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본질을 흐리는 오디션 프로그램

by Dongeun Paeng
Nov 25, 2014 · 만 24세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은 뻔하다. 나 역시도 뻔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엊그제인가, 케이팝스타 시즌4가 시작했다.


첫 회부터 뛰어난 참가자들이 다수 있었는데, 그 중 나는 홍찬미 양의 목소리가 좋았다.

청아하고 하늘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눈을 자연스레 감게 되었다.


그런데 심사위원의 생각은 나와는 달랐는지, 노래를 중간에 끊고 냉정하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박진영 심사위원의 혹평은 가관이었다.


본인은 대중음악 시장에서 일류 가수로서 소비자에게 인정을 받은 적이 있던가.

춤 잘 추고 노래를 특이하게 하는 가수가 기획사도 차린 케이스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이 남의 음악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설령 뛰어난 음악가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음악을 평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예술의 본질은 개성의 표현과 그에 따른 다양성에 있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개인의 표현 욕구가 담긴 것이 예술 작품이고, 그 작품들은 때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소수 매니아층에게만 사랑받기도 한다.


하지만 둘 중 어느 것이 더 뛰어난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예술이란 다수에게 '좋다'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혼을 담아 표현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예술이 탄생 시점에는 인정받지 못하다가 작가가 죽은 이후에 큰 관심을 끄는 경우도 있다. 동시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 가치를 후대에 알아보는 경우도 있다.


예술이란 철저히 주관적인 분야이고, 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음악이 다수의 선호에 맞춰야 하는 경우는 명백하다. 바로 상업적인 목적을 가질 때 그렇다.

많은 사람에게 음악을 팔고 싶을 때 본인이 원하는 음악보다는 다수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하게 된다.

다수가 좋아하는 음악은 "요즈음"은 자극적인 경우가 많고,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섹시 컨셉이 필수다.


아니나 다를까 박진영이 차세대 스타에게 요구하는 것은 딱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


'섹스 어필'.


오래 전부터 내가 느낀 바로는, 박진영은 본인의 음악도 그렇지만 여자 아이돌에게 섹시미를 집요할 정도로 요구한다. 목소리도 끈적거리고, 표현, 몸짓, 개인의 생활, 얼굴도 섹시한 것을 좋아한다.


내가 박진영과 박진영이 키운 여가수들을 대부분 혐오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에서인데, 정말 하나 같이 싼 티가 난다. 내 몸을 봐주세요, 내 목소리가 흐느적거리는 것에 흥분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역겹다.


약간 분노가 섞여 감정적인 글이 되어버렸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예술이 풍요롭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보존되어야 하고, 예술이 다양한 모습을 가지려면 개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예술을 상품으로 취급하고, 상업화하려는 장사꾼들(기획사)에게 예술에 대한 평가를 맡겨버리면, 자본의 논리에 따라 돈 되는 예술과 돈 안 되는 예술로 나뉘어버리게 되고 그로 인해 예술의 가치가 왜곡될 수 있다.


그래선 안 된다. 그래서 예술을 장사꾼의 눈으로 평가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2024-02-15: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하지 않아도 될 비판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가수 박진영을 비방하는 내용을 지우거나 고칠까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글을 쓰던 당시 저는 대중 가요의 섹스 어필에 질려 있었고, 당시 제가 느끼던 감정을 잘 남겨둔 글인 것 같아 그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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