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미국에서 기억할 만한 사건은 다음과 같다.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며 골드러시가 시작되었다.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북부 은행들이 파산했다.
코카콜라, 타바스코 등 지금까지 유명한 브랜드가 당시에 설립됐다.
록펠러가 역사 상 가장 거대한 기업이었던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했다.
모스 부호 체계가 발명되면서 여러 증권 시장 중 뉴욕 월스트리트가 우세해졌다.
철도 주식 투기가 일어났다가 철도 주식이 5분의 1로 하락했다.
화폐 공급이 크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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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만들어진 코카콜라나 타바스코 같은 브랜드, 그리고 남북전쟁보다 조금 뒤에 생긴 허쉬나 켈로그 같은 소비재 브랜드들은 100년 이상의 시간을 견디고 지금도 우리들의 일상에 깊이 침투해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진짜 부자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은 골드러시에 금을 캔 사람들(당시 많이 캔 사람들은 하루에 평균 2,000달러를 벌었다고 하는데 미국 동부 지역 월급이 20달러였다고 한다)이나, 철도 주식으로 큰 돈을 만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증권시장이 대호황을 누리면서 <뉴욕 헤럴드>에는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구두를 신은 여성 부호의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그 부호의 이름을 알지도 못하고, 그 존재도 모르지만, 타바스코와 코카콜라, 허쉬, 켈로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하지만 당시에 그 브랜드의 설립자들은 주식으로 흥한 사람들과 금을 캔 사람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작은 사업체 주인들이었다.
허쉬를 만든 밀턴 허쉬는 카라멜 가게를 세 번이나 말아먹고 네 번째 카라멜 가게가 크게 성공했을 때, 카라멜 공장을 100만 달러에 팔고 우리가 아는 초콜렛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코카콜라를 처음 만든 존 팸버튼은 끝내 코카콜라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고, 그 판권을 사들인 아사 캔들러가 뒤늦게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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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해석할 때, 긴 시간 프레임 속의 현재로서 해석하는 것과 짧은 시간 프레임 속의 현재로서 해석하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나는 주식 시장의 호황을 이용해 짧은 시간 내에 대부호가 되어 <뉴욕 헤럴드>에 실린 이름 모를 여성처럼 되고 싶은가? 아니면 타바스코를 만들고 싶은가?
내가 하는 사업이 풀리지 않으면 나는 밀턴 허쉬처럼 네 번째 사업을 일으킬 수 있는가? 네 번째 사업이 크게 성공한다면 그것이 마지막인가, 아니면 그 사업은 허쉬 초콜렛이 만들어지기 전 카라멜 사업과 같은 것인가?
제품의 성공은 창업가 내지는 발명가(존 팸버튼)에게 달려 있는가, 경영자 내지는 마케터(아사 캔들러)에게 달려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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