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쿤 - 과학 혁명의 구조

by Dongeun Paeng
Mar 10, 2025 · 만 35세

내용은 의미 있지만, 책 자체는 지지리도 재미 없었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서 글을 꼭 잘 쓰란 법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과학 혁명의 구조를 읽어보라고 권장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스탠포드 철학 백과에서 토머스 쿤을 찾아보면 약 20장 분량의 글이 나오는데, 이게 낫다. 그리고 그럴 시간도 없다면 아래 요약만 읽어도 대충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는 데는 충분하다.


아래 요약은 어쩔 수 없이 쿤의 주장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는데, 쿤의 입장이 모호했던 탓도 있다. 쿤 자신은 반실재론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의 주장이 전체적으로 풍기는 뉘앙스는 반실재론자 같다. 이 경우 나는 과감하게 쿤의 주장을 반실재론이라고 해석하며 요약했다.


== 이하 요약 ==


쿤에 따르면 과학은 패러다임 전환을 따르며 변화한다. 패러다임은 그 안에 갇힌(?) 과학자들에게 문제(퍼즐)와 그 문제를 풀 도구를 제공한다. 이 패러다임 안에서 풀 수 없는 변칙(anomalies), 즉 난제가 세를 어지럽히면 "위기"가 찾아온다. 위기는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촉발하는데, 이게 과학 혁명이다.


쿤은 과학 역사가 누적적, 연속적으로 나아가지 않고 정상과학과 혁명 두 시기를 거치며 진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과학이 이렇게 진행한다고 해서 결코 진리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게 기존 과학철학 견해에 정면 반박하는 쿤 이론의 요체다.


1. 수렴적 실재론(Convergent Realism)과 쿤의 반박


"과학은 세계의 참된 구조(진리)를 향해간다"는 게 수렴적 실재론이다. 쿤은 여기에 정면 반박했다. 과학이 진보하면서 퍼즐과 그 해답이 쌓이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으로써 과학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더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진리에 더 가까운 건 아니라는 게 쿤의 주장이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으니, 아래에서 더 살펴보자.


우선 과학이 퇴보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과학은 분명 나아간다. 쿤도 이에 동의한다. 이 시점에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나아가는 게 진리를 향해가는 거 아니야?'


전혀 아니다. 좋은 예가 있다. 바로 '진화'다. 유전자는 환경에 대응하며 적응력을 높인다. 하지만 이상형(ideal form)을 향해서 나아가는 건 아니다. 이처럼 쿤은 과학 진보를 진화에 빗대어 설명했는데, 훌륭한 비유이다. 진화는 다양한 생물종을 유발하는데, 과학의 전문화 현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제 이런 사고실험을 해보자. 외계인이 있다면 그들의 과학은 어떤 모습일까? 사용하는 단어, 기호, 상수는 다르지만 한참 대화하다 보면 서로 이해하게 될까? 최근 읽은 앤디 위어(마션 작가)의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정확히 이 상황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외계인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쿤 이전 견해는 이렇다. "과학 이론은 점점 진리에 가까워지니까, 외계인의 과학도 우리 과학과 동일 척도에 놓여 있다. 발전의 정도만 다를 뿐, 비교/대조가 가능하다." 반면 쿤이라면 이 책의 전제에 반대했을 게 분명하다.


2. 반박의 근거


왜 과학 발전이 진리에의 접근과 다르다는 걸까? 쿤 주장의 근거를 파악하려면 우선 패러다임 이론의 특징 한 가지를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쿤에 의하면 패러다임에 갇힌 과학자들은 과학 이론을 평가할 때 패러다임과의 유사성을 기준 삼는다. 이는 기존 과학철학 견해와 크게 다른 것으로, 당시 파격적인 주장이었고 비판도 많이 받았다. 구체적으로, 다음 차이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일부 전통 과학철학에서는 새로운 가설을 논할 때 과학자들이 "규칙"을 따른다고 보았다. 여기서 규칙은 논리나 과학적 방법론을 뜻한다. 쿤 이전 과학철학 견해에 의하면, 이런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을 이성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반면 쿤은 새로운 가설을 받아들일 때 과학자들이 규칙을 따르기보단 패러다임의 범례(exemplar)와 얼마나 닮았는지 따져 결정한다고 했다. 이게 큰 오해를 일으켰다.


