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정말 더럽게 억울한 일도 있다. 정말정말 화가 나는 일.
누구나 억울한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보상을 받고 싶고, 또 그 방법을 찾게 된다. 그런데 그 누구나가 다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억울한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 사필귀정을 주문처럼 외며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호소하는 사람도 있고, 우는 사람도 있다. 심한 경우 미치는 사람도 있다. 더 극단적인 경우에는 울화통이 터져 분사하기도 하고, 자기 몸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참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까. 화를 내는 데, 슬퍼하는 데 힘과 시간을 쏟으면 자기 손해일 뿐이다. 불의를 보고 침묵하라는 것이 아니다. 절대 그 억울함이 자기 인생을 갉아먹도록 방치하지 말라는 것이다. 억울한 일 하나 때문에 나의 10년, 20년이 황폐해진다면 시간이 지난 뒤에 더 억울할 것이 아닌가.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억울함이 마음에 심겼다 싶으면 아직 새싹일 때 확 모가지를 쳐버려야 한다.
내가 카투사로 근무할 때, 진짜 골 때리는 미군들이 많았다. 우리 부대를 담당하는 부사관이 어떤 여자였는데, 정말... 하아... 답이 없었다.
우리 부대 숙소에는 공용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었다. 세탁이 끝나면 건조기에 세탁물을 옮기고, 건조가 끝난 것은 본인이 가져가면 된다. 보통 밤에 넣어놓고 다음날 아침에 가지러 가면 된다. 내가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다들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건조기에 내 옷더미가 없었다. 바지도, 수건도, 속옷도, 군복도 아무 것도 없었다. 식겁한 나는 온 숙소를 뒤지며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누가 그 여자부사관이 새벽에 다녀갔다는 얘기를 했다.
미친 여자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나는 설마했다. 그 여자가 내 옷을 꺼냈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져간 것일까. 가능한 결과를 좁혀 나갔다. 내 옷을 입으려고 꺼내가진 않았을 것이고, 돈을 꽤 잘 버는 편이니 자식을 주려고 훔쳐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걸어왔으니 옷더미를 들고 멀리 가져가진 않았을 것이다. 숙소 안에 있다면 누군가 알려주었을 것이다. 숙소 근처 어딘가다. 정답은 마당에 있는 fucking trash can이었다!!!! 정말 설마 하면서 숙소 앞 커다란 쓰레기통을 여는 순간 내 옷들이 거기에 있었다. 이 미친 여자가 왜 거기에 내 옷을 버려놓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옷을 찾고 나도 황당했다.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내 옷을 찾은 거지? 옷과 내가 텔레파시가 통했나? 옷도 나도 여기 있을 이유가 없는데ㅋㅋㅋㅋ
나중에 들어보니 이유인즉슨 옷을 건조했으면 바로 꺼내가야지 밤새 건조기에 넣어놓았다는 것이다. 이 미친 여자가!!! 이 미친 여자가 지금!!!
와, 내가 이런 곳에서 앞으로 군생활을 해야 한다니 이거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억울함이 밀려왔다. 정말 한 마디도 없이 조용히 건조기에 있던 옷을 꺼내서 쓰레기통에 버린 다음에 사라지다니. ㅋㅋㅋㅋ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아프다.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도 없다.
내가 그 부사관의 위치였다면 그랬을까? 새벽에 조용히 부하들의 숙소에 가봤는데 건조기에 옷더미가 있었다. 밤새 건조기 돌려놓고 가져가지 않은 것이다. 옷을 꺼낸다. 누구 것인지 궁금하지도 않다. 옷더미를 집어서 숙소 앞 마당에 있는 커다란 쓰레기통에 던져놓는다. 옷 주인은 자기 옷이 없어졌다고 난리를 치겠지. 어디 골탕 좀 먹어봐라. 이런 건가? 혹시 싸이코패스였나? 그럴지도.
그 쓰레기통은 우리나라에 흔히 있는 작은 쓰레기통이 아니라, 쓰레기차 뒤에 달려 있는 커다란 쓰레기 트렁크 혹시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그만한 미국식 쓰레기통이었다. 거기에 옷을 던져놓았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커다란 쓰레기통 안에 들어가서 옷을 꺼내오는 것이었다.
그래도 꺼내와서 다행이지, 쓰레기차가 가져갔다면 나는 내가 입을 옷들을 다시 다 샀어야 했을 것이다. 내가 아끼는 옷이 있었다면? 혹은 누군가에게 받은 소중한 옷이 있었다면? 그런 생각들을 하니까 더 억울하고 화가 났다. 이 여자한테 찾아가서 내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다. 사과 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옷을 깨끗이 빨아서 잘 입고 다시는 아침에 건조기에 옷을 남겨놓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에 건조기에 옷 넣어놓으면 저 미친 여자가 와서 옷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억울한 일 당하지 않도록...
그 때 내가 뭣도 모르는 이병이었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리버리 하면서 지나간 것 같다. 내가 전역을 앞둔 병장이었다면 그 비정상적인 행동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이 일이 조족지혈로 느껴질 만큼 훨씬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도 많다. 묻지마 폭행의 피해자, 사기 당한 사람들, 재력과 권력에 의해 억압당한 사람들. 얼마 전 소치 올림픽에서 본인이 받아야 할 금메달을 빼앗긴 김연아 선수.
근데 온갖 난리를 쳐봤자 사람의 힘으로는 한계에 맞닥뜨리게 된다. 변화를 가져온 한 사람의 움직임도 있었지만, 무위로 돌아간 공허한 외침도 적지 않다. 뜻을 이루는 시위도 이제껏 많이 없었다.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의 숭고함을 비웃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을 것 같다.
예레미야애가 3:59
"여호와여 나의 억울함을 보셨사오니 나를 위하여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시편 72:4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잠언 25:21-22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여러분은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
분노를 그대로 표출하는 것은 지름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가장 효과가 없는 방법이다.
종교든, 명상이든, 스포츠든, 뭐든 간에 자신만의 방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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