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길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책.
관심 갖지 않으면 모를 법한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아주 쉽게 다룬다.
이 책에서 천재라고 일컫는 수학자들은 히포크라테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헤론, 카르다노, 뉴턴, 베르누이, 오일러, 칸토어다.
책이 시간 순으로 되어 있어서 수학사를 훑는 듯한 데다가, 각 수학자의 대표 정리(Theorem)를 설명할 때 수학 분과(집합론, 정수론, 기하학, ...)의 중요 주제도 알려주니 교양서로 제격이다.
책에 등장하는 위인들 중 칸토어는 수학계의 고흐라고 불릴 만한 삶, 즉 불행한 삶을 살았다. 양극성 장애에 시달리며 수학계에서 왕따를 당하고, 아들을 잃었다. 교수로서도 성공하지 못했고 정신 발작으로 입원 중 죽었다.
책을 덮을 때쯤 되니 딴 생각이 슬슬 나면서, 문득 '위대함'이 인생에서 갖는 가치가 뭘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만약 신이 "칸토어로 살 수 있다면 칸토어가 될래?"라고 물으면 Yes라고 답할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도 전혀 없을 것 같다.
위업은 분명 좋은 인생에 기여하지만, 좋은 인생에의 필요 조건도, 충분 조건도 아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프레임워크로 동기-위생 이론이 꽤 잘 들어맞는 것 같다.
걸출한 업적은 동기 요인이다. 그런데 위생 요인을 충족하지 않으면, 동기 요인을 충족하더라도 만족에 도달하기 어렵다. 오직 위생 요인이 충족된 상태에서만 동기 요인이 기여할 수 있다.
위생 요인에는 가정, 건강, 인간 관계, 업무 만족도, 심리적 안정감을 비롯해 많은 것들이 있다. 이 요인들을 지키는 게 먼저다. 그리고 이 요인들이 지켜지면 이미 괜찮은 인생이다. 여기에 동기 요인까지 충족하면 훌륭한 인생이다.
그러니까 인생을 설계할 때는 위생 요인을 지키는 방향으로 설계하면서, 동기 요인에 대한 욕심도 잃지 않는 게 적당한 태도가 아닐까?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와서, 여러 수학자의 이야기를 수평적으로, 얕게 쓴 책 같지만 수직적 깊이 또한 대단하다. 쉬운 문장만 사용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데도, 다루는 내용 자체는 깊이 있고 유익하다.
예를 들어 저자는 11장에서 현대 수학의 지나친 추상성을 비판하는 주장을 인용한다. 문장은 쉽다. "수학이 물리학으로부터 어렵게 얻은 자유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 내향적인 학문이 되어버렸다."
이런 내용은 사뭇 흥미롭다. 보통 추상화/일반화 작업은 학문의 깊이를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문장은 쉽게 쓸 수 있지만, 저자가 현대 수학을 꿰고 있지 않으면 주저할 수밖에 없는 과감한 표현이다.
독후감을 두서 없이 적었는데, 아무튼 여러가지 측면에서 아주 재밌는 책이었다. '흔한 분야 말고 쌩뚱맞은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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