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선택설과 이기적유전자론은 협력의 진화를 다르게 설명한다.
그런데 두 이론이 갈라지는 지점을 정확히 포착하는 게 쉽진 않다.
김범준 교수의 "관계의 과학"에는 개미 집단에서 일하는 개미와 게으른 개미의 불평등 지수가 0.6에 수렴한다며, 이 비율을 가진 집단이 가장 높은 집단 생산성을 보이므로 이 비율이 진화 과정에서 발생했을 거라고 설명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집단보다도 일부 게으름뱅이가 있을 때 집단 작업의 효율이 상승한단 뜻이다. 이건 컴퓨터 알고리즘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수리적 결과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일터가 너무 북적대면 일이 안 된다.
이 주장 자체는 틀린 데가 없지만, 뉘앙스로 보아 집단선택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집단선택설은 진화의 단위가 집단이고, 따라서 집단과 집단이 경쟁하며 더 우월한 집단이 진화에서 살아남는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집단의 경쟁력'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적절한 불평등 지수를 갖는 것은 집단의 특성이다.
이기적유전자의 관점에서도 진화 과정에서 0.6이라는 불평등 지수가 등장한다고 똑같이 주장한다. 정확히 똑같은 주장을 말이다.
그렇다면 집단선택설과 이기적유전자론은 뭐가 다른 걸까? 가장 뚜렷한 차이는 이것이다.
집단선택설에서는 "개체가 집단을 위해 이타성을 발휘한다. 개체의 행동 근거 중에는 ‘집단이 잘 되기 위해’가 존재한다."라고 한다.
이기적유전자론에서는 "이기적유전자는 의식이 없는 존재이다. 자연선택을 거쳐 살아남은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하는 유전자들이다. 유전자는 물론 개체 또한 집단의 번영을 의식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즉 각 개미는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한 것뿐이다. 일하는 개미가 놀지 않고 일하는 것은 집단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이기적 행동이다. 엄밀히는 그렇게 행동하라고 지시한 이기적 유전자들이 진화 과정에서 가장 잘 살아남았다. 이기적인 유전자들끼리 '겉보기에' 잘 화합하고 협력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이기적 유전자> 책 참고.(설명하자면 길다.)
아무튼, 김범준 교수가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개미의 사회성을 논하는 해당 장에서 이기적유전자론과 집단선택론을 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여전히 훌륭한 책이고, 흥미로운 지식으로 가득하다. 즐겁게 읽고 있다. 저자와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NEXT POST
오랫동안 코카콜라 CEO였던 Don Keough의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