일반을 세우라는 음성


11월 13일 금요예배 주제는 게으름이었고, 흔히 생각하는 뒹굴뒹굴의 게으름을 넘어선 내용이었다.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잊고 사는 것이 게으름이라는 것이다.


사명이라는 것은 '내가 사는 이유'이고, 그런 이유가 멀쩡히 있는데 내가 다른 우물만 파고 있다면 그것은 사명에 대한 게으름이라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한 시도 변하지 않은 비전이 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다. 바로 '모든 가정이 세 끼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라.'라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만든 동아리가 십시일반이다.


회사가 결정되고 1월까지 백수 신분으로서 시간이 많아지자, 처음 생각했던 것은 십시일반을 재건하자! 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에타이 시합이 결정되자 나의 모든 관심은 무에타이에 쏠리게 되었고, 십시일반에 대한 생각은 희미해졌다.


나의 사명에 가까이 가는 것은 십시일반인데, 전혀 관련 없는 무에타이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었다. 길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기도 중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리카에서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는데, 마치 그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형! 뭐해요, 나 이렇게 죽어가는데 형 그동안 왜 연락도 없고 뭐하고 지냈던 거예요! 여기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예요?'


그렇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발 한 끼만 먹기를 갈구하면서 생기를 잃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리고 그들을 살리는 게 나의 사명인데 나는 그것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다.


사명을 회복해야겠다.

그리고 십시일반에 다시 힘을 쏟아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함으로써 한 명이라도, 하루라도 더 살려야겠다.


먹이고 입혀야 할 영혼들이 너무나 많은데 나는 게으름에 빠져있었고, 일개의 취미에 너무 많은 정신을 쏟아붓고 있었다.


하나님은 내 관심을 무에타이에서 빈곤 퇴치로 옮기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일련의 일들이 있었던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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