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과 욕심을 분리해내는 것은 참 어렵다.
투명한 물에 검정 잉크를 한 방울만 떨어트려도 컵 속의 물이 검어지는 것처럼, 비전은 항상 순도 100%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비전은 '빈곤의 퇴치'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 수단으로 나는 1,000조원 벌기를 내세우며 살아왔다. 비전에 욕심이 물타기 된 것이다.
1,000조원이라는 숫자가 그럴싸한 것이, UN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빈곤을 퇴치하는 데 드는 총비용이 30조원이다. 30조원은 1,000조원의 3%로서 안전 투자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자수익이다.
즉 내가 1,000조원을 남기고 죽으면 내 사후에도 영원히 그 돈으로 매해 30조원이라는 예산을 조성할 수 있다. 노벨상처럼.
그러나 사실,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었다. 나는 1,000조원을 벌어서 한 푼도 빠짐없이 사회에 환원하고, 그것을 통해 빈곤을 퇴치하겠노라고.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살펴보면, 이유가 딱 나온다. 나는 어마어마한 거부가 되어보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 록펠러가 현재 가치로 환산했을 때 200조원이 넘는 자산을 가졌다고 하니, 나는 통 크게 1,000조원을 가져보자!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만 1,000조원을 갖게 된다면 그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생각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그 자체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큰 돈이 있으면 뭐한다고. 돈이 뭐라고.
그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얼마 전이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교회 형의 추천으로 "P31(잠언 31장)"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내가 참 유치한 욕망을 붙잡고 살아오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존경받는 기업을 일군다는 것은 그 기업의 시가총액이나 나의 지분이 얼마나 되느냐와는 상관이 없다. 내가 세계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된다고 해서 그 이유만으로 나를 존경할 사람은 없다.
한 때 세계 1위 부자의 자리까지 올라갔던(지금도 5위 이내) 멕시코의 카를로스 슬림이 전세계적으로 존경을 받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역시 세계 최고 부자 5인 안에 드는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은? 돈과 여자를 밝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자는 질투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존경의 대상이 되기는 정말 어렵다.
반면 간디, 마더테레사, 마틴루터킹, 링컨, 슈바이처와 같은 사람들은 돈 이상의 가치를 좇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한 사람들이다.
직접 해낸 일이 미미하더라도, 이들에게 영향을 받아 수많은 사람들이 옳은 길을 택했다.
이제까지 나는 빈곤 퇴치라는 숭고한 비전에 돈을 많이 벌겠다는 불순한 욕심을 물타기 해왔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이제부터는 정말 좋은 일에만 집중해야겠다.
돈도 못 벌고, 남들이 알아주지 못하고, forbes 1면에 실리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나 스스로 떳떳하고 당당한 삶을 살아야겠다.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과, 내가 바르게 살기를 바라시는 부모님에게 떳떳할 수 있는 것이 최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