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주관적인 글이라서 갑자기 지워버릴 수도 있는 글이지만,
결국 기업이 영속하기 위해서는 M&A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 지가 2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틀린 생각일 수 있지만 아직까지 생각을 바꿀 만한 계기가 없었다.
여러 기업들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관찰한 결과, organic growth가 한계에 다다른 기업은 결국 M&A를 통해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기업도 피해갈 수 없는 정해진 길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아온 회사들의 경우에는)
organic growth는 logarithmic하다. 그래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해진다.
비전과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혁신가들 위에 숫자를 다루는 뱅커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는 그것을 확실히 증명하는 기사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M&A를 주요 전략으로 전년비 무려 열 배 가까이 성장한 옐로모바일.
2005~2014년 동안 27배나 성장한 CIMB도 같은 전략이다.
성장 속도는 웬만한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 못지 않다. 그러나 두 기업에 스티브 잡스 같은 리더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한편 혁신의 대명사로 불리는 전설적인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모두 M&A에 의존하여 성장하고 있다.
구글은 자사의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가 망하자 외부로부터 YouTube를 사들였고, 확신 없이 인수한 안드로이드가 검색엔진에 이어 구글의 차기 성장을 이끄는 주요 동력이 되었다.
페이스북은 왓츠앱을 인수했고, 애플은 테슬라를 인수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마크 주커버그나 래리 페이지의 천재성에 분명한 한계가 있고, 결국 외부의 재능을 AcHire하는 M&A 전략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올해 발표된 구글의 신임 CFO 루스 포랏이 모건스탠리의 CFO였다는 것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헤지펀드 투자자 칼 아이칸이 애플의 최대 주주가 될 수도 있다는 기사가 어제 나왔고, 오늘은 XPO라는 운송업체가 한 해 동안 3건의 인수를 진행하면서 매출을 2배 이상 키웠다는 기사를 wsj에서 읽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배 계급은 자본가이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주식회사'이다. 1600년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의해 최초로 소개된 '주식회사' 제도는 기업의 주인을 경영자와 분리시키는, 그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회사에 자기 돈을 넣고, 공동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로 인해 대부분의 거대 기업들은 '주주'라고 불리는 주인들을 갖게 되었다. 물론 창업자가 주주인 경우가 많지만, 주식회사 제도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현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어느 회사라도 가질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칼 아이칸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아이칸 자신이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 혁신가가 아니어도 애플을 가질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혁신보다 돈이 더 큰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감독대상 금융사(Systemically Important Financial Institution; SIFI)'로 지정될 수도 있다는, 워렌 버펫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도 엄청난 자본을 갖고 있다. SIFI는 해당 회사의 실적이 금융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지정되는데, 버크셔 해서웨이는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체이스,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웰스파고 등 주요 은행들의 지분을 50조원 이상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온 것이다.
워렌 버펫 자신은 모건스탠리나 골드만삭스 같은 초엘리트 집단을 이끌지 않는다. 그는 그런 기업들의 주주가 될 만한 엄청난 자본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글이 산으로 가려고 하는데, 요약하자면
- 자본주의 시대에 제일 큰 힘은 말 그대로 자본(돈)
- 요즘 들어 스타트업 열풍과 함께 사람들이 혁신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만 자본주의에서는 그 혁신 자체도 M&A의 매물이 된다는 것
- 테슬라를 사려는(아직 소문에 불과하지만) 애플과, 그 애플을 사려는 헤지펀드가 일종의 먹이사슬을 보여주고 있음 (현금이 많은 순서대로 혁신을 사들임)
- 세계 1위 브랜드 가치를 오랫동안 지켜온 코카콜라의 최대주주는 버크셔 해서웨이(워렌 버펫의 회사)
- 주식회사라는 제도 하에서 애플이나 코카콜라처럼 드라마틱한 기업들의 주인은 그 기업을 일군 창업자, 혁신가가 아니라 때가 되면 자본가가 된다는 것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쓰고 보니 자본가나 그가 가진 돈을 안 좋게 묘사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는데, 정반대다. 나는 스타트업이나 개인의 천재성에 끝까지 의존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하지만 자본가(acquirer)로 변한 혁신가들에 대해서는 기대를 거는 편이다. 결국 M&A가 기업의 최종전략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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