쿤의 주장은 자칫 과학자들이 논리나 과학적 방법론을 쓰지 않고 "내가 학교에서 배운 과학(=범례)과 닮았네? 오케이, 너 통과"라고 말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쿤이 "과학은 비이성적이다"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가 생겼다. 물론 오해이고, 쿤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합리성의 규칙을 사용하지 않고 '닮은꼴 판단'을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비이성적인 건가요? 아빠와 딸이 서로 닮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과정이 직관적이라고 해서, 그 판단이 비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나요? 반드시 논리적 단계를 거쳐야만 이성적인 건 아니지요."


이처럼 쿤의 패러다임 이론은 과학자들이 과학 이론을 '패러다임과 얼마나 유사한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고 가정하는데, 이게 패러다임 이론의 흥미로운 특징이다. 이를 '이론 평가의 패러다임 종속성'이라고 한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소개할 Incommensurability까지 더하면 비로소 수렴적 실재론을 반박하는 쿤의 시각이 완성된다. Incommensurability는 각기 다른 패러다임에 속한 두 이론을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뜻한다.


왜 비교 불가능할까?


첫째, 패러다임 간 이론 평가 기준 자체가 다르다. 쿤에 따르면 어떤 과학 이론의 옳고 그름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한다. 예를 들어 뉴턴의 중력 법칙이 그렇다. 17세기에 중력 이론이 처음 등장했을 땐 두 물체 사이에 힘이 작용한다고만 설명했지, 그 원리(mechanism)까지는 밝히지 않았다. 반면 당시를 지배하던 전통적 우주론(우주는 수정구체다, 우주는 에테르로 가득차 있고 소용돌이 친다)은 명쾌한 원리를 포함하므로 더 좋은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뉴턴 이론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이후부터는 힘의 작동 원리를 제시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즉 기준이 바뀌었다. 그래서 쿨롱 법칙도 쉽게 받아들였다. 쿨롱 법칙도 정전기력의 존재까지만 설명하고 존재 이유나 원리는 설명하지 않는다.


둘째, 설령 같은 기준을 사용해도, 똑같은 현상을 다르게 관찰할 수 있다. 이를 관찰의 이론 의존성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갈릴레이와 아리스토텔레스가 같은 진자 운동을 관찰했어도, 두 천재는 다르게 해석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자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으려고 진자 운동이 서서히 줄어든다고 했을 것이고, 갈릴레이는 외력이 없다면 진자 운동은 영속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쿤은 게슈탈트 이미지를 예로 들어, 똑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다르게 해석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셋째, 같은 단어가 다른 의미로 쓰이거나, 한 패러다임에서 쓰인 단어에 상응하는 단어가 다른 패러다임에 없다. 즉 패러다임 간 번역이 안 된다. 한옥과 아파트 입주민 둘이 '기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치자. 미묘하게 말이 안 통할 것이다. 한옥 사는 사람은 기둥을 얘기할 때 서까래, 대들보 같은 개념을 연상할 것이다. 아파트 사는 사람은 기둥을 얘기할 때 필로티, 층간소음, dead space를 연상할 것이고. 이렇듯 어떤 단어든 주변 개념들과 묶여 있고(meaning holism), 따라서 같은 단어라도 사실상 의미가 다르다.


3. 총 정리


과학 이론 발전은 진리에의 수렴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면 각 이론은 어떤 패러다임에 속하는데,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 속해 있는 이론끼리는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 발전이 패러다임 전환의 연속이니, 새 과학과 옛 과학을 비교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어느 하나가 다른 것보다 진리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어느 과학이 다른 것보다 낫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더 나음'이 '진리에 더 가까움'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게 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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