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털이만 10년, 매주 한 건씩 들키지 않고 해온 대도(大盜)가 있다고 하자.
홍길동처럼 빈자를 위해 장물을 나누지 않는 이상(실은 나누더라도) 존경할 만한 일은 아니다.
이 사람을 전문가라 하지 않음은 훤하다.
칭찬할 만하지 않은 행위의 전문가가 될 순 없다.
문제는 칭찬도 비판도 하기 애매한 영역이다.
이 닦기 전문가, 다리찢기 전문가, 머리 말리기 전문가... 이런 전문가가 있을까?
각 행동은 다소 유용하긴 하나, 충분히 의미 있지 않다.
딱히 의미 없는 일을 10년이고 20년이고 반복하면서 이골 난들, 전문가 반열에 들긴 어렵단 뜻이다.
이제 더 애매한 영역을 생각해보자.
꽤나 의미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문가의 칭호를 붙이긴 아쉬운 것들.
예를 들어 테니스 구력 10년, 무사고 운전 20년, 과외 10년.
수준급 아마추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테니스 전문가, 운전 전문가, 과외 전문가라고 부르기 어렵다.
대체 전문가는 무엇이 다른가?
우선 전문가는 역량 범위가 훨씬 넓다.
예를 들어 프로 테니스 선수는 테니스만 치는 게 아니다.
그는 대회 경력도 쌓고, 전략/전술 훈련도 받고, 체력 훈련도 하고, 식이요법도 병행한다. 따라서 보조 영역이 고루 발달한다.
운전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특수 운전을 하려면 다양한 차종을 비롯해 다양한 위기 상황을 훈련해야 한다.
둘째로 전문가는 고통을 감수한다.
엄격한 훈련, 팬들의 비난,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느끼는 중압감, 사생활의 희생.
이런 것들은 하나도 즐겁지 않다. 때때로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고통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나. 그것은 이게 내 갈 길이고 내 밥줄이고 내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다짐을 반복하며 전문가는 아마추어와 갈라선다.
셋째로 전문가는 꾸준하다.
전문가는 간헐성이 없다.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는 하루만 연습을 쉬어도 자기 실력이 달라짐을 느끼고, 한 주 쉬면 관객도 그걸 느낀다고 했다.
즉 전문가는 쉬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거나, 즐겁지 않아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후자가 훨씬 고통스럽고 불행한 삶이다.
어떤 길을 택하든, 전문가가 되려면 쉬지 않아야 한다.
이외에도 전문가를 구별짓는 요소는 더 있을 것이다.
논지는 '오래 한다고 해서 전문가가 되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충분히 의미 있는 단위로 끌어올리려면 보조 영역도 함께 발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발달 과정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치열함을 보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쉼없이 연속해야 한다. 그러려면 고통을 이기는 즐거움 또는 대단한 참을성이 필요하다.
나는 무엇의 전문가일까?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간 나는 (1) 의미 있는 단위의 무언가를 (2) 치열하게 (3) 쉬지 않고 해왔나?
생각나는 게 없다. 책을 읽고 글을 깨작깨작 쓰긴 했지만, 그야말로 내가 바로 위에 쓴 '애매한 아마추어' 수준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쉬지 않고 열심히 할 만큼 즐기는 게 있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아직 모르겠다.
기실, 사람이 꼭 전문가가 돼야 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당연한 말도 드물 거다. 전문가로 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살다 보니 전문가가 될 순 있어도.
그래서 난 쉬지 않고 열심히 할 만한 걸 찾지 않을 거고, 몰라도 당황하지 않을 거다.
난 무엇에도 전문적이지 않으나, 모든 것에 관심을 두는 사람으로 살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