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인생의 궁극적 목표?

by Dongeun Paeng
Mar 19, 2015 · 만 25세

나는 행복 추구형 인간이 아니다. (아직 20대라 그런가)

행복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이고 최상의 가치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나의 행복을 포기하고 다수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경우에 따라서는' 포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타인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한 사람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지하철에 뛰어들어서 남을 구하고 죽은 살신성인의 사람은 본인과 주변인의 행복보다는 남을 돕기를 택한 것이다.

자기와 가족들의 목숨을 희생해서 나라에 충성을 바친 김유신 장군은 어떤가.


일신의 행복보다 더 큰 일이 있다는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자기 행복도 후순위로 미루게 된다. 나 개인적으로는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하면 됐지, 라는 생각은 이기적이고 사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은 배타적으로 되기 쉽다.


가령 층간소음이나 집 앞 쓰레기 문제에 민감하게 될 것이며, 가능하다면 가족을 위해 권력을 이용해 편법을 쓰는 일도 생길 것이다. 실제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한 '좋은 의도의' 일이라지만, 사회적으로는 유해한 경우가 더러 있다. 군대 가는 아들을 후방으로 뺀다든지 하는 것은 아버지 인맥을 활용한 사소한 도움이지만, 결국 그 자리를 innocent한 누군가가 메꾸어야 한다.


이렇듯, 나와 내 가족이 단란하게,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가족의 행복한 모습만 상상하면 굉장히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런 생각에 젖어있는 사람은 사회와 인류에 지켜야 할 양심이 자신의 행복과 부딪칠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철저히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행복을 좇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내가 행복하기'를 마련한다면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나는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면서 내 자신이 행복하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다, 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불행하더라도, 고생만 죽어라 하다 가는 인생이라도,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했던 것으로 인해 그 기간 동안 인류 행복의 총량이 크게 늘어났다면 나는 내 행복을 기꺼이 버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9-6의 편한 직장, 가족들과 매일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자녀들에게 관심 갖기, 그런 것들을 완벽하게 해낼 자신은 없다. (현재로서는)


나는 세상을 들어 던질 만큼의 큰 꿈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족과 친밀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그러나 행복한 삶에 대한 환상이 내 꿈을 가로막는 일은 허락하고 싶지 않다.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시점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야망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주요한 차이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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