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약점을 극복하며 강해졌다.
청소년기에 나의 약한 점들은 컴플렉스로 작용했고 나는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보다는 극복하는 것을 선택했다. 나는 승부욕이 '지나칠 정도로' 강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왠지 이 글이 나의 내면의 찌질함을 낱낱이 드러낼 것만 같지만... 그래도 나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1. 공부를 잘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이다. 반에서 혹은 전교에서 내로라 하는 등수는 절대 아니었다. "내가 이기고 싶은 애만 이길 정도"로 잘했다. 즉, 승부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3학년 때인가... 그 때 친구 중 한 명이 글씨를 참 잘 썼다. 공부도 나보다 잘했다. 엄마가 그 친구의 글씨를 참 많이 칭찬하셨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도 글씨도 잘 쓰고, 공부도 잘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5학년 때는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질투할 만한 건덕지가 없어서 그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승부욕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었던 것 같다.
6학년 때는 반에서 제일 인기 많았던 친구가 나를 자극했다. 각종 데이마다 선물이 사물함에 가득하고, 키도 반에서 제일 크고, 점잖고, 공부도 잘했다. 한 마디로 엄친아랄까. 그 때도 마찬가지로 공부를 죽어라 했고, 결국 그 친구를 제치고 1등을 한 적이 한두 번 있는 것 같다.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반대로 나를 질투하는 녀석이 있었다. 그 친구의 기를 팍팍 눌러주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지만 그 친구와 다른 반이 된 이후에는 전교에서 100등 밖으로 밀려난 적도 심심찮게 있었던 것 같다.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로서는, 외고에 들어간 게 참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 경쟁률은 1:1보다도 낮아서 실업계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중학교 때 공부 좀 했다는 친구들과 한 교실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1등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대학에 와서는 공부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대학에서는 성적 가지고 승부욕이 자극될 일이 전혀 없었다. 개판 오 분 전으로 공부를 해도 그럭저럭 중위권의 성적이 유지돼서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다가 언제인지, 갑자기 Dean's List라는 제도가 생겼다. 전공 수업을 4개 이상 들으면서 학점이 4점을 넘으면 주는 거라는데, 벽면에 사진도 붙고, 상장도 집으로 배달되고 그런 제도이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 거실 옆 수납장 밑에 액자가 멋지게 세워진 것을 보았다. 그 때 갑자기 승부욕이 빡...!
13-1학기에는 나도 Dean's List에 이름을 올렸고 우리 집에도 친구 것과 같은 액자가 세워져 있다.
2. 노래
중학교 때까지 나는 음치, 박치에다가 목소리도 낮아서 무슨 노래만 불렀다 하면 삑사리와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났다.
고등학교에 와서 중학교 동창들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 노래를 잘하는 친구 한 명이 18번을 멋드러지게 불렀다. 그 순간 모든 여학생들의 눈에 하트가 뿅뿅거리고 남학생들의 질투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그 후 3년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노래방에 가고, 하루에 최소 한 시간은 발성 연습을 하면서 노래 공부를 했다. 당시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김명기의 보컬 강의'를 모두 듣고, 종이로 된 자료 20~30장 짜리를 인쇄해서 매일 줄 치며 복습하고 실습했다. 이이이이잉~ 같은 기이한 소리를 참 많이 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창피한데, 어쨌든 그렇게 노래 연습을 열심히 했다.
3학년 때 즈음, 다시 중학교 동창들을 만났을 때는 결국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나에게 있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주목받기 위한 도구 따위가 아니라 내 삶 그 자체였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노래는 나의 가장 값진 특기 중 하나로 남아 있다.
3. 운동
중학교 때, 우리 중학교에는 축구를 하면서 누가 골을 제일 많이 넣었는지 따지는 문화(?)가 있었다.
그 때 30~40골 넣으면서 우리 학년에서 제일 골을 많이 넣었다고 자부한 적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때 그런 승부는 같은 반 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 반에서는 축구를 꽤 잘했을지 몰라도 전교에서 제일 잘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는 축구, 농구, 야구 등 어느 운동에서 특별한 승부욕을 느낀 일이 없다.
논산 훈련소에서, 체력검사 중 오래달리기를 했는데 소속 분대에서 3등으로 들어왔다. 그 때 2등을 했던 동기가 나에게 비웃음을 날렸는데, 후반기 교육대에서 내가 죽을 각오로 달려서 그 친구를 이겼다. 역전을 위해 초반에 그 친구 바로 뒤에만 찰싹 붙어 있었다. 나는 1등을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은 그 친구를 이기는 것이었다.
한편, 후반기 교육대에서 체력검사 300점(만점)을 받은 훈련병에게는 나이키에서 특수 제작한 커스톰 슈즈를 준다고 부대에서 상품을 내걸었다.
팔굽혀펴기 2분에 71개, 윗몸일으키기 2분에 78개, 3.2km 오래달리기 13분 내 통과가 그 조건이었다.
그 때 승부욕이 또 빡...!
결국 나는 313점으로 87명 중에 유일한 만점자로서 후반기 교육대를 수료했지만... 신발은 뻥이었다. 역시 군대란... -_-
자대에 전입하고 났을 때 내 선임들의 평균 체력검사 점수는 250 중반 정도였고, 승부욕이 자극될 리 없는 상황에서 내 체력검사 점수도 280점대로 뚝 떨어져버렸다.
(2024-01-26: 4번 항목은 초등학교, 중학교 때 몸이 작고 약해 또래에게 맞았던 경험과, 대학에서 권투를 배운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만 스물셋이라는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철없는 내용이어서 삭제했습니다. 재미있는 내용이라 지우지 말까 싶었지만 남기는 것보다 지우는 게 유익하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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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놓고 보니 자랑만 줄줄이 늘어놓는 모양이 돼버렸는데,
약점이었던 부분이 강점이 된 것을 설명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랑을 하게 된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컴플렉스가 많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컴플렉스가 훨씬 많다. 나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다니...! 하며 분통해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이런 모습이 철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이제껏 내가 이룬 많은 일들이 결국 승부욕에서 나왔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컴플렉스도, 어느 날엔가는 최고의 동기부여가 되어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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