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두 번 읽은 책은 내 기억에 이기적 유전자가 처음이다. 두 번째 읽으니 훨씬 잘 이해된다. 그래서인지 첫 번째 읽을 때보다 덜 고통스럽고, 더 재밌다. 괜히 걸작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이 책은 세상 보는 내 시야를 적실히 넓혔다. 당초 욕심은 재독겸 책 내용을 정리하자는 것이었으나, 바빠서 그러지 못했다.
이 책 각 장을 가볍게라도 다루는 콘텐츠가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유튜브에도, 팟캐스트에도 별로 없다. (영어로 검색하면 필시 있겠지만)
이 책의 매력이 뭘까? 다른 사람들에겐 몰라도 내게는 철저한 논리가 매력이었다. 인과를 분석하는 진화생물학의 방식과, 그것을 설명하는 저자의 방식이 말 그대로 명징(明澄)했던 것이다.
나는 그간 진화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종의 발전이나 개선을 떠올리곤 했는데, 책을 읽고 진화가 그것들과 동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설명을 세부 사항 무시한 채 추상적으로 다루자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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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체가 보이는 행동 양식은 살아남은 행동일 뿐이다. 그렇게 행동하도록 우리(를 구성하는 유전자)가 변해온 게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나머지가 모두 멸절한 것이다.
성적 낮은 학생들은 모두 내보내는 정신 나간 학교가 있다고 해보자.
그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성적이 오르는 게 아니라, 성적 낮은 학생들이 사라지는 것 뿐이다.
성적의 평균은 급상승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학생들의 성적이 오르는 게 아니라, 성적의 평균이 오르는 것이다.
자연이 택한 진화라는 정책은, 유전자라는 학생들을 생존 경쟁에 몰아넣는 정신 나간 교칙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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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내가 배운 점일 뿐, 실은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전혀 다르다. 집단선택설 반박, ESS(게임이론의 진화생물학 버전), 밈 소개 및 자기복제자 개념의 일반화, 확장된 표현형이 중심 주제다. 버릴 것 없이 알찬 내용들이다. 새로 알게 됐을 때 세계관이 달라지는 개념들이다.
물론 이 책은 50년 전에 쓰였으니 지금 학부에서 배우는 진화생물학은 내용도, 수준도 많이 다를 테다.
그러나 진화의 “ㅈ”도 모르는 사람에겐 여전히 흥미롭고 새로운 것들로 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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