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UI/UX의 효과를 절반만 믿는다. 내 생각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나는 디자인은 부차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중요도로 따졌을 때 후순위다.
그래서 디어에는 5년 간 디자이너가 한 명 뿐이었다. 한 명이 로고 디자인, 콘텐츠 디자인, 폰트 디자인, 모바일 디자인, 웹 디자인 모두 하고 있다.
삼성의 고 이건희 회장이나 스티브 잡스처럼 우리가 아는 위대한 기업인들이 디자인을 강조하는 이유는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서가 아니다. 디자인은 다른 요소를 모두 만족하는 제품이, 품격 차이를 띠도록 하기 위해 더하는 마지막 방점 같은 것이다. 즉 디자인은 '이미 좋은 제품'에 더해질 때 비로소 파급력을 갖는다.
디자인 잘하기로 소문난 회사의 실패한 제품들, 그리고 성공한 회사들의 '못생긴' 제품들을 10분만 찾아보자. 정말 많이 찾을 수 있다.
약자가 디자인에 신경쓰는 것은 사치다.
여기까지 나는 "디자인"의 정의를 UI/UX, 좀 더 좁게는 "예쁜 UI/UX"로 정의하고 글을 썼다.
우리가 디자인을 다음과 같이 재정의하면, "좋은 제품은 언제나 좋은 디자인을 반영한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첫째, 좋은 디자인은 '무'에서 출발한다.
둘째, 좋은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한다.
셋째, 좋은 디자인은 위 두 가지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위 원칙에 입각한 디자인은 다음을 달성한다.
첫째, 꼭 필요한 것은 갖춘다.
둘째, 필요하지 않은 것은 갖추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n차원 공간에서 기저(축)는 n개보다 적어서도 안 되고, n개보다 많아서도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재정의한 디자인은 디자이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대신 Deep thinker를 필요로 한다.
아이팟의 디자인이 디터 람스의 것을 계승했고, 따라서 심미적으로 고객들을 크게 만족시켰다고 하자.
그러면 왜 이후 아이폰에서 iPod shuffle(아이팟 디자인을 대표했던 동그란 조작 버튼)이 사라졌어도 아쉽지 않았을까?
아이폰은 이후로도 모양이 계속 변했다.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가 떠난 후에도 계속 변했다. 크기가 커지고, 후면에 카메라가 돌출되고, 이제는 상단에 m자 탈모 같은 노치도 생겼다. 2016년에는 콩나물이라고 비웃음을 산 에어팟도 등장했다.
디자인이 애플의 프리미엄 요소인 것은 맞지만, 애플이 design-first approach를 채택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design-must approach"라고 표현하면 딱 좋겠다.
(2024-03-18: 최근 테무가 한국에서 가입자 수를 급격히 늘리고 있다고 하길래, 나도 테무에서 몇 가지 물건을 사봤다. 우선 UI는 그야말로 '쓰레기' 수준이었다. 이 앱이 사기가 아닐까 하는 걱정을 구매 경험 내내 해야만 했다. 그리고 쉼없이 나오는 룰렛과, 과장이 아닐까 싶은 홍보들도 별로였다. 하지만 이 모든 distraction에도 불구하고, 내가 산 물건들이 제대로 집에 도착한다면 나는 아마 학용품/생필품은 테무에서 사게 될지 모른다. 말도 안 되게 싸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테무는 '구매 유발'이라는 목적에 입각한, 그리고 그 외 모든 것을 포기한, 원칙 입각 디자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좋은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한다"에서, 테무가 설정한 '문제'는 저차원 구매 충동 유발에 불과한 듯하고,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은 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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